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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여성영화제①] 쟁점포럼 ‘선을 넘은 남자들, 벽을 깨는 여자들: 룸, 테이블, 클럽의 성정치’ 현장에 가다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19-09-18

밀실과 유흥, 그리고 성경제

2019년 동시다발적으로 점화된 ‘장학썬’(고 장자연 배우, 김학의, 버닝썬) 사건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 ‘유흥문화’에 대한 논의를 다시 점화시켰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마련한 쟁점포럼 ‘선을 넘은 남자들, 벽을 깨는 여자들: 룸, 테이블, 클럽의 성정치’ 역시 이 문제를 다각적으로 살펴보고자 한 자리였다. 8월 31일 오후 1시부터 상암동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이번 포럼에서 김주희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배주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황유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등이 발표자로 나섰다. 진행은 권김현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가 맡았다. 토론자로 참여한 황미요조 영화연구자, 이영재 성균관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에 이어 관객이 던진 질문에 세 발표자가 답을 하며 논의를 확장하는 시간도 가졌다. 세 발제자의 발표 내용을 중심으로, 포럼 현장에서 오간 이슈를 재구성했다.

'버닝썬 게이트'와 ‘테이블’의 성경제

-김주희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권김현영, 김주희(왼쪽부터).

유흥업소를 차릴 때 중요한 것은 아가씨를 모으는 거다. 아가씨들에게 받은 차용증을 은행에 제출하면 이것 자체가 담보가 된다. 강남에 위치한 업소가 아가씨를 30여명 거느린다면 장사가 안 될 리 없다는, 금융적인 의미로서의 신용이 생긴다. 이렇게 여성 몸의 증권화가 이루어지며 많은 업소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승리의 버닝썬 역시 마찬가지다. 한류스타 승리의 인기, 그가 남자 연예인으로서 가진 권능, 거대한 팬덤이 여성의 수를 보증하게 됐다. 투자할 만한 가치를 부여받은 것이다.

2019년 초부터 시작된 ‘버닝썬 게이트’에 경찰은 수사관 150명을 투입해 100일간 조사에 착수했지만, 5월 15일 대부분 증거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됐다. 버닝썬의 사내이사였던 승리와 그의 동업자 유인석 전 유리홀딩스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고, 승리 일행이 단톡방에서 ‘경찰총장’이라 부른 윤 총경에 대한 과태료 처분만이 내려졌다.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구속기소된 버닝썬 공동대표 이문호는 8월 22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지만 불법은 아니’라는 그들의 발언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진술이다.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문화를 일상적인 것, 합법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법과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버닝썬 게이트’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지만 이를 구성하는 각종 사건의 면면은 우리 사회에서 사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이문호는 “승리의 3년 전 카카오톡 내용이 죄가 된다면 대한민국 남성들은 다 죄인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은 해당 사건이 발생했다는 직접적 증거가 될 수 없고, 직접 고소하는 피해자도 등장하지 않았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항변한다.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행위는 합법적인 일상 문화에 속한다고 말한다.

‘버닝썬 게이트’ 연루자들은 성폭력이든 성접대든 불법적 사건이 없었다는 증거를 직접 제시하지 못했음에도 해당 사건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성관계는 있었지만 성폭력은 아니었다’ 혹은 ‘술자리는 있었지만 성접대는 아니었다’고 부인하는 방식에는 여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라벨링하는 논리가 숨어 있다. 해당 여성은 ‘어떤 여성’이었기 때문에, ‘여성이 원했다’거나 ‘그래도 되는 여성’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한편 기획사-남성 연예인 중심의 ‘버닝썬 카르텔’을 결속시키는 요인은 클럽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이다. 이 수익의 대부분은 남성 고객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주류와 테이블 좌석 구매비용이다. 클럽에서 테이블 손님이 고가의 세트 메뉴를 주문하면 비키니, 교복, 홀복 등의 유니폼을 맞춰 입은 샴걸(champagne girl)이 폭죽을 쏘면서 요란하게 세트 메뉴를 테이블까지 배달해주곤 한다. 샴걸의 퍼포먼스는 남성 손님의 구매력을 과시하고 여타 테이블의 경쟁적인 소비를 촉진하는, 클럽에 존재하는 ‘테이블=남성 vs 플로어=여성’이라는 위계적 성별성을 강화한다. 그렇기에 테이블 손님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온다’는 성매매 업소를 떠도는 오랜 명제가 클럽에서도 통용된다. 테이블 손님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수백명의 영업담당(MD)이 여자 손님들을 유치한다. 강남의 클럽에는 입구컷, ‘입뺀’이라 불리는 ‘입장뺀찌’의 규칙이 있다. 또한 예쁜 여자 손님은 MD에 의해 픽업되어 VIP 테이블에 접근할 수 있다고, 여성을 남성에게 제공하는 것은 여성에게 폭력이 아닌 기회라고 말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클럽 관계자에 의해 통제되고 부양된 한국 여성들의 신체의 숫자, 젊은 여성들의 육체가 제공하는 한국 클럽의 스펙터클은 글로벌 투자자, 아시아 재벌들, 한국 남성들이 강남의 버닝썬에서 주류와 테이블 비용을 지불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클럽 버닝썬이 몸집을 키우고, 승리가 아시아의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버닝썬 클럽을 가득 채운 ‘살아 있는 여자들’이 있다. 이렇게 여성들이 제공하는 클럽의 스펙터클을 통해 승리는 사업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과격하게 비유하자면, 강간 약물에 의식을 잃은 ‘죽은 여자들’도 승리의 권능을 증명했다. 이들이 강간당하는 모습을 담은 불법 촬영 영상은 글로벌 포르노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다. 여성 혐오를 생산하는 클럽 테이블, 한류 기획사, 글로벌 투자회사 등 전방위적 산업 시스템과 여성 혐오를 통해 지속되는 남성들의 일상 문화에 대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성찰과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영화에서 밀실의 재현: 카페 여급에서 텐프로까지

-배주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배주연 프로그래머(오른쪽).

한국영화에서 밀실은 성적 욕망이든 권력에의 의지든 남성의 욕망과 연결되어 영화사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재현되어 왔다. 밀실의 여성들은 동원되기도, 격리되기도 하면서 그 자체로 밀실화됐다. 시대적 맥락에 따라 ‘여급’, ‘양공주’, ‘기생’, ‘호스티스’, ‘텐프로 마담’ 등 그 재현 양상이 달라졌지만, 권력화된 국가권력의 형성과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동원되는 동시에 내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 이후, ‘바/카페의 여급’은 근대적 가치와 전통적 가치의 대립, 도시화의 병폐와 여성의 내부단속을 위해 빈번하게 영화에 등장했다. 대부분 가난 때문에, 혹은 인신매매로 인해 몸을 파는 여성들로 그려지지만, 때로는 돈과 성욕에 눈먼 여성들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은 가부장제 질서를 어지럽힌 죄로 처단되기도 하고, 남성들의 자기합리화를 위해 구원의 대상이 되어 남성 주체를 구제하기도 한다.

‘양공주’라 불리는 기지촌 여성들은 50년대 이후 스크린에 등장했다. 기지촌의 재현은 당시 범람하던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과 그럼에도 민족성, 즉 남성성의 훼손의 기호로서 여성의 형상을 보여줬다. 김연숙 한국여성연구소 연구자의 ‘양공주가 재현하는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 논문은 양공주를 민족 정체성을 훼손당한 희생자 코드로만 읽는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경제적 자립과 외래문화의 접목 사이 경계의 틈새를 몸으로 다시 읽어내기를 주장한다. 가령 신상옥 감독의 <지옥화>(1958)에서 여성 댄서들의 유혹적인 몸짓과 양공주를 쫓는 미군의 모습, 밀수를 하는 기지촌 주변의 서식자 남성들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신은 ‘매혹과 위험’이란 양가적 가치를 보여준다.

60년대 후반이 되면 기생 역시 활발하게 영화에 소환되기 시작한다. 기생관광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삼았던 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 시기 박정희 정권은 2차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고 베트남전 파병을 시작했으며, 새마을운동 등의 국민 동원 정책을 실시했다. 노동은 근로라는 말로 대체되며 주변화된 남성들과 여성들을 경제개발에 동원했다. 이러한 박정희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가 ‘팔도 시리즈’이며, 이 시리즈의 인기에 부합해 만들어진 김효천 감독의 <팔도기생>(1968) 역시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70~80년대에는 호스티스 멜로드라마가 번창했다. 3차 경제개발계획 이후, 경공업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이전에 도시로 유입된 여성들이 유휴노동력으로 남게 되자, 이들의 성을 단속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런 맥락에서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는 “결혼은 안 하고 섹스는 하고 노동도 하지 않는” 여성들은 질병적 요소가 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제거되거나 치유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남성 중심의 민족 서사 안에서 이중, 삼중의 밀실에 갇히거나 그 자체로 밀실이 된다. 대신 훼손된 남성성은 여성의 자궁을 기화 삼아 복원을 시도한다. 상실된 것은 순수한 시절이 아닌 여성의 순결이므로 남성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

2010년을 전후해 블록버스터영화에서 룸살롱은 최고 권력층을 비난하기 위해 등장한다. 남성들로만 가득한 영화들이 등장하자, 호스티스가 된 여자들의 사연을 들어줄 시간도 아깝다는 듯 이들 영화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지워진다. 물론 이런 영화들은 ‘룸살롱 공화국’, ‘룸살롱 법정’ 등 한국 사회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권력 축재의 현실을 고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대한민국 대통령도 어찌하지 못했던 검찰과 재벌 권력을 영화적으로 처단하겠다는 분명한 야심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남성들에게만 국한된 영화적 상상력이자, 남성에게 가로막힌 현실을 다룰 뿐이다. 남성들이 현실을 개탄하고 비판하는 사이, 여성들은 밀실에서 죽거나 추방당한다.

흥의 ‘아웃소싱’과 유흥의 성정치

-황유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황유나 활동가(오른쪽).

‘성접대’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성접대’는 ‘접대’와 별도의 영역으로 다뤄지고 그 ‘강제성’에 초점이 맞춰진다. 유흥업소를 방문한 기업이 다른 기업에 ‘접대’를 하는 것은 사회 공통의 문제로 공론화되지 않는다. ‘성접대’가 법정에 관료의 뇌물 비리로 치환되고, 무엇보다 여성의 대가 수령 여부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유흥업소의 ‘접대’는 강제성을 증명하지 못하고 당연한 남성 문화로 여겨진다.

룸살롱으로 널리 알려진 유흥주점에는 손님의 유흥을 돋우기 위한 유흥 종사자가 있다. 법적으로 ‘부녀자’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성별이 지정되어 있다. 유흥 종사자를 둘 수 있는 유흥업소는 유흥주점으로 등록된 사업장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유흥주점이 아닌 단란주점, 휴게음식점, 일반음식점일지라도 ‘남성’ 손님이 부르면 ‘여성’을 부르는 도우미 문화 역시 한국 사회의 일상이다. 실질적으로 접대 상품이 거래되는 유흥업소의 범위를 산정할 경우 유흥업소는 전국에 4만여개로 추정되는데, 이는 치킨집보다 높은 수치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기업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고안된 노동 유연화의 대표적인 방식인 외주화(outsourcing)는 보통 고용관계의 변화 중 간접고용을 다룰 때 포괄적으로 사용된다. 외주화는 고용관계에서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업무가 아닌 노동력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되어왔다. 얻고자 하는 것을 취하되 그 과정에서 필요하거나 수반되는 위험요소와 책임을 회피하고 회피한 만큼의 몫을 가장 취약한 자에게 전가하는 외주화 방식은 유흥업소 운영방식과 닮았다. 유흥업소의 손님과 업주 및 업소 관리자들은 ‘흥의 아웃소싱’을 통해 각자의 이익을 나눠 갖는다. 그 과정에서 위험과 책임부담은 모두 여성 종사자 개인의 몫으로 전가한다.

‘초이스’는 유흥업소 접대의 첫 단계이자 남자들의 ‘흥’을 주조하는 핵심적인 장치다. 남성이 자신을 접대할 여성을 선택하는 과정은 손님과 여성 종사자의 권력관계를 무엇보다 선명하게 구현한다. 유흥 종사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자신의 역할을 ‘심부름꾼’, ‘시다바리’, ‘을’이라 설명한다. 과일을 깎는다거나, 마이크나 재떨이를 가져다주고 쓰레기를 버리는 등 남성이 대접받고 있다는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한다. 이것이 바로 남자들이 원하는 ‘흥’이다. 접대에서 ‘흥’이 깨지는 순간은 남성 손님의 ‘갑’ 행세에 위기가 찾아올 때다. ‘흥’을 깨뜨린 여성 종사자는 ‘뺀찌’(접대 중간에 방에서 쫓겨나는 상황)를 당한다. 주어진 시간을 채우지 못한 여성 종사자들은 테이블비의 절반 혹은 어떤 대가도 받지 못한다. 유흥 종사자의 수입을 결정할 권리가 손님에게 있는 유흥업소의 테이블비 지급 시스템은 누가 누구를 통제할 수 있는지 확인시키는 또 하나의 장치다. 유흥 종사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접대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능력이 ‘눈치’와 ‘센스’라고 말한다. 이는 친밀성 노동(감정적인 친밀감뿐만 아니라 아주 가까운 물리적 접촉면을 포함하는 긴밀한 노동, 개인의 사적인 영역까지 침투해 들어오는 노동)이자 남성으로부터 외주화된 친밀감을 채워주기 위해 요구된다. 남성들이 친밀성을 외주화하는 것은 스스로의 친밀한 감각 그리고 남성간의 친밀감을 획득하기 위함이다. 남성들은 타인의 ‘인정’과 ‘다정함’을 갈망하고 이를 채우지 못해 유흥업소를 방문한다. 여성적인 것을 거부하고 부정하되 이를 ‘여성’으로부터 채우고자 유흥업소에서 접대를 받는 것이다. 또한 접대 여성들 앞에서 자기 과시를 하고 인정받는 등 다정하게 대우받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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