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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홍콩영화④] <초연> 배우 정수문·양영기·조아지, “혼자서는 절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9-07-24

배우 양영기·조아지·정수문(왼쪽부터).

홍콩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정수문, 양영기, 조아지는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들이다. 수령을 연기한 정수문은 가수이기도 하고, 두기봉 감독이 아끼는 배우 중 하나다(<니딩 유>(2000), <러브 온 다이어트>(2001), <고해발지련2>(2012), <블라인드 디텍티브>(2013) 등 두기봉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다.-편집자). 관금붕 감독과의 작업은 전작 <장한가>(2005) 이후 13년 만이다. 옥문을 맡은 양영기는 <열화전차>(1995), <영웅>(1997), <연비연멸>(2000) 등 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최근에는 팡호청 감독의 <애버딘>(2014), 유위항 감독의 <내 사랑 왕가흔>(2015) 등 홍콩 독립영화도 활발하게 작업했다. 수령과 옥문이 만난 연극 <두 자매>를 제작하는 정종 역의 조아지는 1973년 미스 홍콩으로 연예계에 입문한 뒤 왕우, 적룡과 함께 <교두>(1979), TVB 방송국 동기인 주윤발과 함께 <상해탄>(1983)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고, 홍콩에서 ‘철저한 자기 관리의 대명사’로 불린다. 정수문·양영기·조아지 세 배우를 한자리에 모아 <초연> 제작과 관련한 뒷이야기를 들었다.

-이 영화는 최근 사라질 뻔한 건물인 홍콩 대회당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조아지_ 홍콩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곳에 얽힌 추억들이 있을 거다.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가족,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많이 보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공감하고 애착이 많이 간 것도 그래서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각자 맡은 역할이 어땠나.

=정수문_ 나도 대회당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많다. 수령은 매우 복합적인 인물이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와 가장 힘든 시기를 동시에 겪었다. 남편이 자신을 배신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떨어져 지내는 아들을 그리워하는 등 연달아 일어나는 일들이 그녀를 괴롭힌다. 그런 상황에서 라이벌인 옥문을 한 무대에서 만난다. 나는 수령이 겪는 어려움이나 아픔을 겪진 않았다. 수령은 나보다 좀더 내면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안정적으로 연기하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상황에 집중했다.

=양영기_ 옥문 또한 사연이 복잡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도전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그래서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클라이맥스에 오른 인물이다. 그럼에도 내면에서 끊임없이 분투한다. 연극무대에 함께 오른 사람이 자신의 라이벌이고, 과거 갈등을 일으키기도 해 연극 작업을 통해 인생의 분투를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무대에서 옥문이 하는 연극 대사가 그녀의 현실을 잘 반영한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등장인물 모두 각자의 상황에 맞게 보이지 않는 무공을 주고받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조아지_ 정종은 실제 내 또래 여성이라 공감이 많이 됐다. 경험이 많고 무척 지혜로우며 생각이 깊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 혹은 다른 사람과 다투는 다른 등장인물과 달리 좀더 높은 위치에서 수령과 옥문 두 사람이 서로를 잘 이해하도록 하고, 연극을 순조롭게 완성시킨다.

-정수문과 양영기는 <초연>으로 만나기 전에 어떤 인연이 있나.

정수문_ 양영기와 함께 출연한 영화가 마위호 감독의 1996년작 <백분백감각>(<속 가을날의 동화>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으나 <가을날의 동화>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편집자)이라는 로맨틱 코미디다. 정이건, 갈민휘 배우와 함께 출연했다.

양영기_ 홍콩연예계에서 일을 하면서 자주 만났다. 수령과 옥문보다 사이가 훨씬 좋다. (웃음)

조아지_ 두 사람이 지금까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웃음)

-여성 캐릭터가 대거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초연>은 반가웠을 것 같다.

정수문_ 출연 제안을 받자마자 굉장히 감격했다. 홍콩에서도 여성의 시각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관금붕 감독님은 오랫동안 여성을 중심에 두고 서사를 전개하는 영화를 만들어와서 매우 존경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두 라이벌 여성의 대결을 그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두 여성이 인생을 살면서 어떤 상처를 겪었는지,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을 다루었다.

양영기_ 수령, 옥문을 포함해 여성 8명이 등장한다. 저마다 출연 분량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입체적으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1시간40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잘 보여주고, 그들이 겪은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이런 작품에 출연할 수 있게 돼 감독님께 감사하다.

-촬영 전, 각자 맡은 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다.

정수문_ 수령은 방어적인 인물이다. 인생에서 여러 굴곡을 겪으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을 거다. 나를 포함한 여배우 대부분 손에 쥔 것을 내려놓거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관금붕 감독의 전작 <장한가>를 찍고 난 뒤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까지 무척 힘들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수문_ 자세하게 얘기할 수 없지만 <장한가>를 촬영할 때 개인적으로 우울한 일들을 겪고 있었다. <장한가>나 그 작품에서 맡았던 역할인 왕치야오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양영기_ 옥문은 자신감이 가장 넘치는 순간에 자신보다 뛰어난 상대를 무대에서 만나지 않았나. 스스로 불안한 상황에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다. 나라면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옥문처럼 행동하지 않을 거다. 실제로 배우들은 일하면서 자신보다 뛰어난 상대를 많이 만난다. 나 또한 그때마다 상대가 가진 좋은 면을 배우고, 그러면서 성장하고, 그 과정들을 감사하고 행복해왔다. 반대로 옥문은 그런 상황을 불안해하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여성배우들만 무려 8명이 등장하는데 현장에서 어땠나.

정수문_ 많은 사람들이 여성배우들이 많아서 긴장감이 넘치지 않았을까 오해하는데,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배우 8명이 각자의 역할에 임하는 책임감이 강했다. 관금붕 감독님이 언젠가 “좋은 배우는 수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돕는 사람”이라고 얘기한 적 있다. 감독님의 말처럼 우리는 현장에서 동료들을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었다.

-정수문은 두기봉 감독이 아끼는 배우 중 한명이다. <초연> 촬영현장은 남성들이 잔뜩 나오는 두기봉 감독의 현장과 어떻게 달랐나. (웃음)

정수문_ 하하하. 관금붕과 두기봉,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 두기봉 감독님은 상남자로, 그의 현장은 남성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반대로 관금붕 감독님은 부드럽다. 그 부드러움으로 현장을 장악하고 이끌어나가는 스타일이다.

-둘 중 누가 더 잘 맞나. (웃음)

정수문_ 둘 다 잘 맞는다. 다만 두기봉 감독님의 현장에선 조용한 편이다. (웃음)

양영기_ 정수문 말대로 현장에서 모두 각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혼자서는 절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 동료들과의 협업이 매우 중요하다. 친구 같은 매니저가 옥문에게 대사 없이 눈빛을 보내는 장면을 찍을 때 동료의 눈빛만 보고 많은 감정들을 표현해낼 수 있었다. 그때 이기심 없이 함께 영화를 완성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수문_ 내게도 그런 감정을 느낀, 아주 중요한 장면이 있다. 연기 선생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옥문을 만나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는 영화의 후반부 장면이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얘기할 수 없지만 그 장면에서 수령은 은사의 죽음에 대한 슬픔, 옥문의 뜻하지 않은 고백에 대한 감동 등 여러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낀다. 담담한 장면이지만 양영기와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주고받으면서 표현할 수 있었다.

양영기_ 촬영 전 감독님이 옥문을 두고 “승승장구하지만 약해지는 면모도 동시에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하신 적 있다. 우리는 살면서 늘 약해지는 순간이 있지 않나. 옥문은 나와 많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옥문을 좋아하는 건, 그녀가 약해지는 순간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자신이 수령보다 약하다고 생각할 때 포기하지 않고 대본을 계속 읽으면서 연습하는 장면을 매우 좋아한다.

-현장에 주윤발이 놀러와 기를 불어넣어준 것으로 알고 있다. 조아지는 주윤발과 방송국 동기이고, <상해탄>을 함께 찍지 않았나.

조아지_ 신인 시절 함께 고생했던 사이다. (웃음) 당시 주윤발도 나도 영화를 무척 사랑했다. 밤낮없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드라마, 영화 가리지 않고 열심히 찍었다. 열정 없이 버티기 힘들었다. 운도 많이 따라줘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운만큼이나 연기에 충실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배우는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어쨌거나 주윤발이 촬영할 때 미리 연락하지도 않고 몰래 현장에 놀러와서 모두가 깜짝 놀랐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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