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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 조진웅 - 직구로 돌파하기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9-11-12

비리를 캐내기 위해 불법도청도 불사하는, 그래서 막 나가고, 막무가내인 ‘막프로’. 조진웅은 <블랙머니>에서 조사하던 피의자의 자살로 누명을 쓰게 된 서울지검 검사 양민혁을 연기한다. 돌직구로 나가는 동안 70조원이 넘는 은행이 1조7천억원에 넘어간 대한은행 헐값 매각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고, 끝까지 사건을 파는 그는,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르는 영화적 캐릭터다. 정지영 감독은 ‘대중영화’로 그 사건을 알리려 했고, 조진웅이 연기하는 양민혁은 사건을 둘러싼 이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가이드해줄 정의로운 안내자다.

-‘론스타 사건’이라는 소재의 민감성 때문에 준비도 비밀리에 한 걸로 알고 있다. 캐스팅 제안을 받고 선뜻 응했나.

=위험했다. 위험성을 모두가 공유하고, 이로 인한 상처도 서로 빨간약 발라주면서 헤쳐나가기로 했다. 처음 대본 보고 감독님께 드린 질문은 “왜 이런 영화 하시냐”였다. <부러진 화살>(2011)이나 <남영동1985>(2012)도 그렇고, 상업성 없어 보이는 어려운 영화를 하시지 않았냐 그랬더니, 잠이 안왔다고 하시더라. 이런 사건을 알고 있는데도 말을 하지 않는 데 대해. 지인이 이 이야기를 듣더니, “정지영 감독은 대가나 명장이 아니라 장인이시다. 그분 옆에서 그걸 배우면 되겠다” 하더라. 장인들은 아무도 안 해도 꿋꿋이 그 일을 하지 않나. 나는 그 옆에서 양민혁이라는 가면을 쓰고 하는 거고.

-바로 그 정지영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감독님이 <남영동1985> 이후 근 7년 만에 다시 극영화 현장에 서신 거다. 46년 개띠, 우리 아버지와 동갑인데도 현장에서 지치지 않고 일하시는 걸 보면 감탄이 나온다. 같이 작업하면서 보니 숏이 정말 정직하더라. 영화를 찍으면 보통 편집본이 3~4시간 나오는데 우리 영화는 2시간10분도 안 나왔다. 시나리오에서 넘어간 건 안 찍은 거다. 그렇게 결단을 가지고 현장에서 임하는 게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도 생각하는 바가 젊으셔서 촬영감독이나 내가 제안한 것들을 다시 하고 의견을 수렴해주셨다.

-양민혁이 전하는 ‘이 말을 배우로서 꼭 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어떤 것이었나.

=사건이 지난 지 7년 정도 되니 피해를 입은 분들의 눈빛도 달라진 것 같더라. 처음엔 너무 억울해서 꼭 밝혀야 한다는 의지를 보였다면, 지금은 좀 차분해지셨다.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해도 ‘괜찮다. 우린 다른 방식으로라도 이야기할 거다. 계속 싸우고 있다’는 단단하고 견고한 의지를 보여주셨다. 블랙머니, 모피아, 금융사기사건, 이런 것들이 복잡하고 당장은 듣기 불편한 이야기, 내 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게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

-론스타 사건이 경제 문제이다 보니 극영화로 따라가기 쉽지 않은데, 양민혁 캐릭터가 유머러스하고 인간적인 면모로 관객이 이 사건을 어렵지 않게 따라가게 해준다.

=<시그널>의 형사도 그렇고 이런 역할을 몇번 했었는데, 양민혁은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가 행하는 불법도청이나 이런 것들이 좀 무식하게 보일 수 있지만 후반부로 가면 정보수집, 사건해결 등에 있어 굉장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감독님도 그 부분을 확실한 포인트로 짚어주셨다. 감정적으로만 치닫게 되면 그저 마음만 아프고 만다. 관객이 양민혁을 쫓아 사건을 따라오다 양민혁이 사라지고 나면 ‘가만있어봐. 아주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지점까지 끌고 가는 캐릭터로 역할하려고 했다.

-대검 중앙수사부장에게 “어디서 지시받은 거 아닙니까?” “누가 시킨겁니까?” 하고 따져묻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돌직구 스타일이다. 양민혁의 행동과 대사가 당시에는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판타지에 가깝다. 그래서 멋있는 역할이기도 하고.

=판타지다. 그게 정확하다. 감독님도 그런 검사가 있었을 수 있지만 문제제기를 하는 순간 다 좌천됐을 거라고 하시더라. 눈귀를 막아버리니 말할 수 있는 루트가 없어지는 거다. 감독님도 사건 조사하면서 상위 1%를 만났는데, 그들이 ‘아직도 그러고들 있냐?’며 피해자들을 불쌍한 시선으로 말하는걸 보고 더 크게 분노를 느꼈다고 하시더라.

-그 정도로 ‘정의로운’ 캐릭터에 설득력이 생기는 건, 최근 ‘배우 조진웅’의 활동과도 접점이 있어 보인다. 점점 정의로워진다. (웃음)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나를 그렇게 움직이게 한다. 만나서 우리가 이러면 되겠냐, 열변을 토하면 자연스럽게 나도 거기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니 큰일났다. <대장 김창수> 믹싱 끝나고 조감독이 “형은 이제 길거리에 침도 못 뱉을거다”라고 하더라. 아무튼 나도 최근 들어 역할이 그런 쪽으로 많이 들어와서 이제 케이퍼 무비 같은 오락물을 한번 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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