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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장면에 '집착'한 5명의 영화감독들

(왼쪽부터) 봉준호, 로베르 브레송, 곤 사토시, 요르고스 란티모스, 알프레드 히치콕

자신만의 스타일을 작품에 새겨 놓으며 영화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 감독들. 이들에게는 일명 시그니처라 불릴 만큼 독자적인 장면이 있다. 가령 봉준호 감독의 비 오는 장면이라거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춤추는 장면은 특별하다. 이 두 감독을 비롯해 다섯 명의 감독이 집착한 장면들을 나열해 봤다. 영화 팬들의 반가운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봉준호의 '비'

<기생충>

촬영장 스탭들에겐 굉장히 고역이라는 비 신.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에도 어김없이 비를 내렸다. 그것도 예사 비 수준이 아니라 아예 홍수를 내 버렸다. <기생충>에서 비와 홍수는 계급 우화라는 영화의 테마를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소재다. 위에서 아래로 한없이 하강하는 빗물은 반지하 가족들의 가슴에 꽂힌 비수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봉준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유독 비 내리는 장면을 활용한 영화가 많다. 실화 사건에 기반한 <살인의 추억>에서는 비가 오는 날마다 의문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괴물>에서 변희봉이 가족들을 대신해 괴물의 희생이 되고 만 것도 빗속에서였다.

<괴물>

그뿐이 아니다. <마더>의 김혜자는 고물상 노인에게서 우산을 샀던 비 오는 날의 기억을 떠올렸고,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미약하지만 비가 오는 장면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 자신이 이 사실에 대해 무지할 리는 없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개인적 사심과 욕심으로 최고의 비 오는 장면을 찍고 싶은 집착이 있다"는 점을 밝혔다. 특히 "<마더>에서 진구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비가 밖에서 내리긴 하지만 전체 신을 지배하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면서 축축한 정서의 서스펜스를 만들어 내고 싶었던 욕심을 내비쳤다.

로베르 브레송의 '손'

<소매치기>

많은 시네필들에게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영화감독 로베르 브레송. 간결한 영화 이미지로 시네마의 정수를 포착한 그의 영화에는 한 가지 특징적인 부분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손이다. 그의 영화 속에서 자주 클로즈업된 손의 이미지는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잘 보면 그 안에 어떤 말이나 표정보다도 솔직한 감정이 실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뭇거림과 떨림, 긴장, 애정과 같은 내밀한 정서들이 브레송의 손에 집약돼 있는 것이다.

<당나귀 발타자르>

주요 고전·예술 영화들의 DVD 제작사 크라이테리온은 아예 로베르 브레송의 손 쇼트만을 이어 붙인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링크: https://youtu.be/uk_yKYhBjKA) 그의 주요작 <어느 시골 본당 신부의 일기>, <소매치기>, <당나귀 발타자르>, <무쉐뜨> 등의 작품들에서 주인공들은 주로 무미건조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다. 대사도 적으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들이기에 되레 관객은 손에 집중하게 된다. 미니멀리즘의 감독이라는 별칭답게 브레송은 간결한 손의 이미지로 그 만의 시네마를 구축했다.

곤 사토시의 '달리기'

<퍼펙트 블루>

요절한 천재 감독 곤 사토시. 광활한 재패니메이션의 바다에서도 곤 사토시가 점령한 위치는 남다르다. 그가 주로 탐구한 소재는 인간의 무의식과 꿈, 환각 같은 것들이었다. 곤 사토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다채롭게 뒤섞어내는 화법으로 자신의 주제에 천착했다. 그의 작품들에서 엿보이는 독특한 인장은 아마도 달리는 신일 것이다. 사실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 <파프리카> 등 몇 안 되는 그의 작품에서 달리는 장면이 아주 많다는 점을 떠올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천년여우>

그러나 친절하게도 한 유튜버가 달리는 신만을 모아둔 클립을 올려 두었다.(링크: https://youtu.be/NOMYWCsuef4) 영상을 끝까지 감상하고 나면 말할 수 없이 벅차오르는 감정이 솟구칠 것이다. 애니메이션인 만큼 프레임 하나하나에 쏟은 수고스러움과 함께, 그 프레임의 연결이 만들어 낸 달리기에는 무언가를 열렬히 갈망하는 인물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췌장암 투병으로 향년 47세에 사망한 곤 사토시. 과연 그에게 달리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물을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특별한 감각을 선물한 감독임에는 틀림없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춤'

<송곳니>

현재 가장 주목받는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단어 체계를 완전히 바꿔버린 한 가정을 통해 독재와 폭력을 은유한 <송곳니>로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후 그는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등의 영어 작품을 통해 세계 무대에 나왔다. 란티모스의 영화는 기묘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한 설정들을 가져와 천연덕스럽게 진짜인 양 보여준다. <더 랍스터>의 경우, 짝을 구하지 못한 자는 자신이 선택한 동물로 변해 영원히 숲속에 버려진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더 랍스터>

또 <킬링 디어>에서는 의료 과실로 사망한 환자 아들의 저주대로, 의사가 가족 중 하나를 죽이지 않으면 불행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란티모스는 이렇게까지 인공적으로 설계한 영화를 통해 현실을 향한 강도 높은 풍자를 이야기한다. 굳이 구별한다면 그의 장르는 블랙 코미디인 셈인데, 이 점이 가장 두드러지는 대목은 등장인물들이 괴상한 춤을 추는 장면이다. <송곳니>, <더 랍스터>,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모두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너무도 진지한 상황에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코믹한 춤이 생뚱맞게 펼쳐진다. 이때 춤은 란티모스가 지어 놓은 세계의 기묘함을 더욱 견고하게 만듦과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인간상을 맹렬히 조롱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훔쳐보기'

<이창>

그에게 영향받지 않은 감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진한 발자취를 남긴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그의 작품에서 나온 갖가지 영화 기법들은 여전히 현대 감독들에게 유용한 재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히치콕은 단지 기법뿐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재능이 탁월했다. 오죽하면 히치콕의 별명은 서스펜스의 거장이 아닌가. 그의 심리 드라마를 가능하게 한 독보적인 출발점들. 그중 하나는 아마도 훔쳐보기일 것이다.

<싸이코>

대표작 <이창>, <현기증>, <싸이코>는 모두 훔쳐보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창>의 서사 대부분은 다리를 다친 주인공이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 맞은편 집을 훔쳐보는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 <현기증>에서는 의뢰를 받은 사립 탐정이 한 여성을 미행하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며, <싸이코>에서 베이츠 모텔의 주인은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투숙객을 감시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이러한 관음주의적 시선을 통해 관객들을 관음에 동참시킨다. 몰래 본다는 행위 자체로 서스펜스는 극대화된다. 게다가 스크린을 통해 타인의 인생을 관찰하는 관객은 애초에 관음과 동떨어질 수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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