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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죽이기> 김상규 감독 - 우리 안의 혐오에 맞선 투쟁을 기록했다
김소미 사진 최성열 2019-08-15

<앨리스 죽이기>는 북한 여행기를 공개한 재미 한인 성악가 신은미씨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2011년에 세 차례에 걸쳐 북한을 여행한 그는 이후 언론에 여행기를 연재하고, 각종 토크 행사를 진행하면서 종북주의자로 낙인찍힌다. 김상규 감독은 논란이 격화된 2014년의 상황을 좇아가면서, 신은미씨 부부가 5년간의 강제 출국 조치에 처하기까지의 맹렬한 시간을 기록한다. “기존에 미디어에 노출된 장면과 내가 찍은 현실의 모습을 대조해서 관객 스스로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무엇이 왜곡되었는지 찾아갈 수 있길 바랐다”는 그는 ‘종북과 좌빨’ 언급에 들불처럼 번져가는 사회적 분노를 비추며 한국의 병든 단면을 드러낸다. SNS 형태로 화면을 시각화하고 빠른 편집으로 팽팽하게 긴장감을 직조해나가는 노련한 화법이 돋보이는 <앨리스 죽이기>는 김상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해당 기사가 실린 <씨네21> 1218호 64면 중 김상규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신은미씨에 관해 인터넷 방송이나 라이브 형태로 영상을 만들었고, 30분 정도 되는 짧은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력이 있다"라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김상규 감독이 <앨리스 죽이기> 이전에 만든 작업물들은 신은미씨와 관련이 없음을 바로잡습니다.

-대상에 대한 관심과 연결고리가 최초로 형성된 계기는.

=<앨리스 죽이기> 이전에는 인터넷 방송이나 라이브, 30분 정도 되는 짧은 다큐멘터리 등을 작업했는데, 신은미씨가 이미 나의 활동을 알고 이를 좋게 봐주셨다. 전부터 내가 흥미를 가졌던 것은 북한에 대한 이야기였다. 과거엔 북한에 대한 정보가 정말이지 극과 극이라는 생각을 했다. 북한 사회가 악마화되어 있고 절대로 상종 못할 집단이라는 인식이 한쪽에, 약간의 환상을 갖고 있는 듯한 입장이 또 다른 한쪽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극단의 정보 사이에서 분명히 더 다양한 결이 존재할 것 같았기 때문에, 북한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해외 국적자를 통해 북한의 여러 입체적인 모습을 그려보자는 것이 최초의 영화적 기획이었다. 그렇게 신은미씨의 오마이뉴스 여행기와 토크 콘서트를 접하게 됐다.

-2014년 촬영 당시 신은미씨와 유대감을 형성해나간 과정은 어땠나. 종북 논란이 확산되면서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받으며 타인을 향한 경계심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텐데.

=애초에는 한두번의 토크 콘서트만 찍을 생각이었는데 종북 논란이 빠르게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기록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더라. 신은미씨도 다큐멘터리를 촬영한다는 의식보다는 누군가가 옆에서 증거자료를 기록해준다고 느끼는 듯했다. 한국 사회에서 의지할 사람이 소중하게 느껴졌던 것인지 일반적으로 촬영 대상과 가까워지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친밀해졌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면서 프라이버시 개념이 강해진 분이라 처음엔 이런 것까지 찍냐고 당황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부부가 잠드는 늦은 시간까지 내가 자신들 집에 머무르니까 이제 그만 좀 가라고 돌려보내기도 했다. (웃음)

-익산 토크 콘서트 당시 도시락 사제폭탄이 터지는 장면이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담겼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일종의 트라우마가 남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테러의 주범(일간베스트 회원)과 피해자(당시 토크 콘서트 무대에 있던 자원활동가)를 가까이에서 취재하면서 무엇을 느꼈나.

=신은미씨와 피해 당사자, 즉 상해를 입은 분들의 이야기를 먼저 전해야 할 것 같다. 신은미씨는 미국에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거의 집에서만 생활하고, 혼자 외출을 하지 못했다. 사건 이후 한동안 한인마트를 못 가는 등 특히 모르는 한인을 마주치는 걸 굉장히 두려워했다. 한국은 근래에 빠르게 의식적인 변화가 있는 반면 미국 한인사회는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한국을 떠나기 전에 형성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비난이나 폭력적인 상황 등을 우려했다. 도시락 폭탄 사건 때 화상을 입었던 분도, 그리고 나도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언제 어디서든 폭력에 노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개봉 준비를 하면서 내 이야기가 일간베스트 사이트에 올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사진을 비롯해 정보가 공유되고 있기에 여러모로 좀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정치인도 유명인도 아닌 신은미씨가 지나친 관심과 함께 사회적으로 공격받는 상황인데,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끈질기게 맞선다. 신은미씨가 가진 남다른 태도의 동력을 무엇이라고 봤나.

=영화에서 신은미씨를 포착할 수 있는 두 가지 키워드가 음악과 종교다. 어린 시절에 리틀엔젤스 단원이었던 그는 국가의 문화사절단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 정상들 앞에서 공연을 했다. 그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고된 훈련의 과정이었고, 어린 나이에 타지 생활을 하면서 남들 앞에서 동작 하나라도 틀리면 꾸지람을 받는 엄격한 분위기 등으로 힘든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은미씨는 지금도 대중 앞에 서는 게 두렵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역경이나 고난이 있을 때 스스로 극복하려는 에너지와 동력을 강하게 내재하고 있는 사람이랄까. 매우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교리를 실천하는 것에 대한 자각도 높은 분이다. 북한을 다녀와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측면에서 강한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논란이 불붙은 초기에는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었다. 논란이 심해져서 더이상 못하겠다고 하기도 했는데 시민운동, 통일운동을 지속해온 주최측이 설득했다. 신은미씨도 자신을 초청한 주최측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하려 했다. 얼핏 평범한 사람이 정치적으로 휘둘린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자기 안에 강한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었던 인물의 힘이 점차 밖으로 드러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 마녀사냥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 북쪽에 있는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 등 아주 복잡한 의식과 감정들이 얽혀 있는 현장을 담았다.

=신은미씨는 한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위법행위만 아니면 무엇이든 표현해도 되는 사회 분위기에 익숙했던 분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나라가 아직도 과거의 정서나 잣대로 사람을 이렇게 재단하고 억누르는구나, 하는 생각에 슬픈 감정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출국할 때 짝사랑했던 대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실 나를 비롯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애국이란 표현이 크게 와닿지 않지만, 신은미씨는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가슴 한켠에 자긍심으로 품고 자라온 세대이자 집단의 일원이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의 한국을 기억하며 살아온 점도 한몫할 것이고. 남한도 사랑하고 북한에 있는 같은 민족도 사랑하는데, 이런 감정이 비난받고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배신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용감한 기러기상, 제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이 관객과 친숙한 자리에서 호흡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를 놓칠 수 없었다. 특히 편집의 호흡에 신경썼다. 기존에 미디어에 노출되었던 장면들과 내가 찍은 현실의 모습을 대조해서 관객 스스로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무엇이 더 왜곡되었는지 찾을 수 있길 바랐고, 그래서 미디어 푸티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SNS 형태로 화면을 시각화한 것은 신은미씨가 대중과 만나고 소통하는 창구가 페이스북이라는 데서 착안했다. 작은 휴대폰, 온라인을 통해서 다수와 접하기 때문에, 온라인 플랫폼이나 디바이스의 모습을 스크린에서도 재현하려 했다.

-가급적이면 많이 담고 싶었던 장면과 덜어내려 했던 장면의 구분이 궁금하다. 편집 과정에서 어떤 기준점이 있었나.

=관객이 그 순간, 그 현장에 존재할 수 있는 장면들 위주로 선택했다. 내가 거기서 느꼈던 안타까움이나 분노, 슬픔을 관객도 같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관객으로 하여금 직접 사건을 목격하도록 최대한 유도하고 싶었다면, 카메라 너머로 감독이 존재하는 것 같은 장면은 최대한 빼려고 했다. 쉽게 말하면 나의 자리를 관객에게 내어주고 싶었던 작업이다.

-현재 준비 중인 작품이 있나.

=재벌의 갑질 사건이 한창 논란이 되었을 때부터 촬영을 하고 있는 작품이 하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의 갑질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그것이 노동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어떻게 빼앗는지 다루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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