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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문이 열린다> 유은정 감독, 배우 한해인·이승찬 - 유령이 전하는 위로가 담긴 영화
김소미 사진 최성열 2019-09-06

“유령 혜정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면서, 삶의 원동력을 갖게 되는 단단한 인물로 성장해나간다.”(배우 한해인) ‘다양한 시선, 색다른 발견’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경기 인디시네마 데이를 통해 <밤의 문이 열린다>가 롯데시네마 안양일번가에서 관객과의 대화(GV) 행사를 가졌다. 이번 행사에는 유은정 감독과 한해인, 이승찬 배우가 참석했다. 학창 시절을 안양에서 보내면서 극장을 자주 찾았다는 한해인 배우에게는 유독 감회가 남다른 관객과의 만남이었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도시 외곽 공장에서 일하던 혜정(한해인)이 유령이 되어 시간을 거꾸로 걸어가며 한집에 살았던 효연(전소니)의 사연을 알게 되는 독특한 구조의 이야기다. 김소미 기자는 “쇼트커트를 한 한해인 배우를 보니 전성기 시절의 미아 패로가 생각나기도 하고, 호러나 미스터리 장르에 어울리는 독보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승찬 배우는 비교적 짧은 분량임에도 민성이란 인물의 전사까지 헤아리게 만드는 애틋함을 자아냈다”라고 성공적인 캐스팅의 과정을 물었다. 유은정 감독은 “단편영화 <증언> 촬영장에서 한해인 배우를 처음 만났는데, 무리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이라 힐끔힐끔 훔쳐봤다”고 말문을 열었다. “침착하고 조용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단단한 것이 있는 사람. 속도가 빠르기보다는 무게감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 혜정과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혜정을 매일 집까지 바래다주는 공장 동료 민성을 연기한 이승찬 배우에 관해선 단편영화 <침입자>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연기한 이력을 거론했다. “워낙 인품이 좋으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분이 사이코패스 역할을 잘 소화했다니 그 간극이 더욱 흥미로웠다. 민성에게 소박하고 성실한 디테일이 있길 원했는데 배우에게 실제로 그런 면이 있기도 했다.” <밤의 문이 열린다> 속에는 슬픈 인물들이 모여 있다. 특히 혜정은 삶이 너무 버거운 나머지 습관적으로 관계를 거부하고 회피하는 데 익숙해진 인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뒤 유령이 되어서야 생의 온기와 희망을 되찾는다. 고독했던 인물의 심리적 변화와 성장을 길지 않은 호흡 속에서 보여주어야 했을 한해인 배우는 “작품 속 세계에서는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지만, 영화를 끌고 나가는 배우로서는 힘 있게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두 측면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고충을 들려주었다. “무언가를 일부러 보여주려고 감정을 표출할 게 아니라 완전히 유령처럼 존재해야만 이 영화가 제대로 흘러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를 개인적인 목표지점으로 삼고 연기했다.” 이승찬 배우는 “영화에서는 사라졌지만 기존의 시나리오 속 디테일도 매우 흥미로웠다. 민성은 그 당시 나의 어떤 부분과 많이 닮아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이 담겨 있는 캐릭터라 여러 면에서 공감이 되었다”라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유은정 감독.

유령이라는 호러적 장치, 미스터리 범죄물의 구조를 끌어안은 유은정 감독의 데뷔작 <밤의 문이 열린다>는 장르물을 향한 연출자의 본능이 선명히 느껴지는 동시에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정서는 독립영화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두 특성의 조화가 기묘하고 반가운 영화다. 김소미 기자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타임슬립 설정, 호러와 미스터리 장르를 차용하는 방식을 쓴 이유와 최초의 영감을 물었다. 유은정 감독은 “유령 이야기를 생각하기 전부터 타임슬립 작품들을 좋아했다. 후회하거나 못했던 것들을 다시 하게끔 만들어주는게 참 매력적이다. 우리 영화와 전혀 결이 다르지만 할리우드영화<소스 코드>를 예로 들자면, 처음엔 어떤 열차의 폭발을 막으려고 반강제적으로 시간을 거슬러가다가 영화 말미에는 평소 연락하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 타임슬립이란 생각보다 꽤 정서적인 면모를 지닌 장치라는 생각이 들어 호감이 가더라”라고 답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한 관객은 민성이 집 앞에서 애정을 고백하자 이를 거절하는 혜정의 연기가 평소 한해인 배우가 자주 쓰는 말투나 특징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을 질문했다. 한해인 배우는 혜정이 “남들 눈에 띄지 않고 말도 잘 못 거는 서툰 사람임에도 그 장면만큼은 분명하고 확고하게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라고 운을 뗐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민성의 감정이 당혹스러울 것이고, 그런 마음 때문에 말들이 가시처럼 튀어오를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를 변호하듯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쏟아내는 모습은 그 상황이 혜정의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의미다. 속에 있는 것들이 솟아나오는 날이 선 장면이다”라고 풍성한 해석을 덧붙였다. 영화의 제목이자 내레이션에서 언급되는 ‘밤의 문’도 관객의 주요 궁금증 중 하나였다. 특히 영화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언제든 열 수 있었지만, 열지 못했던 밤의 문”이라는 내레이션에 관해 유은정 감독은 “여러 의미로 수렴되는 중의적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박윤선 작가의 단편집 제목을 허락받아 썼다. 우리는 주로 밤이 되면 낮에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본다. 후회하기도 하고 혼자서 외롭게 안 좋은 생각을 하기도 하는 등 여러 작용이 일어난다. 그럴 땐 혼자만의 힘으로 빠져나오는 게 힘들다. 그래서 열 수도 있었지만 그동안 열지 못했던 어떤 문을 열게 되었다는 의미가 더 소중해지는 것 같다.” 늦은 밤 진행된 행사지만 이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은 질의응답까지 열띤 모습으로 참여해 주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아프고 외로운 자리에서 시작해서, 유령이라는 판타지를 경유한 뒤, 결국에는 현실의 희망이나 사랑을 말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밤의 문이 열린다>는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각성시키는 영화다. 공장 노동자 혜정과 빚에 시달리는 효연, 가족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린 수양(감소현)과 경제적 궁핍으로 고통받는 효연의 언니 지연(이자원), 이들의 진실을 좇는 형사 성원(홍승이)까지 여성의 사회적, 심리적 불안을 내포한 훌륭한 여성 서사로서도 주목할만 하다. 차기작으로 또 한번 유령이 나오는 영화를 준비 중이라는 유은정 감독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한해인 배우 또한 올해 초에 두 번째 장편영화 촬영을 마쳤고, 이승찬 배우도 꾸준히 작업 중이다. 마침 영화의 배경이 추석 시즌, 이날 행사는 다가오는 추석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따뜻하게 마무리됐다.

배우 한해인.

배우 이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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