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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국영화⑤] <시동> 최정열 감독 - 젊은 스타의 새로운 얼굴을 찾을 때 즐겁다
임수연 사진 오계옥 2020-03-12

<시동>은 <글로리데이>(2015)에 이어 또 한번 최정열 감독이 동시대 소년들의 초상을 담은 작품이다. 다만 하룻밤의 사고가 청춘들에게 초래한 비극을 차갑게 보여준 전작과 달리 <시동>의 에피소드는 대체로 귀엽고 유쾌하다. “너무 사랑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리데이>를 다시 꺼내볼 때마다 내가 아이들을 영화에 가둬놓고 나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시동>은 최대한 경쾌하게 만들고 싶었다.” <시동>은 고등학교를 자퇴한 두 소년, 택일(박정민)과 상필(정해인)이 사회 속에서 부대끼는 법을 체득해가는 성장담이다. 특히 엄마 정혜(염정아)와 싸운 후 무작정 군산으로 내려간 택일이 배달부로 일하며 만나는 주방장 거석이형(마동석)은 청춘물에 나오는 ‘멘토’의 클리셰를 흥미롭게 깨며 그에게 영향을 준다. 이렇듯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시동>은 조금산 작가의 동명 웹툰 원작의 개성을 잘 보전하면서 모든 캐릭터를 각인하는 균형감이 돋보인다. 영화를 연출한 최정열 감독은 “영화를 사랑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배우’였다”고 말한다. 특히 젊은 남자배우의 매력을 포착하는 데 감각 있는 신인으로 조명할 만한 그를 만나 <시동>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

-젊은 배우들, 그리고 그들을 서포트하는 안정적인 중견배우의 조합이 인상적이다. 마동석과 염정아, 박정민과 정해인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일찌감치 구성했다고.

=지난해 2월 처음으로 마동석 선배에게 시나리오를 전했다. 그런데 스케줄이 워낙 많아서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되겠냐고 하시더라. 그래서 시나리오를 수정하며 천천히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결과적으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원했던 배우들의 캐스팅이 모두 성사됐다. 아무래도 제작사 외유내강에 대한 신뢰가 컸다. 사실 염정아 배우는 드라마 <SKY 캐슬>이 대박나면서 좀 걱정했다. 원래도 원톱 주인공을 하는 분인데 비중이 적은 <시동> 시나리오를 드려도 되는 걸까, 왠지 민망하고 죄송스럽더라. 그럼에도 정말 흔쾌히 함께하겠다고 하셨다.

-원작 웹툰을 많이 각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시동>은 원작을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영상화됐을 때 논란이 될 부분은 다 걸러낸 지점이 눈에 띄더라.

=각색을 많이 해도 되는 원작이 있고 그러지 않아도 되는 작품이 있다. <시동>을 처음 봤을 때 이 이야기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고 싶었다. 방향성을 바꾼다거나 작품의 결을 바꾸는 것은 한번도 고려한 적 없다. 다만 만화이기에 허용되는 부분이 영화에선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 웹툰에서는 폭력이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된 장면도 있다. 예전에 복싱을 했던 경주(최성은)가 남자들과 싸우는 장면도 여자가 남자에게 맞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나쁜 사람들에게 맞서고 있다는 뉘앙스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또한 택일이 일하게 된 장풍반점의 공사장(김종수) 대사 중 관객을 가르치려고 드는 뉘앙스가 느껴질 만한 건 드라마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걷어냈다. 무엇보다 <시동>은 누군가를 때려서 성장한다는 식으로 비치면 절대 안되는 작품이다. 과거 배구선수였던 정혜가 스파이크로 자식을 다스린다며 시작하지만, 결국 그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

-영화 초반 택일이 맞는 장면이 유머러스하게 연출됐다. 폭력을 희화화한다는 의심을 받을 여지가 없지 않은데.

=경주가 택일을 때리는 장면은 거리 조명이 하나씩 들어오는 식으로 연출했다. 여자가 남자를 패는 거라 그런가, 이 부분은 보는 사람들이 통쾌하게 받아들이더라. (웃음) 이런 신은 유머러스하게 푸는 것도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경주처럼 관객이 사랑해야 할 캐릭터의 폭력은 최대한 보여주지 않고 사운드만 활용한다거나 실제 행위보단 그에 대한 리액션을 주로 보여줬다. 반면 악인의 폭력은 정확하게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대비를 주면 웹툰을 그대로 영화화했을 때 생길 수 있는 폭력성을 덜어낼 수 있을 거라 봤다.

-폭력은 택일과 정혜 모자 사이에서는 표현의 서툼을 대변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정혜는 택일의 뺨을 때리면서 극에 등장하지만, 영화 중반에는 더이상 아들을 때리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거석이 형이 택일에게 가하는 폭력 역시 점차 줄어든다. ‘때릴 테면 때려봐’ 식으로 나오는 택일과 엮이면서 태도가 달라진다. 폭력의 정도와 방향이 바뀌는 것이 눈에 보이게끔 원작과 다르게 각색한 부분들도 있다.

-상필이 일하는 사채금융업계도 원작과는 좀 다르게 풀렸다.

=원작 <시동>은 정말 좋은 작품이지만, 엔딩에서 그들이 상필에 의해 좋은 사람들처럼 변하는 모습이 영화로 나오면 불편할 수 있겠더라. 불법 사채업자들을 절대 미화해서는 안됐다. 대신 원작에 없던 동화(윤경호) 캐릭터를 만들어서 사채업자 중에서도 변화하는 인물을 보여줬다. 또 거석이 형의 비밀이 드러난 후 그의 과거를 미화해서도 안된다는 걱정도 있었다. 특정 장면에서 그의 과거를 상징하는 공간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승리보다는 패배의 느낌으로 구현됐으면 했다. 사실 많은 관객이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결정적인 순간 주먹을 쓰며 쾌감을 주는 것도 기대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피하고자 했다.

-최정열 감독은 40대, 그리고 박정민과 정해인 배우는 30대다. 10대를 이미 벗어난 이들이 10대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실제 가출 청소년이나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인터뷰를 많이 했다. 그 감수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나이를 많이 먹었다. 쓰는 언어, 좋아하는 게임, 패션까지 정말 다르다. 그런데 10대 시절을 관통하는 정서나 고민, 방황의 이유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비슷하다. 지금 10대의 외양, 어떤 옷을 입고 행동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는가에 더 충실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글로리데이>는 막 스무살이 된 남자 아이들의 이야기였고, <시동>은 자퇴한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다. 어린 소년들의 이야기를 계속 다루는 이유가 궁금하다.

=특정 나이대보다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에 관심이 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난 고등학생 때 영화를 너무 좋아했지만 결국 경제학을 전공했고, 뒤늦게 영화라는 선택지를 꺼내들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잘 가고 있는 건지, 나에게 맞는 길인지, 감독이 나에게 어울리는 직업인지. 이런 고민을 10년 가까이 했다. 자연스럽게 <시동>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글로리데이>의 ‘포항’에 이어 <시동>의 ‘군산’까지, 모두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명시한다. 이 지역들을 택한 이유가 있나.

=<글로리데이>는 곧 상우(김준면)가 들어갈 해병대 훈련소가 있으면서 서울에서 최대한 동떨어진 곳이어야 했다. 인천이라면 사건이 터졌을 때 보호자들이 1시간 안에 올 수 있을 테니까. 웹툰 <시동>에서는 장풍반점이 원주에 있다. 관광지도 산업도시도 아닌 원주의 느낌이 주인공들의 상황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가서 로케이션 헌팅을 해보니 서울과 별반 차이가 없더라. 택일과 상필의 상황을 대조시키려면 두 공간이 거의 비슷해 보여서는 안됐다. 군산은 집을 나간 후 며칠 안에 돌아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곳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갔을 때 도시 자체가 주는 포근한 느낌을 받았고, 건물이 높지 않으면서 바다가 있는 게 영화와 어울렸다.

-사소할 수 있지만 나름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하필 거석이 형은 트와이스를 좋아하나. (웃음)

=가수를 먼저 찾은 게 아니라 어울리는 노래를 고른 거다. 블랙핑크의 비트감은 내가 생각하는 리듬이랑 달랐다. 거석이 형의 출렁이는 뱃살과 단발머리는 딱딱 끊어가는 박자에 어울리는데, 트와이스의 <Knock Knock>의 “쿵쿵” 하는 부분이랑 딱 매치가 됐다. 그 박자에 맞춰서 때리면 재밌는 장면이 나올 것 같아 트와이스를 선택했다. 현재 가장 대중적이고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는 걸그룹이기도 하고.

-<시동>은 결국 택일과 상필의 성장담이다. 두 배우의 캐스팅이 <시동>만의 매력을 살리는 데 큰 몫을 했다. 먼저 택일 역의 박정민이 이렇게 귀여운 캐릭터를 연기한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불량한 길에 빠져드는 상필 역에 정해인을 떠올린 것 자체가 신기한 캐스팅이었는데, 막상 보니 의외로 썩 잘 어울리더라.

=박정민 배우는 원래부터 너무너무 팬이었다. 그가 원래 잘하는 것에 사랑스러운 매력을 더하면 보는 사람들이 새롭게 느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노란 머리를 한 게 너무 잘 어울리고 섹시했다. (웃음) 현장에서 계속 웃는 게 너무 예쁘다고, 이렇게 웃는 게 예쁜데 연기할 때도 좀 예쁘게 웃어보라고 외치곤 했다. 내가 박정민 배우에게 느낀 ‘심쿵’ 포인트를 다들 잘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정해인 배우는 보기만 해도 달콤하고 아름다운 ‘멜로 장인’인데 거기에 다른 색을 입힐 생각을 해보니 시작 전부터 너무 흥분되더라. 좀 변태적인 생각인가. (웃음)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피를 흘리고, 채무자를 찾아가서 다 때려부수고 칼도 들고 말이지. 하하하.

-지금 감독님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 오늘 이렇게 밝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본다. (웃음)

=너무 즐거웠다. <글로리데이>에서는 내가 엑소의 멤버(수호)를 망쳐놨는데… 그런 것에 흥분을 느끼나보다. (좌중 폭소) 스타의 이미지를 다르게 해석하고 함께 표현해나가는 일이 즐겁다.

-12월 대목에는 거대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가 개봉한다는 통념을 깨고 <시동>이 출사표를 던졌다.

=나를 포함한 제작진도 그 결과가 너무 궁금하다. 시장의 크기를 떠나서 <시동>만큼 연말 연초에 어울리는 영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이 시기가 <시동>이 다루는 이야기와 맥이 통한다. <시동>의 주인공들은 드라마틱하게 대단한 성장을 하지 않고, 그게 우리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본다. 우리 인생도 누군가에게 대단한 가르침을 받고 갑자기 변하지는 않지 않나. 그냥 올해 나름대로 그럭저럭 잘 살았으니 내년에 새롭게 시동을 걸고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분들에게 영화가 잘 와닿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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