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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한국영화④] <타짜: 원 아이드 잭> 권오광 감독, "레퍼런스를 찾아도 하다보면 내 스타일이 되더라"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9-09-04

추석이면 전문 ‘타짜’가 온다. 2006년 568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추석 극장가를 사로잡고 이후 최동훈 감독의 시대를 열어준 <타짜>. 강형철 감독이 <타짜-신의 손>으로 원작을 새롭게 해석한 데 이어 이번엔 권오광 감독이 그 부담을 안았다. 권오광 감독은 능수능란한 포커페이스와 큰 판돈 대신 상대에게 조금은 내 표정을 읽혀도 좋을, 추석에 모여 친목도모하면 좋을 상쾌한 도박판을 구성한다. 장르를 차용하되 그 안에 현재 청년세대, 소시민의 어려움을 담아냄으로써 이 작은 ‘베팅’이 위안을 안겨주는, 독특한 도박영화다.

-<타짜-신의 손> 때 강형철 감독이 “3부 감독 한번 당해봐라”라고 인터뷰 말미에 경고성 멘트를 날렸다. (웃음) 그만큼 허영만 원작과 두 전작이 주는 부담이 큰 작품이다.

=4편 감독에게 나도 말해줘야겠다. 정말 많이 당했다. (웃음) <타짜> 시리즈의 팬이기도 했고, 작품 하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게 1편, 2편 다시보기와 분석이었다. 그러면서 두 감독님을 향한 존경심이 더 들었다. 강형철 감독님은 나보다 더 부담이 컸을 텐데 자신만의 색깔로 속편을 완성했고, 그 작품이 있었기에 3편도 만들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동훈 감독의 깜짝 카메오 출연도 성사시켰는데, 두 감독님에게 전달받은 도박(영화)의 ‘팁’은 없었나.

=두분 다 조언을 해주셨다. 최동훈 감독님에게 도박 신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자, “화려하게보다 나와 상대의 심리게임이라는 면에 집중해서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게 연출해보라”고 조언해주시더라. 두 감독님 모두 카메오로 출연시키고 싶었는데, 강형철 감독님은 그때 <스윙키즈>(2018) 개봉과 겹쳐 못했고, 최동훈 감독님이 참여해주었다.

-전편과의 차별점은 고시생 도일출을 중심으로 한 리얼한 소시민의 삶을 도박소재의 오락영화와 접목한 시선이다.

=장르적인 부분도 가져오지만, 더 크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타짜>라는 세계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기본적인 <타짜> 이야기를 어떻게 다른 스테이지로 옮겨올까를 고민했다. 거기서 가장 중요했던 게 시대를 ‘현대’로 가져왔다는 거다.

-최근 들어 ‘흙수저’ 논란이 가장 큰 이슈인데, 고시를 준비 중인 주인공 도일출은 이런 불평등한 세상에서 ‘차라리 도박’이라는 선택을 한다.

=시나리오 쓸 때는 염두에 둔 실제 모델도 있었는데, 계속 입시 비리 문제가 터지고 있다. 30대인 나도 그렇고, 나보다 더 어린 친구들도 기본적으로 이 사회에서 가지는 패배의식, 자괴감이 있고 그게 점점 더 심해져 불만으로 자리한다. 그 감정들을 담고 싶었다. “어쩌면 도박이 더해볼 만한 거 아냐”라는 도일출의 대사는 그 생각에 대한 지금 청년들의 대답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도일출은 원작의 도일출 역에 비해 외모와 재능을 가진 캐릭터다. 도일출 역으로 ‘박정민이라는 카드’를 펼치는 짜릿함이 있다. 평소 박정민의 리얼한 연기를 볼 때 현실감을 살리는 데 꼭 필요한 카드이자 한편으로는 장르영화에서는 베팅하는 카드기도 하다.

=우리 영화가 전편들과 구분되는 지점이 동시대성, 현대성이라고 봤을 때 박정민은 그 컨셉에 가장 적합한 배우라고 봤다. 도일출은 청년세대가 가진 피해의식, 콤플렉스가 있는 인물인데, 처음 그가 전문 도박꾼인 이상무(윤제문)와 도박할 때 그를 건드린 것도 자존심 하나다. 평범한 청년이 도박에 손대고 변화하는 감정 변화를 표현하고 싶었다. 박정민의 훌륭한 연기력이 그걸 표현해줄 수 있다고 봤다.

-이번엔 화투가 아닌 포커, 화투판이 아닌 포커판을 연출해야 했다. 도박 소재를 영화 공식에 담으면서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원작 <원 아이드 잭>의 설정이 포커다. 화투가 ‘뽕끼’가 있다면 포커로 오면서 좀 젊어진 분위기다. 참여하는 세대도 젊다. 포커라는 게임 세계로 들어가서 풀 수 있는 요소가 많은데, 또 너무 들어가면 포커 룰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흥미가 떨어질 수 있겠더라. 도박판의 디테일한 묘사보다는 그래서 인물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가령 패를 까서 그 패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그 패가 무엇인지 짐작게 하는 방식이다. 예전에 타이거 마스크 쓰고 마술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마술하고 나서 어떻게 한 건지 다시 보여준다. 아, 그거였구나 하고 알아갈 때 오는 재미가 있다. 도박 장면에서 그 구성을 차용해 재미를 주려고 했다.

-도박의 재미, 화려함 같은 걸 살려주는 방식으로 <오션스> 시리즈 같은 케이퍼 장르의 팀플레이로 구성했다.

=장르적인 재미를 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물영감(우현)을 비롯해 애꾸(류승범)가 불러모은 ‘원 아이드 잭’팀인 화려한 손기술을 가진 까치(이광수), 사람을 홀리는 연기력을 갖춘 영미(임지연), 그리고 도박판의 숨은 고수 권 원장(권해효)이 그 역할을 해준다. 팀플레이를 하면서 속고 속이는 가운데 오는 재미를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연관된 영화들이 많이 떠오르는데, 특별히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이 있다면.

=촬영감독과 이야기하면서 떠올린 작품은 <오션스> 시리즈와 맷 데이먼 주연의 포커 소재 영화 <라운더스>(1999)였다. 두 영화 모두 가볍고 화려하다기보다 카메라가 묵직하게 움직이고, <라운더스>는 우울한 부분도 있다. 그런 분위기를 참고했다. 밤 장면이 많아서 콘트라스트가 강하고 어둡고 진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카메라 움직임도 컷을 많이 나누는 빠른 전개보다 줌을 과감하게 많이 사용해 사이즈를 바꿔가면서 배우들의 연기를 담는 데 주력했다. 좀 올드해 보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런 카메라 움직임이 좀더 영화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장르적인 재미는 영화의 악당 캐릭터를 통해 드러난다. 각각의 악역을 어떻게 묘사하려 했나.

=‘마귀’ 캐릭터는 많이 가려야 하는 캐릭터다. 이름만으로 존재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실체가 존재하는, 그런 센 악당의 이미지다. 반대로 물영감은 계속 옆에 있지만 아무도 그 사람의 실체를 모른다. 그렇게 서로 다른 온도의 악당을 그리고 싶었다. 도일출이 그렇게 다른 종류의 악당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애꾸는 도일출을 이끌어주는 인물, 일종의 멘토이자 이 사기극의 판을 짜는 인물이다. 류승범 배우의 오랜만의 출연이기도 한데.

=일출이나 일출 엄마처럼 리얼한 캐릭터, 마귀, 물영감처럼 만화적인 캐릭터가 공존한다면 애꾸는 마치 안개 속에 있는 인물 같았으면 했다. 류승범 배우 개인의 요즘 행보가 연상되는 설정도 가져왔는데, 가령 ‘좀 나가 있다 왔다’는 것도 해외 생활하는 그의 모습을 반영한 거다. 의상, 헤어 등도 배우의 요즘 모습을 대부분 그대로 반영했다.

-<타짜>가 탄생시킨 한국영화의 기록할 만한 캐릭터가 정 마담(김혜수)이다. 마돈나 역할은 정 마담의 맥을 잇는 팜므파탈 역할인데, 그녀가 가진 히스토리를 보여주면서 전편들과 다른 팜므파탈을 만들어냈다.

=원작을 각색하면서 많은 부분을 바꾸었는데 그중 카장 큰 변화가 여성 캐릭터에 관한 거였다. 지금 세대가 볼 때 원작에서 납득이 가지 않는, 마초적인 지점이 있었다. 그래서 마돈나 캐릭터에 변화를 주고 그 여성의 행동에 이유를 부여하고 싶었다. 1, 2편과 좀 다른, 좀더 어둠을 가진 팜므파탈 캐릭터로 만들었다.

-장르성을 확연하게 전개한 앞선 두 작품과는 확실히 다른 톤이다. 전작 <돌연변이>를 통해 청년세대의 현실적 고민을 풀어낸 것과도 맥이 닿는 상업영화 데뷔라는 생각이 든다.

=제일 고민했던 지점이다. 도박을 미화하고 싶지도 옹호하고 싶지도 않고 멋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얼핏 보면 화려해 보이지만 도박꾼들의 말로가 좋지 않다. 그래도 장르영화, 오락영화를 보고 관객이 좀 기분좋게 극장을 나갈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너무 화려하게만 치달아서 현재의 일상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 하려 했다. 그래서 일출이 변화해가는 과정에서, 삶의 가치를 깨닫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봤다. 남을 속이는 사람이 아닌, 하루하루 가치 있게 사는 사람들이 진짜 ‘타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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