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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2> 크리스 벅·제니퍼 리 감독 -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려 했다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19-12-04

크리스 벅, 제니퍼 리 감독(왼쪽부터).

<겨울왕국2>의 흥행 조짐이 심상찮다. 어쩌면 1편을 넘어서는 흥행도 가능할 듯 보인다. 1편에 이어 2편을 연출한 크리스 벅·제니퍼 리 감독은 <겨울왕국2> 개봉 첫 주말이 지나 한국을 찾았다. 흥행 축하 인사를 건네자 두 감독은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 답을 했는데, 그 말과 표정엔 흥분된 기쁨이 아닌 차분한 감사가 담겨 있었다. 두 감독의 말의 속도가 빨라질 때는 오직 작품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캐릭터와 하나되어 보낸 시간이 긴 만큼, 이들은 안나와 엘사 혹은 크리스토프의 대변인이 된 것처럼 <겨울왕국>의 모험과 사랑에 대해 들려줬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CO(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이기도 한 제니퍼 리 감독과 크리스 벅 감독을 만났다.

-<겨울왕국>의 성공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내부에 가져온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올드하다고 느껴진 공주 캐릭터의 부활이라든지, 오리지널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적극적 개발이라든지.

=제니퍼 리_1, 2편의 성공으로 달라진 면이 있다면 좀더 리스크를 감수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게 아닐까 싶다. 2편을 만들 때도 1편을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리스크를 감수하려 했다. 개인적으로 신나는 건 우리가 자라면서 너무나 좋아했던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부활시킨 것이다. 현대적인 모습으로 진화한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만들려 했고, 그 진화를 바탕으로 또 다른 형식의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일이 정말 신난다.

크리스 벅_나 역시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이렇게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다시 만들어지고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아 행복하다. 그 힘으로 이런 장르와 이야기를 더 개발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여성 캐릭터를 기존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리려 했는데,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계속해서 개발되고 있는 지금의 분위기가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겨울왕국>을 만들 때 감당해야 했던 리스크는 무엇이었나.

제니퍼 리_처음 엘사와 안나 자매를 스튜디오에 소개했을 때 우리팀 아티스트들은 두 캐릭터에 공감하고 좋아했다. 캐릭터에 대한 저항은 없었다. 하지만 여성 투톱 영화라는 점, 그리고 이들이 서로의 적이 아니라는 점, 선악 구도가 아닌 두려움과 사랑의 대결 구도라는 점 등 기존과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겨울왕국>은 미지의 영역에 놓인 작품이었다. 엘사와 안나는 우리의 진심이 담긴 캐릭터였기 때문에 스튜디오에선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관객이 이것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었다. 거기서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다행히 1편이 성공했고, 우리는 스토리텔러로서 또 한번 성장할 수 있었다.

-2편을 만들 땐 1편과의 연속성을 토대로 변화를 주는 게 중요했을 텐데. 고수하고자 한 것과 변화를 시도하려 한 것은 무엇인가.

크리스 벅_지키고자 한 핵심은 캐릭터의 진실된 속성, 내면 그 자체다. 캐릭터의 속성은 그대로 가져가되 그들의 성장에서 오는 변화를 보여줘야 했다. 그 두 가지가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게 도전이었고, 그 도전이 쉽지만은 않았다. 캐릭터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둘 순 없었다. 캐릭터는 성장했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나아갈지를 고민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선 캐릭터가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여정을 따라갔다.

-캐릭터가 어떻게 이야기를 들려줬다는 얘긴가.

제니퍼 리_우리는 이들이 단순히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작업하면서 이들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 한번은 성격 테스트까지 해봤다. 안나의 입장이 돼 성격 테스트를 해보고, 엘사의 입장에서 성격 테스트를 해봤다. 안나라면 이렇게 대답할 거야, 엘사라면 이렇게 대답하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보니 신을 쓸 때도 안나와 엘사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캐릭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길을 가고 있네’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캐릭터와 캐릭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크리에이터의 관계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고 발견이 일어난다.

-이른바 디즈니 공주 영화에서 자매애가 이토록 강조된 작품은 없었다. <겨울왕국> 시리즈에서 공주의 조력자는 공주이고, 크리스토프와 같은 남자 캐릭터는 한발 뒤로 물러나 있다. 여성들의 연대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요즘, 현 시대를 반영한 새로운 공주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제니퍼 리_기본적으로 작업은 캐릭터로부터 시작된다. 캐릭터가 영감을 주고 스토리를 준다. 바깥의 요소를 안으로 넣으려고 하진 않는다. 아티스트끼리 얘기를 많이 나눴고, 내가 자라면서 봐온 많은 콘텐츠들을 생각했다. 기존의 콘텐츠에선 여성들이 서로 싸우는 경우가 많았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성이 다른 여성을 지지하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생각이 안나와 엘사의 캐릭터에 반영되었을 거다. 크리스토프의 경우, 스토리룸에서 남성 아티스트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들은 사랑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는 캐릭터를 보고 싶은데 미디어에선 마초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남자들의 모습도 보여주자고. 그런 점에서 크리스토프는 이제까지 대변되지 않았던 남성의 다른 면모를 부각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내러티브라기보다는 이제까지 미디어를 통해 잘 보여지지 않았던 내러티브를 다룬 것이다. 그러니까 크리스토프가 우리에게 막 외치는 거다. “나도 실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웃음) 이렇게 <겨울왕국>의 캐릭터에는 아티스트들의 개인적 면모와 솔직한 마음이 반영되어 있다.

-여러 뮤지컬 시퀀스 중에서도 크리스토프가 주인공인 뮤지컬 장면은 80, 90년대 뮤직비디오처럼 연출돼 눈길을 끈다.

크리스 벅_1편을 만들 때부터 크리스토프에게 노래하는 시간을 많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2편에서는 제대로 노래하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 안나에게 프러포즈를 하려다가 계속 실패하고, 좌절한 크리스토프가 내면의 깊은 사랑과 슬픔을 절절히 표현하는 장면에는 80년대 파워발라드풍이 어울릴 것 같았다. 이건 제니퍼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제니퍼 리_80년대 남성 발라드 노래엔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다 어디로 갔나 싶더라. 크리스토프의 상황과 그 남자의 사랑을 표현하기엔 그 시절의 분위기가 딱이라 생각했다. 일종의 80년대 파워발라드에 대한 오마주였다고나 할까.

-지난해 제니퍼 리 감독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CO가 되었다. CCO가 된 이후 고민한 스튜디오의 방향은 무엇이고, 앞으로 주력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제니퍼 리_CCO로서의 우선순위는 멋진 이야기들이 그림으로 옮겨지고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중요한 건 포용성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다양한 관점을 쏟아내면 거기서부터 정말 재밌는 협업이 일어난다. 그 덕분에 <겨울왕국> 같은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고. 실사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복제가 아닌 진화를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겨울왕국2>가 나왔으니, 당분간 각본 작업 같은 크리에이티브한 일에선 손을 떼야 할 것 같다. 스튜디오의 CCO로서 재능 있는 감독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데 집중하려 한다. 더 많은 여성들이, 더 많은 아티스트들이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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