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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지원, ‘집중 워크숍’에 참석하다
김소미 사진 백종헌 2019-07-18

어제, 오늘, 내일의 영화

7월 5일 신촌 인근에서 2019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지원사업의 ‘시나리오 집중 워크숍’이 열렸다. 경기콘텐츠진흥원과 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감독조합)이 함께하는 이번 행사는 장편 극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을 지원하고 신진 작가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현직 감독들이 멘토로 참여해 개별 작품에 대한 빠른 역량 강화를 도모하고 신인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을 가까이서 공유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다. 올해 참여한 7인의 멘토들은 감독조합의 공동대표이자 <국제시장>을 만든 윤제균 감독, <와니와 준하>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김용균 감독,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카트>의 부지영 감독, <순수의 시대> <블라인드>의 안상훈 감독, <로봇, 소리> <작전>의 이호재 감독, <말아톤> <대립군>의 정윤철 감독,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키친>의 홍지영 감독이다. 3월에 열린 공모에 273편의 접수작이 문을 두드렸고, 심사 끝에 15편이 150만원의 창작지원금과 3개월간의 멘토링 혜택을 얻게 됐다. 멘토 감독별로 2~3명의 멘티 작가를 담당해 월 1회 이상 개발 과정을 거치고 나면, 9월에 개최되는 ‘경기 시나리오 쇼케이스’를 통해 최우수 작품 5편이 선정된다. 이번 5일에 개최된 집중 워크숍은 이미 한 차례 오리엔테이션과 멘토링을 진행한 바 있는 멘토-멘티들이 다시 모여서 시나리오의 발전 상황을 점검하고 영화화를 향한 청사진을 그리는 자리였다. 이른 아침부터 모인 작가들은 오전 10시부터 연달아 두편의 강연을 들으며 열의를 다졌다. 영화 <카트> <1987> <뺑반>을 통해 주목받은 김경찬 작가와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가 강사로 나섰다. 이날 자리한 13인 작가들과 언젠가 스크린에 나타날 그들의 기대작을 소개한다(이호재 감독의 멘티였던 작가 2인은 이름과 작품 공개를 고사해 제외했다).

● 윤제균 감독과 <어제, 오늘, 내일의 당신>(박고은), <헬로우 미스터 폴>(강지영)

박고은 작가의 <어제, 오늘, 내일의 당신>은 2009년의 여고생 아정이 2019년의 자신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집 안 신발장에 달린 벽거울을 매개로 10대와 20대의 동일 인물이 조우하면서 타임리프 드라마가 펼쳐진다. 자신을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주부”라고 소개한 박고은 작가는 방송 극작을 전공하고 드라마 집필을 준비하다가 영화 시나리오로 전향하게 됐다. “판타지, SF 장르를 무척 좋아한다”는 그는 멘토인 윤제균 감독이 “점과 점으로 펼쳐져 있던 플롯이 전개를 거듭하면서 눈덩이처럼 점점 크고 빠르게 굴러내려간다”라고 비유한 것을 오래 곱씹고 있었다.

강지영 작가의 <헬로우 미스터 폴>은 과거의 첫사랑과 오랜만에 재회한 중년의 샐러리맨이 첫사랑으로부터 금전 사기를 당하면서 시작된다. 퇴직금을 모두 잃은 주인공 채식은 돈을 들고 잠적한 첫사랑을 미행하다가 폴댄스 학원에 당도하고, 어느덧 폴댄스에 점점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강지영 작가는 직접 폴댄스를 배우다 말고 이 이야기를 구상했다. “은퇴가 아닌 재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50대의 무기력한 가장이 큰 실수를 하게 된 상황”에서 상상을 시작해 “재기 불가능한 상황은 없고,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윤제균 감독은 “출품작들이 스릴러 장르에 치우친 느낌이다. 지금은 넷플릭스, TV드라마 등에 스릴러가 많기 때문에 드라마, 로맨스,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로 시선을 돌려달라”고 작가들에게 당부했다.

● 김용균 감독과 <DMZ>(정대기), <내 아내의 로맨스>(유혜진)

정대기 작가의 <DMZ>는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특수부대원 채선은 비무장지대에 추락한 미군의 폭격기를 지키는 비밀 임무를 받게 되는데, 그곳에 자리잡은 땅굴 속에서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한미연합군의 주검과 일부 생존자를 발견한다. 여기에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똑같이 복제하는 괴생물체가 나타나면서 집단적인 분열과 반목이 형성된다. “한국식 <더 프레데터>를 만들고 싶었다”는 정대기 작가는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정치 스릴러와 괴수물의 결합으로 풀어내 많은 주목을 받았다. 호러(<분홍신), 역사극(<불꽃처럼 나비처럼>) 등 다양한 장르를 경험해본 김용균 감독이 “작가의 생각이 굳어져 있던 부분을 정확히 짚어준” 덕분에 정대기 작가는 이후 현실적인 구현 가능성 또한 고려해가며 수정고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혜진 작가의 <내 아내의 로맨스>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자 홀로 남겨진 남편의 이야기다. 상담을 받으며 괴로움을 잊어가던 남자는 자신이 회피해온 과거의 실수들을 깨닫게 되고, 이후 딸의 결혼식에 아내의 커플을 초대하기로 한다. 결혼식 당일에 일어나는 뜻밖의 해프닝이 <내 아내의 로맨스>의 클라이맥스를 채운다.

● 안상훈 감독과 <무진>(임욱), <트립>(박남)

임욱 작가의 <무진>은 연기처럼 사라진 젊은 여성의 존재를 좇는 두 형사의 범죄 스릴러다. 토박이 형사와 서울에서 내려온 신참 형사가 안개가 자욱한 무진 곳곳을 누빈다. 한 청년을 만난 뒤 귀가 도중 실종된 여성을 필두로, 십수년 전 발생한 어린이 실종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던 교회관리 집사가 목을 매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 죽은 집사의 부인으로부터 집사 또한 죽기 전 한 청년을 만났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의 미스터리가 실체를 서서히 드러낸다. 멘토링을 담당한 안상훈 감독의 정의에 따르면 “오컬트, 좀비물도 혼합돼 있는 하이브리드 추적 액션”이다.

박남 작가의 <트립>은 상사의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가를 즐기고 싶은 어느 직장인의 비애를 그린 음악영화다. 첫 휴가를 앞두고 들떠 있던 재영은 졸지에 회사 사장의 딸 하리가 잃어버린 짐을 찾아와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어린 하리는 자꾸만 재영을 불편하게 하고, 작가의 표현처럼 “어떻게든 갑의 방해를 뚫고 미션을 해결해야 하는 을”의 고투가 이어진다. 안상훈 감독은 “산업의 성장과는 별개로 그간 상업영화 진영에서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기획을 찾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기에 심사 과정에서 기존의 할리우드 장르물을 답습하거나 한국영화계에 익숙한 서사는 배제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 부지영 감독과 <영자이모>(정재인), <스탠바이미>(송연수)

정재인 작가의 <영자이모>는 식당 홍가네부대찌개를 무대로, 경아와 여러 이모들의 사랑 넘치는 나날을 바라본다. 영자 이모, 계회 이모, 순복 이모… 이름만 들어도 친근하고 따뜻한 그들 중 영자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면서 경아는 이모와 보냈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삶의 찬란한 순간들 역시 다시 되새긴다. 섬세한 심리 묘사와 문학적인 접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출을 공부하고, 졸업 후 시나리오 공모전에 도전한 정재인 작가는 앞선 김경찬 작가, 원동연 대표의 강연에 대해 “신인 작가, 감독이 챙겨야 할 권리에 대해 냉철하게 일깨워주셔서 정신이 들었다”면서 “부지영 감독님을 무척 좋아한다. 멘토로 원했던 분”이라고 애정 고백을 하기도 했다. 송연수 작가의 <스탠바이미>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인 현수와 중국 소녀 페이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현수의 도움에 페이가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두 사람은 정을 쌓게 되고, 현수의 무미건조한 삶이 조금씩 요동친다. 영화는 어느새 서로에 대한 감정이 깊어진 두 사람이 헤어진 뒤, 몇년 지나 다시 재회한 이후의 일들을 담는다. 부지영 감독은 “<영자이모>는 드문 소재와 서사의 꼴을 갖추고 있어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새로운 체험이 될 것이다. <스탠바이미>는 이주노동자들의 역사 안에서 변화된 대림동의 모습을 담아내는 유의미한 작품”이라고 바라봤다.

● 홍지영 감독과 <오달자의 공동묘지>(정우철), <생존자들>(김태일), <인간은 죽었다>(백광일)

정우철 작가의 <오달자의 공동묘지>에는 마을 최초로 여성 이장에 등극한 오달자라는 인물이 나온다. 마을의 평화를 지켜온 그녀지만 정작 자신은 최근 들어 흉흉한 일들을 연달아 겪은 탓에 액막이라도 할 심정으로 필리핀 이주여성 친구인 막달라와 함께 무당을 찾아간다. 장군보살이 시키는 대로 이마에 부적을 붙이고 한밤중에 공동묘지로 간 달자는 자신의 남편과 막달라의 남편이 서로의 아내를 교환살인하려는 음모를 엿듣게 된다. 얼핏 범죄 스릴러인가 싶지만 정우철 작가는 “코미디가 메인이고 공포와 스릴러는 덤”이라고 말한다. 드라마 <서울의 달>(1994)을 쓴 김운경 작가의 인물 표현을 좋아한다는 그는 “코미디에 중점을 두다보니 긴장감이 떨어지던 부분을 멘토링을 통해 보완했다. 관객이 더 궁금해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수정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김태일 작가의 <생존자들>은 괴시(좀비)와 인간들이 공존하는 재난상황에서, 정부의 식량 지원을 받으려면 인간이 좀비를 사냥해야만 하는 상황을 펼쳐낸다.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이 아직 괴시로 변하지 않은 감염자들을 찾아 죽이면서 서로를 향한 불신은 커져만 간다. 홍지영 감독은 <생존자들>에 관해 “과거에는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아닌 존재들을 통해 실존적인 화두를 던진다”라고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백광일 작가의 <인간은 죽었다>는 진실에는 관심 없이 오로지 재판의 승리에만 몰두하는 변호사가 외진 산장에서 겪는 악몽 같은 일들을 다룬다. 홍지영 감독은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극한 상황에 대해 “마치 토끼사냥처럼 아이러니하게 묘사됐다”라고 전하면서 “갇힌 공간 안에서 대단히 많은 인간 군상을 확인할 수 있는, 문학적인 터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 정윤철 감독과 <총파업>(김경윤),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김희경)

김경윤 작가의 <총파업>은 세 며느리가 연이은 제사에 보이콧을 선언하고 캠핑카를 빌려 가출하는 로드무비다. 이들은 딸을 잃어버리거나 추돌사고 후 음주운전 누명을 쓰게 되는 등 여행 중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전보다 더 돈독한 자매애를 다지는 것은 물론 각자 더 성숙해진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김희경 작가의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는 바쁘게만 살아가던 40대 방송작가 세련이 10대 시절의 첫사랑과 빼닮은 소년 기하에게 흔들림을 느끼며 시작된다. 김경윤, 김희경 두 작가는 “여성주인공의 이야기, 여성 중심의 서사”라는 서로의 공통점을 즐거워했다. 시나리오 작업에 처음 입문했다는 김희경 작가는 “멘토링 과정을 통해 시나리오의 기본적인 구조부터 익히는 중”이고, 방송작가 출신 김경윤 작가는 “첫 영화 시나리오를 통해 30~50대 여성 관객이 재미를 느끼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목표”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 관람가>를 보면서 출연자였던 정윤철 감독과 “내적 친밀감”을 쌓았다는 두 작가는, “군더더기 없이 명확한 의견을 보태는” 정윤철 감독의 면모가 예상한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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