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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파티 아킨 감독 -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논쟁할 수 있기를
이주현 2019-11-21

<심판>은 독일의 네오나치 테러라는 문제적 주제와 논쟁적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다. 무엇보다 테러로 가족을 잃은 카티아를 연기한 다이앤 크루거의 연기가 영화에 깊은 몰입감을 더하는 작품이다. 제70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서 다이앤 크루거는 <심판>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파티 아킨 감독은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기쁘고 떨렸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 영화는 그녀의 연기가 완성해낸 작품이다.” <짧고 고통 없이>(1998), <미치고 싶을 때>(2004), <소울 키친>(2009) 등으로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파티 아킨 감독은 터키계 2세로 독일에서 나고 자랐다. <심판>은 그런 감독의 정체성이 일종의 동력으로 작용해 탄생한 작품이다. 파티 아킨 감독과 서면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의 최초 모티브는 무엇이었나.

=독일 극우집단 NSU(National Socialist Underground, 국가사회주의지하당)가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저지른 이민자 테러 범죄에서 영감을 받았다. 독일에서는 인종차별과 극우집단의 범죄가 끊임없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2000년부터 시작된 NSU의 테러 희생자 10명 중 9명은 이민자였고, 그중 8명은 쿠르드계 터키인, 1명은 그리스인이었다. 테러 범죄의 조사 과정에서 더욱 문제가 된 것은 경찰이 이민자인 희생자들이 마약이나 도박에 연루되어 있었는지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명백한 독일 사회의 인종차별이고, 이 사실에 나는 매우 분노했다. 피해자 중 한명이 내 동생의 지인이었고, 나 또한 희생자가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터키계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이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친 셈인가. 개인적 기억과 경험은 영화에 어떻게 반영되었나.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자랐지만, 성장 과정에선 이민자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끊임없이 특정 집단에 압박을 받아왔다. 내가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지고 있으며 터키에서 온 이민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인종차별 문제는 내가 줄곧 하고 싶은 이야기였고, <심판>을 통해 결국 이야기하게 되어 기쁘다.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독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소속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독일은 이민자들을 ‘외국인 노동자’로 취급해왔으며, 여기서 말하는 ‘외국인’이란 여행자처럼 잠시 왔다가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는 사람이다. 아무도 나를 독일 사람이라고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내가 독일인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나 자신이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혹은 영화를 만든 이후 극우주의자들의 위협을 받진 않았나.

=독일에서는 나치나 히틀러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선택한 방향이 어떤 쪽인지, 그 방향이 진짜로 옳은 방향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사실 준비가 덜 됐던 것 같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찍으면서 스스로 납득하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다행인 것은 영화가 공개된 뒤에 독일 내 반응이 긍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좀더 다양한 의견이 나오길 기대하고 예상했다. ‘좋은 리뷰만 나오는 영화는 믿지 말라’는 말이 있듯. 칸영화제 이후 독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 대해 논쟁할 수 있기를 바랐다. “왜 모슬렘이 테러리스트가 아니지?” 같은 반응도 나왔으면 했는데 생각보다는 비슷한 반응이었다. 특히 독일 내에선 다이앤 크루거의 연기와 칸영화제 수상 덕분에 영화를 궁금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좀더 생겼다.

-법정 장면을 연출할 때 참고한 판례나 사례가 있다면.

=NSU 집단에 대한 실제 재판이 여전히 뮌헨에서 진행되고 있다. 나는 재판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몇 차례 뮌헨에 들러 재판에 참석했다. 재판은 매우 지루했고 드라마틱하거나 감정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희생자들은 감정적으로 격해져 있었다. 물론 재판은 감정을 배제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희생자들에게는 감정이 있다. 그렇기에 이 감정들을 가능한 한 정확하고 사실적이게 영화에 담아내는 것이 나의 의무였다.

-독일의 법 시스템이나 공권력과 관련해 특히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었는지.

=<심판>에서는 테러가 발생했을 때 경찰과 여론의 의혹에 의해 소수 이민자 집단이 어떻게 희생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건 희생자를 두번 죽이는 일이다. 법원의 시스템은 증거가 없으면 죄를 입증할 수 없고, 죄를 입증할 수 없다면 피고인은 결백한 것이라 판단한다. 이는 일반적인 법 시스템이지만 이로 인해 때때로 감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나는 독일 법정 시스템이 인종차별적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때때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정의를 추구하는 개인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 법정 시스템이 인종차별을 지향한다고 ‘보일 수’는 있다. 영화에 나오는 복수에 대해 말하고 싶은 한 가지는 내 영화가 일부 사람들이 불편해할 순 있지만 복수에 관한 미국이나 한국영화에 대해서는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도영화는 대부분이 복수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영화를 찍는 방식은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의 스타일이고,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부분이다. 관객이 이 이야기를 픽션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가 불편한 것이다.

-희생자의 개인적 복수, 즉 카티아의 마지막 행동은 논쟁적인데 관객이 카티아의 행동을 납득해주길 바랐나.

=영화를 이렇게 끝내야 한다는 걸 항상 알고 있었다.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이게 맞는 결말이라고 느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이 카티아의 결정을 그럴듯하고 합리적이게 느끼도록 만들어야만했다. 다이앤과 나는 되도록 영화를 시간 순서대로 찍으면서 결말에 대해 논의했다. 만약 정말 그녀가 카티아라면 그러한 행동을 할지 말지에 대해서 말이다. 또한 이 장면을 단순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카티아는 사람이고, 사람이면 이런 결정을 쉽게 내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건 나 또한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난 관객을 믿는다. 관객은 이 영화의 결말을 카타르시스적인 부분으로 여길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영화나 예술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카티아의 몸에 있는 문신에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닻 문양은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의 상징이다. <심판>의 배경이기도해서 카티아의 몸에 이 문신을 넣었다. 다이앤 크루거와 문신 내기를 했는데, 그녀는 이 영화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선택이 안 될 거라고 자신하며 만약 된다면 문신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그녀의 발목에는 닻 문신이 있다! 문신에 대해서는, 캐릭터의 성격을 고려한 다이앤의 결정이 컸다. 거기엔 사무라이 문신도 있고, 음계들, 그리고 남편 누리의 문신도 있다.

-다이앤 크루거는 독일이 아닌 해외에서 활동해왔고, 아름다운 모델이자 스타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배우인데 어떻게 영화에 캐스팅했는지.

=무조건 백인 여성을 캐스팅해야 했다. 백인에,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독일인이자 아리아인 여성이 필요했다. 아리아인이 나치를 죽인다는 발상이 마음에 들었다. 그냥 상징적으로! 2012년 <오염된 파라다이스>라는 다큐멘터리로 칸영화제에 갔고, 그때 다이앤 크루거는 심사위원이었다. 이후 축하 행사에서 다이앤을 만났는데 그녀는 나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때 다이앤은 프랑스에 살고 있었는데, 내 작품이 프랑스에서는 제법 잘되고 있었다. 독일 다음으로 말이다. 덕분에 다이앤이 자기가 맡을 만한 배역이 있냐고 물을 기회가 생겼다. 다이앤은 독일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좋았다. 그들은 다이앤 크루거라는 배우를 그저 영화에 몇번 나온 전직 모델로만 알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그녀가 그렇게 훌륭한 배우일 줄 몰랐을 거다. 관객을 놀라게 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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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그린나래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