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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 꼭 복원합시다
주성철 2019-09-13

장산곶매의 <파업전야>(1990)와 함께 바리터의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1990)라는 영화가 있었다. <파업전야>가 ‘경찰이 필름을 압수하고, 경찰 12개 중대와 헬기까지 동원해 상영을 저지한 영화’로 신화화되고, 개봉 30년 만에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올해 5월 1일 노동절에 재개봉하며 여전히 한국 독립영화의 불굴의 전설로 회자된 반면, 같은 해 만들어진 김소영 연출, 변영주 촬영의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는 한국 여성영화사에 있어 한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오직 ‘구전’으로만 전해졌을 뿐, 그 어디서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심지어 한국영상자료원과 <씨네21> 홈페이지에서도 검색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존재 자체가 궁금했던 작품이었다. 그러다 올해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한국영화 100주년, 그리고 한국 최초의 여성영화집단 바리터의 30주년을 기념하며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를 상영하고 스페셜 토크시간을 가졌다. 한국영화사의 숨겨진 보물 같은 기억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국 독립영화의 전설로서, 당대 노동운동의 중요한 성과로서 <파업전야>가 가진 의미와 가치가 퇴색될 리는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시선에서 보자면 ‘덜컥’거리는 순간이 있음도 부정할 수는 없다. “너 어제도 거기 갔냐? 돈이 남아도나 보네”라며 성매매를 암시하는 듯한 얘기도 나오고, 한 여성에 대해 얘기하며 “먹었냐”라는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며, 남녀직원의 일당 차이를 지적하며 “남자 직원보다 뭐가 모자라?”라고 항변하는 여성에게 “모자라는 게 있지!”라며 아랫도리를 쳐다보는 장면 등 영화 속 장난이나 유머, 혹은 ‘그땐 그랬지’ 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오랜만의 감상에 제동을 거는 장면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반대편에서 함께 언급하고 기억해야 할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가 던져준 재미와 충격은 그야말로 신선했다. 상고 출신의 여성 사무직 노동자가 직장생활과 육아 사이에서 겪는 고통스런 현실에 더해 “가끔 남자 직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농담이 역겹다”는 주인공의 독백, 그리고 ‘여자가 안경 써서 재수 없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하여 면접에 안경 쓰고 온 것을 후회하는 또 다른 여성 등,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씁쓸하긴 하지만, 영화가 제기하고 있는 여성 문제나 묘사들이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뭐랄까, 극영화로서 지금 봐도 정말 재미있다!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는 한국여성민우회와 바리터가 공동기획하고 제작한 16mm영화로, 당시 한국여성민우회 회장이었던 한명숙 전 총리가 특별출연하여 여성 노동자들이 알아야 할 노동법에 대해 해설하는 장면도 있고, 배우로도 출연한 당시 촬영부 김영 PD의 입에 더빙된 당시 변영주 촬영감독의 목소리라든지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옛모습 등 흥미로운 장면도 꽤 많았다. 김소영, 변영주 감독 외에 권은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의 진행으로 서선영, 도성희, 김영, 김소연 등 바리터 멤버들이 총출동한 스페셜 토크 ‘바리터 30주년의 의미를 말하다’는 이번호 이주현 기자의 기사를 참고해주길 바란다.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는 보다 깨끗한 화질로 더 많은 관객과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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