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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②] <모아쓴일기> 장경환 감독 - 부산에서 좋아하는 공간을 다 넣었다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20-03-12

<모아쓴일기>는 세명의 20대 친구가 연락이 두절된 또 다른 친구를 찾아 나서는 청춘물이자 성장담이다. 하지만 장경환 감독은 장르영화의 전형적인 서사를 따르기는커녕 자꾸 딴길로 샌다. 그는 극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아슬하게 넘나들며 취업, 유학, 도심 재개발, 세월호 사건 등 20대의 다양한 고민들을 펼쳐낸다. 그러면서 친구와의 우정, 지친 마음에 위안을 주는 고양이, 좋아하는 공간들이 모여 있는 부산 등 자신이 좋아하는 풍경과 존재들을 화면에 담아내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연결이 다소 헐겁고 완성도가 서툰 장면도 더러 있지만 어디서도 보지 못한 서사 전개 방식이라 새롭고 신선하다. 놀랍게도 <모아쓴일기>는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 없는 장경환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영화를 너무 찍고 싶어 고향 부산에 내려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했었다. 돈도, 스탭도 없었고, 20대 중반의 평범한 청춘들을 그려보고 싶어 친한 친구들을 카메라 앞에 세웠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과 함께 연락이 두절된 친구를 찾아가는 설정으로 소소하게 찍었다.

-소박하게 출발한 셈이다.

=원래는 친구 주대를 주인공 삼아 시작됐는데 찍고 싶은 게 많아서 이야기가 확장됐다. 후반작업에서 편집을 많이 했는데도 좋아하는 장면을 자꾸 넣다보니 기승전결이 없는 이야기가 됐다.

-얼마나 찍었나.

=햇수로 4년 정도 찍었다. 매일 촬영한 건 아니고, 2016년 봄 벚꽃이 필 때 시작해 그 뒤로 매년 봄이면 다큐멘터리를 찍듯 진행했다. 많이 아프기도 했었고, 촬영 소스를 저장한 외장하드를 날린 적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찍은 영상들을 더이상 보기 싫을 때쯤 그만 편집하기로 결정했다.

-기승전결이 없어 신선했다. 왜 이야기의 배경이 봄이어야 했나.

=영화에도 들어간 삽입곡 <Satin Camel>을 부른 가수 이승열이 2014년 사계절에 걸쳐 공연을 연 적 있다. 그의 공연을 보면서 언젠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이야기에 담아야겠다 싶었다. 시작을 봄으로 정한 것도 그래서다. 영화를 찍은 지난 4년 동안 세월호 사건도 터졌고, 대통령 탄핵도 일어났다. 많은 일들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반영될 수 있었다.

-공간들은 부산의 어디인가.

=집이 위치한 부산 동래구에 있는 온천장으로, 금정산 아래 있는 오래된 동네다. 부산대학교, 낙동강 하구 대저생태공원, 다대포, 영도 등 좋아하는 부산의 공간도 다 넣었다.

-고양이가 많이 등장하던데.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다. 하나는 <원피스>에 등장하는 캐릭터 이름을 본뜬 샹크스고, 또 하나는 영화 <보헤미안의 삶>에서 마티 펠론파가 연기한 역할 이름을 딴 로돌포다. 모두 길에서 밥을 주다가 데려와서 함께 살고 있다. 집에서 고양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이 영화도 고양이때문에 만든 것 같다. 서울에서 독립장편영화 연출부를 한 뒤 부산으로 내려간 것도 고양이를 친구 집에 맡기는 게 불편해서였다. 서울에서 촬영하면 고양이를 돌볼 수 없으니까.

-진짜 친구들이 연기하는 장면이 재미있더라. 전문배우가 아니기에 더욱 생생하다.

=연락이 두절된 친구 성우를 찾으러 가는 설정에서, 꼭 필요한 대사는 지켜주되 촬영하다가 내게 욕해도 좋을 만큼 편하게 찍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나를 포함한 4명 모두 나를 반영한 인물들이다.

-성우가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매만지는 장면이 눈에 띄더라.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너무 화가 나서 영화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세월호 리본을 가방에 다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대사를 통해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기도 이상하고. 고민을 되게 많이 했었다.

-개인적인 질문을 하자면,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10대 시절 막연하게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수업시간에 학교 공부는 안 하고 영화 관련 책을 읽으며 방황했다. (웃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천에 사는 친누나 집에 얹혀살면서 영화 동아리 활동을 하며 영화를 찍었다.

-다음 영화가 궁금하다.

=여름을 되게 좋아해서 배경이 여름이다. 공간은 중앙동에 위치한 카페 ‘매일이 다르다’로 정했다. 일상적인 내용을 다룬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나만의 색깔을 계속 드러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번 서독제에서 좋은 기운을 얻고 간다.

●시놉시스

경환, 주대, 연우는 친구 사이다. 경환은 시를 쓰고, 고양이를 기르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대는 독일 유학을 준비하고 있으며, 연우는 취직과 시험에 주력하는 중이다. 셋은 수시로 만나 연우의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사진도 찍어주고, 수다도 떨며 일상을 보낸다. 어느 날 이들은 연락이 두절된 친구 성우를 찾기로 한다. 이들의 친구인 성우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모두와 연락을 끊고 모습을 감추었다.

●사진과 다큐멘터리

<모아쓴일기>는 극과 다큐멘터리 그리고 사진 등 여러 매체를 자유롭게 오간다. 비전문배우인 미용실 할머니가 등장하는 영화의 초반부는 “영화는커녕 사진조차 찍기 싫어 하는 할머니를 위해 미용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다큐멘터리처럼 찍”었다. 사진 이미지는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한다. “도리스 되리의 <파니 핑크>,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 최근 영화로는 요아킴 트리에의 <라우더 댄 밤즈>, 에이슬링 월시의 <내 사랑> 등을 특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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