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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용의자>, 다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문인과 예술가 10명을 탐문하는 추리극 형식의 서사
김성훈 2019-10-09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가을 명동. 문인이나 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오리엔탈 다방에서 시인 10명이 간밤에 백두환 시인이 남산에서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주고받는다. 무리 속에서 그 얘기를 엿듣던 육군 특무부대 소속 수사관 김기채(김상경)는 자신이 그 사건을 담당하는 수사관이라고 소개하고, 화가, 시인, 소설가, 교수 등 문인과 예술가 10명을 상대로 수사를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시인들은 백두환 시인의 마지막 행적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둘씩 꺼낸다. 그에 대한 좋은 기억도, 미심쩍은 기억도 있다. 이들의 증언이 하나로 모이면서 혼란스러운 시대와 역사의 이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김기채 수사관이 다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화가, 시인, 소설가, 교수 등 문인과 예술가 10명을 탐문하는 서사는 추리극 형식을 띤다. 백두환 시인에 대한 화가, 시인, 소설가, 교수 등 문인과 예술가 10명의 기억과 인상들은 제각각이다. 이 영화는 백두환 시인을 죽인 범인을 찾는 데 공을 들이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백두환 시인이 어떤 인물인지 그려내는 이야기도 아니다. 영화는 그보다는 시인들의 증언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오는 당시 역사적 상황을 그리고 있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얘기를 할 수 없지만 친일 청산, 레드콤플렉스, 분단 문제 등 한국 근대사의 오랜 문제들과 관련 있다. 그것은 영화 속 배경으로부터 65년이나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시인들의 회상 장면을 제외하면 이야기는 다방이라는 한정된 무대에서 펼쳐진다. 김상경, 허성태, 박선영, 남성진, 남연우 등 10명 넘는 배우들이 쉴 새 없이 대사와 호흡을 주고받는 모습은 연극을 방불케 할 만큼 그 열기가 뜨겁다. 같은 이유로 시대물인데도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다소 아쉽다. 이 영화는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사요나라 안녕 짜이쩬>(2009), 독거노인을 소재로 한 단편 <무말랭이>(2014)를 연출한 고명성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 연출작이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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