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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남북평화영화제 김형석·최은영 프로그래머 - 어려움이 있더라도 계속 문을 두드려야 한다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19-08-08

최은영, 김형석 프로그래머(왼쪽부터).

“영화제 일이 잡지 마감과 비슷한 점이 많다. (웃음) 마감이 닥칠수록 바빠지고 한꺼번에 일이 몰린다. 개막을 2주 앞둔 지금이 월간지로 따지면 마감 3일 전, 주간지로 따지면 마감 하루 전쯤 되는 것 같다.”(최은영 프로그래머) 평창남북평화영화제의 프로그래머를 맡은 김형석·최은영 프로그래머는 공교롭게도 둘 다 영화잡지 기자 출신이다. 덕분에 영화제 준비 막바지로 바쁜 나날을 보내며 짙은 전우애를 다지고 있었다. 올해 첫 출범을 앞둔 평창남북평화영화제는 4·27 남북정상회담과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로 더욱 뜨거워진 ‘평화’라는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영화를 선보이는 테마 영화제다. 한국에서 최초로 상영되는 개막작 <새>(감독 림창범, 1992)를 비롯해 여러 북한영화도 만나볼 수 있다. 영화제는 8월 16일부터 20일까지 강원도 평창군 및 강릉시 일원에서 열린다.

-‘스펙트럼’ 섹션은 전쟁, 이민, 인종, 차별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최신작이 소개된다. 이쪽이 영화제를 찾는 시네필을 위한 라인업이라면, 88올림픽 공식 기록영화 <손에 손잡고>(1988), <스윙키즈>(2018) 등을 트는 ‘여름영화 산책’ 섹션은 대중성을 고려한 것 같다.

=최은영_ ‘여름영화 산책’은 어떤 카테고리에 묶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소개하고 싶은 작품들을 골랐다. ‘스펙트럼’은 지난해부터 해외 영화제를 다니면서 프리미어 상영이 가능한 작품들, 다른 영화제에서 보기 어려운 작품 위주로 채운 섹션이다. 한달 후 우리와 성격이 비슷할 수밖에 없는 DMZ국제다큐영화제가 열리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극영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라인업을 꾸렸다.

=김형석_ 주제만 놓고 보면 어렵고 관념적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코미디·멜로·청춘 영화 등 장르적 재미가 잘 결합된 작품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섹션 작품이든 기본적으로 대중성을 기본으로 골랐다.

최은영_ 올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상영작인 <릴리안>(2019)은 아녜스 바르다의 <방랑자>(1985)가 떠오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미국에서 러시아까지 도보로 돌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을 이민자 정체성에 초점을 맞춰 따라간다.

김형석_ <포화 속의 텔아비브>는 매일 이스라엘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유명 연속극의 촬영장 인턴과 검문소장 사이에 벌어지는 해프닝 코미디다. 검문소의 아내가 드라마 열혈 시청자라서 검문소장이 직접 연속극 전개에 개입하려고 한다.

-역시 ‘평양시네마’ 섹션을 비롯한 북한영화를 어떻게 수급해왔을지가 가장 궁금하다.

김형석_ 개막작을 포함해 총 5편이 상영된다. 원칙이 있었다.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영화를 상영할 때 억지로 상영 편수를 늘리기 위해 DVD를 트는 경우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러지 말자는 거였다. 영화제에서 떳떳하게 필름으로 틀 수 있는 영화, 합법적인 루트로 확보할 수 있는 작품에만 집중했다.

최은영_ 북한과 다른 나라가 합작한 영화도 꽤 있는데, ‘하이브리드’적인 면이 굉장히 재미있다. 가령 중국과 북한의 합작 영화는 두 나라의 색채가 어우러져 있고, 북한 체제를 긍정하는 요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해외 감독들이 상대적으로 북한에 들어가기 쉽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으로 본 북한 다큐멘터리는 꾸준히 제작되어왔다. 우리가 주목한 것은 김정은 시대 이후를 담은 최신작이었다. 대부분 유럽 감독의 작품인데, 그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방식이 무척 신선하다. 북한 민간인과 농담도 나누며 가깝게 교류한 모습이 영화에 담겨 있다. 정치가 아닌, 북한의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형석_ 서구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특히 미국에서 만들어진 작품 중에는 조롱하는 톤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영화도 많더라. 이런 작품은 일부러 배제했다.

-아무래도 국제 정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영화제다.

김형석_ 대북 제재(북한이 핵을 포기하게끔 자금이나 경제, 외교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가 완화되면 우린 북한에서 폐막식을 할 수 있고, 양양에서 원산까지 페리도 띄울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여러 제약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국제 정세가 언제 변할지 모른다. 북한은 다른 해외의 필름마켓에서 영화를 팔고 싶어 한다. 남한의 영화인들도 로케이션이라든지 대규모 스튜디오를 지을 수 있는 부지를 갖췄다는 점에서 북한에 관심이 많다. 북한은 여러모로 잠재력이 큰 곳이다. 합법적인 교류의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

최은영_ 언젠가 시절이 좋아졌을 때 영화제가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사실 4·27 남북정상회담이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아무도 모르지 않았나. 그렇게 무언가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을 때 미리 준비되어 있다면 바로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멀리 내다보고 미래를 생각하며 이런저런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

-<VR로 만나는 북한의 풍경>전이 눈길을 끈다.

김형석_ 유튜브에서 북한에서 촬영한 360도 영상을 꾸준히 올리는 아람 판이라는 싱가포르 사람을 찾았다. 이 사람이 이른바 ‘북한 덕후’인데, 영화제 취지를 설명하며 원소스를 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흔쾌히 수락하더라. 이 영상을 보면 정말 판문점에 있는 듯한, 백두산 천지에 올라간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VR 콘텐츠는 무브먼트를 강조하는데 이 전시는 플레이스와 현장성을 강조한다. VR 전시를 준비하면서 북한 관련 콘텐츠를 만들 방법이 굉장히 다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 지역과의 연계도 중요할 것 같다.

최은영_ ‘강원도의 힘’ 섹션은 강원도 출신 영화인을 조명하기 위해 만들었다. 영화제 트레일러도 김대환·장우진 감독과 덱스터 스튜디오가 만들었다. 덱스터 스튜디오를 이끄는 김용화 감독이 강릉 출신이고, 춘천에서 자란 김대환·장우진 감독은 강원도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지금 그 세대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사람들이다.

김형석_ 강원도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하는 영화가 많은데도 정작 개봉할 때는 아무도 무대인사를 오지 않는다. 그만큼 문화적 변방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김대환, 장우진 같은 새로운 감독들이 나온 건 한국에서 김연아가 나온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우리끼리는 강원도의 손흥민과 이강인이라고 부른다. (웃음)

-언젠가 평창남북평화영화제에서 <아리랑>(1926)이나 <만추>(1966)를 보는 일도 가능할까.

김형석_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북한에 있는 고전영화 필름을 수급하는 것 자체가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다. 그 필름들은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공들여 만든 아카이브였고, 북한에서도 아주 높은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는 일종의 성역이다. 판권이라든지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환하면서 생기는 비용 문제, 극장 상영에 따른 수익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수십년간 북한이 이 필름을 보관하고 있었으니 그에 대한 대가도 지불해야 하지 않겠나. 4·27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으니 이런 일도 가능하다며 마냥 낭만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최은영_ ‘평양시네마’ 섹션에서 트는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의 다큐멘터리 <한반도, 백년의 전쟁>(2019)은 북한을 설득하는 데에만 최소 5년이 걸렸다. 우리가 그보다 빨리 무언가를 성사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굉장히 오만한 거다. 계속 문을 두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렇게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를 북한에 보내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북한과 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을 두고 노력하면 아주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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