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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감독과 윌 스미스가 만난 <제미니 맨> 미리 보기
송경원 2019-10-10

진보된 기술, 스토리텔링을 완성하다

자기 자신에게 쫓기는 이야기. <제미니 맨>의 컨셉은 단순하고 익숙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해지는 건 이 진부한 소재를 리안 감독이 연출하고 윌 스미스가 연기했기 때문이다. <제미니 맨>의 핵심은 윌 스미스의 1인2역이다. 영화는 단순히 한 배우가 두명을 연기한다는 차원을 넘어 하나의 화면 위에 두명이 동시에 존재하는 진짜 마술을 선보인다. 마치 영화 안에 들어가서 윌 스미스와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의 액션을 구경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2D, HER 3D+는 기본이고 4D, 4DX, ScreenX, 아이맥스까지 2019년 개봉 영화 중 최다 스페셜 포맷 개봉을 자랑하는 <제미니 맨>을 소개한다.

“직감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많았던 작품이다. 아카데미상 수상에 빛나는 감독이 잘해줄 거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의 솔직한 한마디는 <제미니 맨>이 어떤 영화인지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지침이다. <제미니 맨>의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던 정부기관의 비밀요원이 최강의 라이벌을 만나 대결을 벌인다. 자신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상대는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한 젊은 시절의 자신이다. 최고의 요원이 과거의 자신과 대결을 벌인다는 설정은 그리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익숙한 소재와 설정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영화의 역사는 언제나 그런 방식으로 축적되어왔다. 그런 측면에서 <제미니 맨>의 연출자로 리안 감독을 선택한 제리 브룩하이머의 안목은 그가 여전히 할리우드 톱 제작자의 위치를 유지하는 이유를 증명한다.

두 명의 윌 스미스, 자기 자신과의 대결

헨리 브로건(윌 스미스)은 정부기관 DIA의 특수임무를 맡은 요원이다. 그는 정부의 명령에 따라 평화에 위협이 될 인물을 암살해왔다. 하지만 단순한 암살자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활동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헨리는 50살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지만 미세하게나마 자신의 실력이 떨어져가고 있음을 깨닫고 은퇴를 결심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은퇴를 달가워하지 않지만 그의 확고한 결심을 막을 수 없다. 그런데 얼마 뒤 DIA의 옛 동료로부터 연락을 받아 은밀히 접선한다. 그 자리에서 헨리가 마지막으로 암살한 인물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헨리에게 잘못된 지시를 내린 DIA의 중간 간부는 민간 군수업체의 수장 클레이(클라이브 오언)와 함께 음모를 꾸민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밀 프로젝트와 비리를 덮기 위해 헨리를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최강의 암살자를 보낸다. 바로 제미니 프로젝트를 통해 길러진 최강의 암살자 주니어다.

영화 초중반 주니어의 등장과 함께 관객은 놀랄 수밖에 없다. 헨리의 유전자를 복제해 만들어진 주니어는 50살이 된 헨리와 판박이이다. 그 순간 관객은 헨리 역을 맡은 윌 스미스의 젊은 시절이 스크린 위에 되살아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다. CG를 통해 똑같은 인물을 한 화면에 등장시키는 건 이제 더이상 경이로운 연출이 아니다. 한 화면에 같은 인물을 둘 이상 등장시키는 건 심지어 CG가 없었던 시절에도 필름의 트릭을 활용해 시도되었던 익숙한 소재 중 하나다. 요컨대 <제미니 맨>의 아이디어는 새로운 기술 덕분에 구현 가능한 새로운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세밀하게 들어가보면 이 장면은 역시나 놀랍고 경이롭다. 제작진이 부활시킨 젊은 시절의 윌 스미스는 단순히 화면에 등장하는 것을 넘어 역동적인 액션을 소화한다. 심지어 피부의 질감과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젊은 시절의 윌 스미스를 직접 캐스팅한 것 같은 생생함을 안긴다. 영화 속 ‘제미니 프로젝트’가 최고의 군인을 육성하기 위한 유전자 복제 프로젝트라면 영화 <제미니 맨>은 영화가 시각적인 트릭으로 관객을 속이는 것을 넘어 진짜 현실을 복제해나가는 또 하나의 방식을 선보인다. “이번 영화의 작업은 영화 역사상 최초”라는 윌 스미스의 말은 허풍이 아니다.

스크린에 두명의 윌 스미스가 동시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도록 만들기 위해 전에 없는 시각효과들이 동원됐다. 웨타 디지털의 감독 가이 윌리엄스는 이 기술이 이전의 CG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라고 말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경우 설득력 있는 티라노사우루스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도 진짜 티라노사우루스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혹성탈출>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유인원을 본 적은 있지만 유인원이 말하는 것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실재하는 사람, 그것도 윌 스미스 같은 유명 스타의 젊은 시절인 경우는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말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정보들을 재현할 때 필요한 디테일과 그에 따른 배우들의 리액션은 다른 차원의 섬세함이 요구된다.

게다가 리안 감독은 가능한 한 가장 높은 프레임 속도와 몰입도가 높은 3D를 동시에 구현하고자 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3D 연출의 새로운 국면을 마련한 그는 <제미니 맨>에서는 몰입감과 속도, 그리고 생생함을 한꺼번에 구현하고자 했다. 초당 120프레임으로 제작된 화면에 4K 해상도의 네이티브 3D 카메라로 촬영된 이번 영화는 캐릭터의 솜털 하나의 반응까지도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기술감독 벤 제베이스는 이를 두고 “기존 영화가 옥외 광고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라면 <제미니 맨>은 옥외 광고사진을 촬영한 곳에 서 있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화면을 사실처럼 지각하는 리얼리티라는 측면에서 현재 존재하는 기술의 끝자락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한 셈이다. 배우들은 이런 피부 질감까지 표현하기 위해 화장도 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섰다. 무엇보다 윌 스미스의 존재가 ‘나를 추격하는 또 다른 나’라는 조건을 가능케 했다. <제미니 맨>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 25년 전에도 유명했고 지금도 유명한 액션 스타가 필요했고, 그런 배우는 몇 되지 않았다. 리안 감독은 윌 스미스가 자신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3년 전 유튜브 영상에서 발견하고 즐거워했다. 다른 영화 홍보차 대만에 간 윌 스미스는 카메라에 대고 이렇게 외쳤다. “리안 감독님, 어디 계신가요? 저 나이 먹고 있어요! 저 좀 캐스팅해주세요. 저는 지금 감독님 고향에 왔습니다. 감독님 고향까지 쫓아왔다고요!” 덕분에 윌 스미스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자신(헨리)과 아직 앳되고 풋풋한 시절의 자신(주니어)을 동시에 연기할 기회를 얻었다. 물론 <제미니 맨>은 단순히 기술을 자랑하거나 기술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것을 실험하는 종류의 영화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잘 만든 상업 액션 첩보물을 표방하는 이 영화는 리얼리티에 관한 진보된 기술을 스토리텔링의 영역으로 능숙하게 녹여내고 있다. 그것이 아마 리안 감독이 가진 가장 큰 재능이자 현재 할리우드에서 리안 감독만이 발을 디딜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리안, 장르와 기술 장인의 멈추지 않는 도전

리안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언제나 도전적이었다. 미국 중산층 가족의 서늘한 현실을 잡아낸 <아이스 스톰>부터, 아카데미 수상작인 <와호장룡>, 슈퍼히어로영화인 <헐크>, 3D연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라이프 오브 파이>까지 리안은 항상 새로운 장르에서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어떤 장르를 연출하건 자신의 중력 안으로 끌어들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한다는 점에서 리안은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장인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리안은 완전히 독창적인 영역에서 영화언어를 창조하는 종류의 작가는 아니다. 긍정적 의미에서 그를 장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기존의 기술들을 충분히 활용하되 기술과 장르를 제대로 이해한 후 재구성할 줄 알기 때문이다. 요컨대 뭘 만들어도 제대로 만든다. 그런 리안이 <헐크> 이후 CG와 3D라는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지점에서 기술의 선구자들조차 잊고 있던 가능성을 꺼내고 있는 중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가 그랬고, <제미니 맨>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장르영화를 택했고 3D 그래픽 기술의 근본에 따라 새로운 나만의 미학을 찾으려 노력했다. 내 생각에 우리는 아직 다차원적인 제작방법을 모른다. 과거 3D영화들은 마치 현실이 평평한 것처럼 제작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를 시작으로 나는 새로운 세계에 한 걸음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제미니 맨>은 여느 3D영화들과 달리 화면을 돌출시키거나 캐릭터와 카메라를 활강시키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롱숏과 풀숏이 많은 이 영화는 속도감 있는 액션 시퀀스에서도 풀숏을 자주 사용한다. 클로즈업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흔들며 속도감을 올리는 기존의 액션영화와 다른 지점이다. 이 때문에 다소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지점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리안 감독은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시도했던 화면의 3단계 깊이, 그러니까 전경과 중경, 후경의 차이를 통한 연출을 이번에도 시도한다. 정신없이 진행되는 액션 시퀀스 와중에도 인물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살아 있어 눈에 확실하게 들어온다. 동시에 화면의 깊이감에 따라 여러 소품과 장치, 캐릭터에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또 다른 드라마와 긴장감을 창조해낸다. 이 모든 요소들은 혁신적이거나 새로운 게 아니다. <제미니 맨>은 소재부터 캐릭터, 이야기 구조와 연출방식까지 모든 구성요소들이 익숙함 그 자체다. 그런데 그런 요소들이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우리가 전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자극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화의 마법은 도구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는 마법사의 역량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연출이다. 리안 감독은 “내가 이전에 알았던 모든 것들이 이 영화에선 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는 전통적인 영화 제작 방식을 칭송하고 클래식영화에만 가치를 두고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디지털영화가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이건 새로운 언어다. 때문에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노력해야 한다. 나는 영화가 거의 50년 전에 정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막한 걸음 내디딘 것에 불과하고 여전히 탐험해야 할 것이 많다.”

<제미니 맨>이 리안 감독의 다음 단계라고 하기엔 여전히 부족하고 어설픈 지점이 있다. 선명한 프레임이 도리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최근 액션영화의 트렌드에 비하면 다소 둔탁하고 느린 것도 사실이다. 서배너, 부다페스트, 카르타헤나 등 전세계 다양한 로케이션의 볼거리도 웬만한 액션영화에서 다 시도하는 것들이다. 무엇보다 복제인간이라는 소재, 군수기업의 음모, 자신과 맞서 싸우는 남자의 스토리텔링 자체가 진부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소의 어색함과 상투적인 면모까지 포함하여 <제미니 맨>은 리안 감독이 추구하는 영화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결과물이다. 그는 이 영화에, 이 작업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고 말한다. “나를 포함한 스탭 모두가 ‘주니어’가 된 느낌이다. 내가 왜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로 돌아가 다시 순수해진 느낌. 영화를 만들면 나는 곧 내가 만드는 그 영화가 된다.” 리안 감독의 말처럼 <제미니 맨>의 일부는, 아니 스토리텔링의 상당수는 클래식영화에서 빌려온 것처럼 익숙하다. 하지만 거기에 리얼리티의 한계에 도전하는 기술이 더해질 때 아직 시도되지 않은 영역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다음 단계로 도약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리안 감독의 고백은 그런 의미에서 유효하다. <제미니 맨>은 과거 숱한 복제인간에 대한 영화들의 복제가 아니다. 클래식영화의 유전자를 받았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리안 감독의 손을 거쳐 유일해진다. 그리하여 <제미니 맨>은 복제영화가 아니라 다음 세대로 나아갈 영화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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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