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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①]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이인의 감독 - 사람의 관계에도 순서가 있다
김현수 사진 오계옥 2019-12-13

이인의 감독의 장편 데뷔작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은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 입양과 실향민 문제 등 한국 사회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다양한 이슈를 소재로 한 영화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에 담아내려 한 시도가 반갑다. 처음에는 수수께끼 같은 제목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미스터리한 제목의 의미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서독제가 열리는 가운데 만난 이인의 감독 역시 관객에게 이 영화가 좀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부터 입양과 실향민 문제 등 많은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오래전 <기타 이야기>(2009), <꿈의 공장>(2010) 등을 만들며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투쟁 현장을 함께했던 김성균 감독의 촬영 현장 지원을 나갔다가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독립다큐멘터리 현장은 스탭이 많지 않으니 서로 품앗이하듯 촬영을 도와준다. 이후 적십자가 주관하는 아카이빙 다큐멘터리 현장에서 100여명의 실향민과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입양 문제는 지인을 통해 들어 알고 있었다. 이렇게 내 주변에 산재해 있던 이슈들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찾아와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다큐멘터리 현장에서 길어 올린 문제를 극영화로 묶을 생각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콜텍 노동자 투쟁에 관해서는 김성균 감독이 이미 3편을 만들었다. 이산가족, 입양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많다. 그런데 이 이슈들은 소수자를 타자화시키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과정을 겪는다는 공통점이 있더라. 같은 맥락에서 묶을 수 있겠다 싶었다. 픽션이 관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영화에는 각 인물이 처한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

=이 영화의 각본 작업은 결국 인용이거나 발췌다. 왜냐하면 모두 내가 주변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레퍼런스를 어떻게 잘 정리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연극배우 출신의 은해성, <쎄시봉> <해어화> <밀정> 등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던 오하늬, 연기 경력이 전무한 모델 이서윤 등 젊은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극중 다큐멘터리 감독인 상규 역의 장준희 배우가 마당발이다. 캐스팅 디렉터의 역할을 해줬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오하늬, 은해성 배우를 수소문해줬다. 영어와 불어를 모두 구사해야 하는 역할이라 이서윤 배우의 캐스팅이 제일 어려웠는데 지인 감독의 사촌동생이었다.

-각 인물이 어리니 자연스럽게 청년 문제가 거론된다.

=주인공 역할이 독립영화 촬영 현장 스탭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제작비는 없고 인건비는 제대로 못 받는 현장이 많으니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제작비에 쓰고 또 생활고에 지치다 보면 이 작업을 오래 할 수가 없다. 그런 고민이 영화에 담긴 것 같다.

-영화를 보다 보니 궁금해졌다. 이인의 감독에게 다큐멘터리 작업 현장이란 어떤 곳인가.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곳에서 노동문제, 입양 문제, 이산가족 문제 등 부조리한 현실 문제를 목격했다. 대본상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감동을 받게 되는 곳이 바로 현장이다.

-언제부터 영화감독의 꿈을 갖게 됐나.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한 뒤 졸업하자마자 장편영화 준비에 돌입했다. 그런데 잘 안됐다. 영화사 등에서 시나리오작가 일을 오래 했다. 지금껏 30, 40편 정도 쓰면서 팔릴 때도 있었지만 한편도 영화화되지는 못했다. 그러다 지인 감독들의 현장에서 카메라를 잡으면서 자연스레 지금에 이르렀다.

-앞으로도 극영화 연출을 계속할 생각인가.

=당장은 환경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한편 작업 중이다. 이대로 속도를 잘 내준다면 내년 환경영화제에서 선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목표로 작업 중이고 올해에만 극영화 시나리오를 세편 썼다. 장르적으로는 드라마를 제일 많이 쓰지만 사실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더 맞다. 당분간은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의 배급에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시놉시스

다큐멘터리 감독 민규(은해성)는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밀린 방세를 내기 위해 카메라를 팔 생각을 한다. 중고 거래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찍기로 했던 현장에서 가슴 시린 실향민 문제를 접하고는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던 중 민규는 한때 꿈을 좇아 살다가 잠시 멈춰 선 소녀 한나(오하늬), 그리고 프랑스로 입양됐다가 엄마를 찾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돌아온 주희(이서윤)와 친해지면서 노동과 복지 등 한국의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에 눈뜨게 된다.

●관계의 가나다란

이 영화의 제목을 듣는 모든 이가 갖게 되는 궁금증. ‘관계의 가나다’란, 인간관계의 순서를 뜻한다. 이인의 감독이 실향민 인터뷰를 하다가 직접 듣게 된 이야기라고. ‘가나다라마바사’라는 것이 순서가 정해져 있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도 순서대로 이어진다. ‘가나다’ 정도의 순서에 와 있다면 그것은 비교적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는 말이다. 이인의 감독은 “아는 사람만 아는 사회 이슈를 처음 알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민규, 한나, 주희가 서로를 처음 알게 되는 순간,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의 첫 순간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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