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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의 모든 것⑤]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 혹은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에 대하여
이주현 2019-10-02

그가 그다

<다크 나이트>

슈퍼히어로영화

슈퍼히어로영화에 어울리는 배우와 그렇지 않은 배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호아킨 피닉스는 슈퍼히어로영화를 나서서 선택할 것 같은 배우는 아니다. 물론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닥터 스트레인지>(2016)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드라마 <셜록> 시리즈의 셜록 홈스가 슈퍼히어로에 버금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긴 했지만. 어쨌든 호아킨 피닉스도 슈퍼히어로영화의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닥터 스트레인지>의 닥터 스트레인지였다. 21세기 최고의 메소드 배우 중 한명인 호아킨 피닉스가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것의 불편함을 이유로 들어 출연을 고사했다는 이야기는 십분 이해되고도 남는다. 그런 호아킨 피닉스가 토드 필립스의 <조커>를 선택한 것은 캐릭터와 이야기의 고유함 때문이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대담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슈퍼히어로 장르에 속하는 그 어떤 영화와도 달랐고, 지금껏 봤던 그 어떤 드라마 장르와도 달랐다.” <조커>는 <원더우먼>(2017), <저스티스 리그>(2017) 등 DC 확장 우주(DC Extended Universe, DCEU)와는 다른 궤도에 놓인 영화이고, 원전에 구애받지 않고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호아킨 피닉스에게 주어졌다. 아서의 의상과 분장은 가난한 광대의 분장과 다름없고, 그가 손에 쥐는 무기는 권총 한정이 유일하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

호아킨 피닉스를 위한 조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부터 호아킨 피닉스를 염두에 두고 조커 캐릭터를 써내려갔다. 더 정확히는 시나리오를 쓰는동안 호아킨 피닉스의 사진을 옆에 두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토드 필립스와 공동 각본가 스콧 실버가 ‘조커=호아킨 피닉스’를 상정하고 캐릭터 구축을 했던 이유는 호아킨 피닉스의 예측 불가능성, 용감하면서도 연약한 면모, 대담한 연기 때문이었다. 조커라는 캐릭터 자체가 바로 그런 특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코믹스의 안티 히어로 조커는 불 같기도 얼음 같기도 한 광기의 범죄자다. 과장되게 입꼬리가 올라간 ‘해피 페이스’가 트레이드마크지만 그 얼굴에서 행복과 기쁨을 발견할 수는 없다. 과시적이면서도 깊이 침잠하는, 증오와 혼돈의 캐릭터. 이런 복합적 내면을 가진 반영웅 조커를 1+1=2와 같은 수학적 연기로 표현할 순 없을 것이다. 실제로 <조커>에는 ‘어떻게 여기서 이런 답을 도출했지?’ 싶은 순간이 수도 없이 많다. 공감 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애써 상황에 공감해보려 미소를 지을 때 그 미소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불안함 같은 것. 혹은 감정이 배제된 하이톤의 소리로 ‘하하하하하하’ 웃음을 이어가다 일순간 웃음을 뚝 끊어버릴 때 느껴지는 섬뜩함 같은 것. 호아킨 피닉스는 아서의 제어할 수 없는 웃음 병증만으로도 수십 가지 상황과 감정을 만들어낸다.

<배트맨>

역대 조커

누구라도 조커 역에 캐스팅되면 앞서 조커를 연기했던 배우들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조커를 연기하는 배우의 숙명이랄까. 조커 하면 잭 니콜슨이던 시절이 있었다. 팀 버튼의 <배트맨>(1989)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는 살인을 예고하는 순간에도 익살스러운 농담을 잊지 않는다. 악당의 섬뜩한 카리스마에 여유를 불어넣은 잭 니콜슨의 연기 덕에 <배트맨>의 조커는 너무도 감정적이고 치명적인 악당이 되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 나이트>(2008)를 내놓았다. 히스 레저는 잭 니콜슨의 조커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조커를 창조했다. 세상을 혼돈에 빠뜨리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카오스 그 자체의 인물. 순수하게 상대를 ‘엿’먹이기 위해 방화, 절도, 살인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무규칙의 악. 게다가 희대의 조커 캐릭터를 남기고 세상을 떴기에 히스 레저의 조커는 영원성을 띨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의 자레드 레토는 잭 니콜슨과 히스 레저가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지를 재확인시켜주고 말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호아킨 피닉스는 조커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는 ‘조커’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아서 플렉은 범접할 수 없는 광기의 악당이 아니라 7개의 알약에 의지하면서 겨우겨우 분열된 자아를 통제하며 살아가는 아픈 남자이다. 엄마에게 다정하고, 코미디언으로서의 꿈이 있고, 커다랗고 무거운 신발을 이끌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가혹하다면 가혹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 그러면서도 어딘지 의심스러운, 신뢰할 수 없는 화자. 지금까지의 조커 중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인물이 호아킨 피닉스의 아서 플렉/조커다.

<마스터>

강렬한 몸

위태로워서 위험한 남자 아서 플렉이 되기 위해 호아킨 피닉스는 하루에 사과 하나만 먹으며 23kg의 몸무게를 감량했다. 척추뼈가 적나라하게 튀어나온 앙상한 등과 이상하게 한쪽만 삐죽 솟은 어깨뼈, 곳곳에 멍이 들고 상처 입은 몸은 아서의 불안하고 아픈 내면을 형상화한 듯하다. 호아킨 피닉스는 “굶주려 있고 건강하지 않은, 영양실조 상태의 늑대처럼 보이길 바랐다”며 극한의 체중 감량을 감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과연 기이하게 마른 몸, 폭력의 흔적이 아로새겨진 학대받은 몸이 주는 시각적 효과는 즉각적이다. <조커>에선 자유로운 행위예술 같은 아서의 춤동작도 여러 번 등장한다. 화장실 춤 장면이 대표적인데, 내용의 이해 측면에선 공백 없이 다음으로 넘어가도 좋을 순간에 아서는 느닷없이 춤을 춘다. 그리고 호아킨 피닉스는 여지없이 그 장면에 강렬한 방점을 찍는다. 호아킨 피닉스는 몸 쓰기에 능한 배우다. 그의 신체 사용 능력은 언제나 특별했다. 최근작인 구스 반 산트의 <돈 워리>(2018)에선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된 알코올중독 만화가를 연기했고, 린 램지의 <너는 여기에 없었다>(2017)에선 과거의 트라우마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청부 살인업자를 연기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마스터>(2012)는 또 어떠했나.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프레디의 말투와 불균형한 몸은 얼마나 강렬했는지. 고통에 속박된 육체 그 자체가 드라마가 되게끔 하는 연기에 있어서 호아킨 피닉스는 독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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