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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의 배우들④] 김 팀장 역 박성연 - 투명한 마음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9-11-13

연말 결산 ‘올해의 팀장’ 부문이 있다면 <82년생 김지영>의 김 팀장에게 그 영광이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김지영이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김 팀장은 성공한 회사 선배이자 멋진 인생 선배다. 김 팀장을 연기한 건 배우 박성연. 이미 대학로에선 연기로 정평이 난 배우다.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과도 연극을 하며 만났다. “<과학하는 마음>이란 연극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김도영 감독을 처음 만났다. 도영 언니의 연기엔 우아함이 있었고, 티는 안 냈지만 내심 존경하는 언니였다.” 그런 김도영 감독이 <82년생 김지영>의 연출을 맡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대사 없는 행인 역할도 좋으니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김도영 감독님의 <자유연기>를 봤기 때문에, 그리고 도영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을 대하는 내 마음은 객관적일 수 없었다.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무슨 역할인지 듣지도 않고 ‘무조건 해요, 무조건 할게요’ 그랬다. (웃음)”

소설보다 비중이 커진 김 팀장 캐릭터이기에 애초 영화사에선 인지도가 있는 배우를 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박성연에 대한 김도영 감독의 믿음은 확고했고, 박성연은 그 믿음에 보답하듯 사람들의 의심을 지워버렸다. 김도영 감독의 확신에 찬 캐스팅이 빛을 본 장면 중 하나는 회의실 장면이다. 다수의 남자 임원과 김 팀장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회사 대표 양 이사에게 보이는 김 팀장의 처세 연기는 압권이다. 제대로 밀당할 줄 아는 박성연의 연기 덕에 회의실 장면 전체가 탄력을 받는다. 박성연은 “김 팀장의 생존법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했다”며 “다층적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연기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아아아아앙” , “앗싸”처럼 콧소리를 섞은 발랄한 추임새로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모습은 실제 박성연이 즐겨 하는 행동이다. 연륜에서 나오는 김 팀장의 카리스마는 어쩌면 철저한 연기인지도 모른다. 박성연은 상대보다 먼저 자신을 무장해제하곤 투명하게 제 마음을 보여주는 사람에 가까웠다.

회의실 장면에서처럼, 소설에서보다 영화에서 김 팀장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건 온전히 박성연 배우의 펄떡거리는 연기, 입체적인 연기 덕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면적이다. 단선적인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김 팀장 역시 멋있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지영에게 그러지 않나. 내가 좋아 보이냐고. 사실은 나쁜 아내고 나쁜 엄마라고. 회사에서도 양 이사에게 한방을 먹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갑과 을의 관계로 엮여 있다. 그걸 이겨내야 하는 프로페셔널함을 가진 여자다. 그런 모습이 분명히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기의 구체적 방법론과 관련해선 특정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고 캐릭터를 발전시켜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실 박성연은 직장생활이라곤 해본 적이 없다.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고집스레 연극과 연기만 생각하며 살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연극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고 열병을 앓았고, 그때부터 아동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예고에 입학했고, 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연극배우로 살다가 연극배우로 죽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다 대학 때 학교선배인 조범구 감독님이 단편영화를 찍자더라. ‘영화요? 전 안 해요. 연극만 할 거라서요.’ 그땐 너무 진지했다. 난 초심을 버릴 필요가 있다. (웃음)” 조범구 감독과 찍은 단편 <장마>는 박성연의 첫 영화가 되었고,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은 박성연의 첫 장편영화다. 영화에 진심으로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건 <카트>를 찍으면서였다. “<카트>에서도 단역이었다. 계산원3이었는데, 이름 없는 마트 직원으로 출연한 배우들이 20명 정도 있었다. 그들은 물론이고 주조연 배우들과 30회차 정도 같이 연기하고 생활해보니, 내가 연예인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어떤 태도로 영화에 임하는지 알게 됐다. 스탭들이 영화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그때 영화가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카트> 이후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독전> <곡성>에서 짧지만 강렬한 역할을 맡아 영화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특히 <독전>의 수화통역사에 대한 관객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박성연은 연극이 사람을 만들었고 영화가 성격을 좋게 바꿔놓았다고 했다. 오랜 시간 박성연의 삶을 채운 건 연기다. “실제론 소심하고 소극적인데 연기할 때는 대범하다. 연기할 때만 그렇다. 인간 박성연은 자랑거리도 없고 초라한데, 내가 믿을 수 있는 대본이 있고 그걸 밟고 올라서면 나를 무한대로 펼쳐 보일 수 있게 된다.” 앞으로의 시간들은 “인간 박성연”을 돌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것 같다. 내가 행복해야 배우 박성연도 행복하고 풍성해질 수 있을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이 가져다준 행복을 동력 삼아 계속해서 관객의 마음을 두드려주길 기대해본다.

●김도영 감독이 말하는 박성연

“박성연 배우는 모든 역할을 자기에게 완전히 착 붙게 만든다. 살아 있는 사람처럼 배역을 만들어내는 힘이 놀랍다. 기본적으로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현장에서 놀라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카메라 연기를 하다보면 동작 연결도 해야 하고 신경써야 할 게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대범함 같은 게 있다. 정말 사랑하는 배우다.”

●필모그래피

영화 2019 <82년생 김지영> <양자물리학> 2018 <우리 지금 만나> <탐정: 리턴즈> <독전> 2017 <살아남은 아이> <어른도감> 2016 <원라인> <가려진 시간> <곡성> 2015 <고양이춤> <물구나무 서는 여자> 2014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카트> TV 2019 <시크릿 부티크> <아스달 연대기> <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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