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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라는 직업군
심보선(시인)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일러스트레이션) 2019-08-21

최근 시인의 직업적 정체성과 커리어를 연구하고 있다.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의 직업적 특성에 대한 연구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연구들은 예술가가 직업적으로 매우 애매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조직에 속해 정기적으로 임금을 받는 경우도 드물고 표본으로 삼을 일반화된 커리어 경로도 알려져 있지 않다.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고가로 팔기도 한다. 배우는 명성을 쌓으면 높은 출연료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의 경우는 유명시인이라 할지라도 정해진 인세와 원고료를 받는다. 시집 또한 몇년에 한번 출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원고료와 인세로만 먹고사는 시인은 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은 대부분 “다중직업 종사자”이다. 어떤 연구는 시인을 가리켜 “커리어만 있고 직업은 없는 존재”라고 칭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까지 예닐곱의 시인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부분 문학 관련 강의에 종사하거나 출판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그외의 공통점은 많지 않았다. 모두들 다중직업으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직업 패키지를 지니고 있었고 그 패키지를 관리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시 쓰기를 중심에 둔다는 점, 시를 쓰면서 주어진 기회와 자원을 활용하여 자신의 직업적 패키지를 구성한다는 점이었다. 아직 연구의 최종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몇 가지 발견한 것들이 있다. 현대의 시인들은 시인에 대한 전통적인 이미지, 흔히 “이슬만 먹고사는 존재”, 산책 중에 영감을 받아 시를 쓰는 고독한 존재와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시인에 대한 낭만적 신화를 지지하는 시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시인들은 시인을 특별하고 예외적인 존재로 보는 시선이야말로 작품에도 좋지 않고 윤리적으로도 나쁘다고 주장했다. 자기도취적인 글과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시인 숭배 신화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경계심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시인이야말로 매우 바쁜 존재이다. 시인들은 독자, 편집자, 동료, 다른 예술가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고, 그 만남에서 학습하고 성장한다. 어떤 시인은 자신을 “보따리장수”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이 맞다면 그 보따리 안에는 무수한 일, 경험, 만남이 영감이 되어 빚어낸 문장들이 가득할 것이다.

내가 만난 시인들은 스스로를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직업인이라고 보진 않지만 모종의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고 자긍한다. 이때의 전문성은 특수 기술과 자격증 취득으로 증명되는 전문성이 아니다. 시인들은 무엇보다 언어에 골몰한다. 시인들은 언어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사람들이다. 언어에 골몰하다 보면 통상적인 언어의 용법 외에 다른 용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시인은 언어의 쓸모를 새롭게 정의하고 사용하여 새로운 의미와 대화를 창출한다. 거기서 이제껏 몰랐던‘나’, ‘우리’, ‘세상’의 형상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 새로운 형상을 필요로 하는가? 이러한 형상들을 취했을 때 우리에게 제공되는 보상은 무엇인가? 시인들을 인터뷰하면서 내게 떠오른 시인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시인들은 무지 바쁘게 일한다. 그 바쁜 와중에 시인들은 가끔 머리를 들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질문을 던진다. “어때? 어때?” 그 질문에 “뭐가? 뭐가?”라고 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시인은 참으로 이상한 직업인이자 전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