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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팀 밀러 감독 - <데드풀>보다 약하다고? <터미네이터2>보다는 세다
김현수 2019-10-31

린다 해밀턴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복장을 갖추고 세트장에 들어서던 순간, 이 영화는 성공할 거라 직감했다.” 지난 10월 21일, 배우들과 함께 한국을 찾은 팀 밀러 감독은 기자회견장에서 배우들의 매력과 노력을 치켜세우면서 이같이 말했다. 어떤 감독도 훌륭한 배우들과의 작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가 제임스 카메론조차 제작자로 컴백을 선언했던 이 거대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후속작 연출자 자리에 부담을 갖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무엇보다 <데드풀>(2016)로 연출 데뷔한 팀 밀러 감독이 두 번째 연출작으로 슈퍼히어로가 아닌 터미네이터와의 미래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30분간의 기자회견과 별도로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서 단 10분 동안 게 눈 감추듯 끝나버린 대화만으로 이에 관해 솔직한 답변을 듣기란 쉽지 않았지만, <터미네이터2>(1991)의 트럭 추격 장면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그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픽디자인과 시각효과 전문가로 <토르: 다크 월드>(2013)의 타이틀 시퀀스 등을 제작한 이력이 있는 그답게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한국판 포스터 한글폰트에 매료됐다는 팀 밀러 감독은 <데드풀>만큼이나 도전적이었던 이번 프로젝트에 관해 짧고 굵은 답변을 들려줬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 새롭게 시리즈에 합류한 캐릭터들은 대부분 오리지널 1편과 2편의 정통을 잇는 인물로 설계됐다. 주인공 대니는 1편에서 평범했던 웨이트리스 사라 코너가 겪은 일을 똑같이 겪게 되고, T-800은 1편 버전과 2편 버전 설정을 섞어놓은 듯하다. 이들을 공격하는 Rev-9은 2편에 등장했던 T-1000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물론 전사가 되어 돌아온 늙은 사라 코너의 등장 역시 정통성을 강조하는 캐릭터다.

=원작과의 연관성보다,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심지어 인류를 말살하려 터미네이터를 보낸 미래의 인공지능 리전 역시 악당이란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아들 존을 위해 싸웠던 사라 코너가 왜 대니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녀를 보호하려 했을까. 이 모든 관계를 관객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터미네이터 T-800은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인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시리즈 사상 가장 인간적인 T-800을 볼 수 있을 거다.

-전편에서 이어지는 시간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여성 캐릭터의 비중을 대폭 늘려 그들이 주도적으로 사건을 이끌도록 한 이유도 궁금하다.

=남성 캐릭터가 앞장서서 때려부수고 복수하는 영화는 그동안 너무 많았다. 우리는 여성 캐릭터를 앞세워 새로운 액션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특히 매켄지 데이비스가 연기하는 그레이스의 액션을 디자인할 때 남자배우들과는 다르게 디자인했던 것이 재미있었다. 남성 캐릭터였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장면을 만들었고, 또 나름의 인간적인 매력을 차별화해서 표현할 수 있었다. 린다 해밀턴과 함께 사라 코너를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남성 전사를 만드는 작업과 달라 감독으로서 흥미로웠다. 사실 <터미네이터> 시리즈 전체를 봐도 원래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크다. 1편과 2편의 사라 코너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변해가던 과정을 떠올려보자. 이번 영화 역시 이야기는 새롭게 시작하지만 사라 코너의 이야기와 맞물려서 그녀를 따라 진행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녀는 2편에서 미래를 바꿀 어떤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된다. 새 시리즈를 잇는 만큼 누군가를 새롭게 등장시킬지 고민할 때는 사냥꾼과 보호자, 사냥감으로 이루어진 삼각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한 <터미네이터> 1편과 2편은 각종 기계장치와 함께 액션이 펼쳐지는 공장 액션이나 트럭 추격전 같은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이번 영화의 액션 장면을 구상할 때 1, 2편의 장면들을 꽤 의식한 것 같다. 배경이나 구성이 닮았기 때문이다. 액션 연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

=제임스 카메론 감독으로부터 배운 점이 있다면 한편의 영화에서 액션을 구성할 때 그 어떤 것도 반복적으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터미네이터2>의 공장에서 맞붙는 장면을 예로 들면, 그 장면에서 인물들은 모두 각기 다른 액션을 선보인다. 무기를 활용하거나 맨주먹으로 싸우면서 지루하지 않은 액션 장면을 만들어낸다. 영화 내내 수많은 액션이 등장하지만, 장면마다 위험에 처한 요소와 상황에 따라 전부 다르게 연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특별히 이전 시리즈에 헌정하듯 만든 액션 장면이 있나.

=자동차 추격 장면이다. 거대한 트럭이 모든 걸 부숴버리는 규모가 꽤 큰 장면이다.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기대해볼 만한 장면이다. 이런 규모의 추격 장면이 없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이 장면을 초반에 배치한 이유이기도 하다. 터미네이터 Rev-9이 둘로 갈라지는 장면도 추격 장면과 함께 초반에 넣었다. 원래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 두배는 더 길었는데 아쉽게도 잘라내야 했다.

-1편과 2편은 지금 봐도 굉장히 폭력적인 액션 묘사가 많았다. 1편에서 주먹으로 건달의 가슴을 뚫어버리던 T-800의 모습이나 반대로 그가 상해를 입는 장면, 기계장치를 보호하고 있던 신체조직 일부를 뜯어내던 2편의 장면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아마도 <데드풀> 감독이 연출하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라면 그보다 더한 장면도 있지 않을까, 하며 장르적인 폭력 묘사를 기대하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나름대로는 충분히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웃음) 이번 영화는 <데드풀>과 다른 종류의 영화이기에 주인공들이 폭력을 마구 행사하도록 묘사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데드풀>이 그렇게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에 사지절단 장면이 나오는 공포영화를 즐겨 보지도 않는 편이고. 적어도 내가 연출할 때는 (폭력 묘사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이 우선시되길 바랐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이 영화를 소수의 팬들을 위해 만들었다면 대다수의 관객이 불편함을 호소할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데드풀> 때도 폭력성의 정도에 따라 일부 관객의 마음이 돌아서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보다 많은 관객을 포용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봐주면 좋겠다. 그런데 혹시 <터미네이터2>를 봤나? 그보다는 수위가 확실히 세다고 느낀다. (웃음)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1970~80년대에 만들었던 오리지널 블록버스터영화들에 관한 리부트나 리메이크 작업이 활발하다. 이는 마블로 대표되는 슈퍼히어로영화가 시장을 잠식한 데 따른 대안으로서의 움직임이란 인상이 짙다. 한편으로는 현재 그만큼 참신한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데드풀>이라는 슈퍼히어로영화를 연출하고 뒤이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리부트 작업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감독으로서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대개 코믹스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SF나 판타지 장르 역시 좋아하기 마련이다. 나도 만화광이며 여타의 많은 장르도 좋아한다. 다만 공포영화는 무서워서 좋아하지 않는다. (웃음) 이렇듯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장르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내가 시각효과 파트에서 일하고 있을 당시 접했던 지난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내게 큰 영감과 비전을 제시해줬다. 그것은 내가 이번 영화에 참여하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시각효과에 있어 영감을 불러일으킨 영화로 <스타워즈> 시리즈를 빼놓을 순 없겠지. 그렇다고 내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연출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아무튼 나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행운을 거머쥔 사람 중 하나다.

-대니와 그레이스, 사라 코너와 늙은 T-800의 캐릭터 관계가 그대로 이어지는 속편도 등장할 수 있을까.

=그건 비밀이다. (웃음)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영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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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