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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흔적 찾기

지난해 <어느 가족>으로 칸 황금종려상을 꿰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지금껏 자국 일본에서만 영화를 찍어온 그가 프랑스로 무대를 옮겼다. 전설적인 배우 까뜨린 드뇌브가 주인공 파비안느를 연기하고, 줄리엣 비노쉬가 그의 딸 뤼미르를, 에단 호크가 미국인 사위 행크를 연기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다. 서양권 배우들과 협업한 히로카즈의 첫 작품임에도 이질감은 전혀 없다. 대신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 담긴 히로카즈 특유의 인장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1. 가족 이야기

히로카즈 영화는 언제나 가족을 향해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방치된 아이들 (<아무도 모른다>), 첫째 아들의 기일에 모인 가족들 사이의 필연적인 틈 (<걸어도 걸어도>), 병원의 실수로 아이를 바꿔 길러온 부모의 이야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이복 자매와 함께 살기로 한 자매들 (<바닷마을 다이어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도둑 공동체 (<어느 가족>) 등. 가족을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찾는 편이 훨씬 쉬울 정도로 히로카즈는 '가족'이라는 화두에 집중해 왔다. 여느 가정에 다 있지만 꺼내 보기 불편한, 울퉁불퉁하게 그려진 가족의 모습을 담는 히로카즈의 시도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도 계속된다. 프랑스의 유명 배우 파비안느(까뜨린 드뇌브)의 자서전 발간에 앞서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가 수년 만에 그를 방문했다. 하지만 거짓 투성이로 쓰인 어머니의 자서전 앞에서 뤼미르는 그녀와의 숙원적 갈등을 헤집기 시작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고정적인 테마를 그대로 이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내막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아무도 모른다>의 작업이 끝난 2003년부터 시나리오를 구상해 왔다는 히로카즈 감독은, 비전문 배우와 함께 영화를 만든 다음 '연기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골몰하게 됐다. 그의 말에 따르면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된 영화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 파비안느, 그리고 배우가 되지 못해 시나리오 작가가 된 딸 뤼미르. 두 사람의 관계를 축으로 삼은 영화는 일찍 세상을 떠난 라이벌의 존재마저 끌어와, 배우와 엄마로서의 파비안느를 다채롭게 조명한다.

2. 고집스러운 파비안느

"아유 미지근해라." 파비안느는 차의 온도가 늘 못마땅하다. 방금 내린 차는 뜨거운 게 당연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하게도 차는 식는다. 그러나 파비안느는 차의 온도가 늘 적당하기를 바라며, 그것이 차의 소명인 것처럼 여긴다.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파비안느가 여러 정체성 중에 택한 유일무이한 정체성이 '배우'라서다. 프로페셔널한 배우가 되는 일에 평생을 바쳐온 파비안느는 배우의 소명을 선택한 채 어머니로서의 삶은 다소 방치해 두었다. 그녀 삶의 논리 하에서 그 판단은 마땅한 것이다. 따라서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은 배우로서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맞춰져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파비안느는 무례할 만큼 고집스럽고, 때로는 차갑도록 이기적인 (오직)배우가 됐다.

그의 자신만만함은 세월이 흐르면서 아집과 오만으로 변했다. 이제 그는 다음 세대에게 화려한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시기에 왔다. 양보를 모르는 고집스러움만이 자기 존재를 겨우 버틸 자존심으로 남은 파비안느. 세세한 맥락은 다르지만 이렇게 고집스러운 캐릭터를 히로카즈의 다른 영화에서 본 듯도 하다. <걸어도 걸어도>의 가부장적인 아버지 쿄헤이(하라다 요시오)다. 은퇴한 의사인 아버지는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도 말이 없다. 그나마 가끔 꺼낸 말조차 백발백중 불만의 표현뿐이다.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려다 죽게 된 첫째 아들 준페이의 부재는 둘째 아들 료타와 아버지의 관계를 더욱 벌려 놓았다. 탐탁지 않은 둘째와 그리운 첫째라는 감정의 골. 어쩌면 영영 화해하지 못할 부자관계의 어긋남이, 파비안느와 뤼미르의 모녀관계로 변주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3. 아역 배우 클레망틴

히로카즈의 영화에 출연한 아역 배우들은 유독 반짝이는 것 같다. 연기를 잘 하는 아역배우는 많다. 그러나 히로카즈의 아역들은 어딘가 연기로 가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는 아이 그 자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가진 특유의 천진한 활기가 스크린 속에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데엔 그만의 비법이 있었을 터. 이번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 역시 '히로카즈는 아역 배우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는 공식은 다시 한번 입증됐다. 그 주인공은 뤼미르의 딸 샤를로트를 연기한 클레망틴 그르니에다. 프랑스로 무대를 옮겨 온 첫 작품임에도, "샤를로트의 천진한 웃음 때문에 영화를 두 번 봤다"는 관람객의 평이 있을 만큼 그의 안목은 빛났다.

오디션을 통해 히로카즈 감독의 눈에 든 아역배우 클레망틴. 그의 당당한 천성은 시나리오를 바꿔놓는 역할까지 했다. 대본에 쓰인 대로라면 클레망틴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등교를 거부하는 소녀를 연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역할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실제로 배우를 만나보니 기가 세고 승부 근성도 강한 아이였기 때문에 할머니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손녀의 모습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히로카즈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평소 그가 하던 방식대로 시나리오는 아역 배우에게 미리 전달되지 않았다. 단지 "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고 생각해 주렴"이라는 멍석 하나만 깔아 놓는다. 이후로는 동시통역사와 함께 귓속말로 조심스럽게 소통하는 이른바 '속삭임 작전'으로 끝까지 작업했다.

4. 손에 쥘 수 없는 진실

뤼미르는 파비안느의 자서전을 매의 눈으로 관찰한다. 그런 다음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 책에 진실이라곤 전혀 없다'는 것이다. 책 속에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그려진 모녀 관계에 대한 기억은 뤼미르에게 전혀 없다. 파비안느가 완전히 새롭게 창조한 허구다. 따져 묻는 딸에게 파비안느는 무심한 눈으로 말할 뿐이다. 진실은 재미없는 것이라고. 어쩌면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라는 제목(영제: <The Truth>)에서부터 히로카즈가 심어놓은 단 하나의 주제는 명료했다. 진실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 그러나 영원히 다가서지 못하는 요원한 진실.

어쩌면 우리는 늘 진실의 조각을 붙들고 착각과 오해 속에 사는지도 모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필생의 과업이 있다면, 아마도 '진실의 불가능성'을 가능한 한 영화로 증명해 보이는 일일 것이다. 필모그래피 중 첫 스릴러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 역시 여기에 부합한다. 그는 "법정은 진실을 밝혀내는 데 관심이 없으며 이해관계를 조정할 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세 번째 살인>을 만들었다. 근작 <어느 가족>을 통해 사회가 규정하는 가족의 테두리가 진실을 보장해줄 수 있는지를 질문하던 히로카즈는, 다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묻는다. 자서전과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진실된 역사를 담을 수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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