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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엽 편집장] 일의 기쁨과 슬픔
장영엽 2019-12-27

기자는 연말연시에 특히 바쁜 직업이다. 저무는 해를 결산하고 다가오는 해의 주요 이슈를 소개하는 것이 숙명이다 보니, 일에 치여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새해를 맞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연말이 되면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이 그렇게 야속하고도 부러울 수가 없다. 올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용산에서 열린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시사회에 참석했다가 오후 시간에 극장을 찾은 수많은 인파를 보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 불현듯 울적해졌다. 나는 왜 저 풍경 속의 한명이 될 수 없는가. 어쩌면 되지 못한 게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나는 마감 노동자의 길을 선택했을까. 기자에게 마감은 무엇이고, 마감에게 기자란 무엇인가…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의 심연으로 빠져들다 보니 어느덧 다음 정거장은 (<씨네21>이 위치한) ‘당산’이란다. 아차차, 이번주 에디토리얼 원고는 언제 쓰지.

눈앞에 닥친 업무에 고단함을 느낄 때마다, 그 고단함을 잊게 하는 반짝이는 찰나의 순간들을 떠올린다. 섭외가 요원해 보이던 인터뷰이가 고심 끝에 ‘오케이’를 외쳤을 때, 야심차게 추진했던 기사가 독자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혹은 당장 노트북을 열어 뭔가를 잔뜩 적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새로운 감각의 영화를 만날 때, 영화기자의 마음은 춤춘다. 신년특별호 마감을 앞둔 올해 크리스마스에 <씨네21> 스튜디오에서 마주한 풍경도 그러한 순간들 중 한 장면으로 기억될 듯하다. 이날 <파수꾼>(감독 윤성현)과 <늑대소년>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감독 조성희)이라는 전작을 통해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의 뒤를 이을 충무로의 기대주로 손꼽히던 조성희, 윤성현 두 감독이 각각 <승리호>(가제)와 <사냥의 시간>이라는 신작을 들고 <씨네21>과 만났다. 한국 최초의 우주 SF영화(<승리호>)와 디스토피아적 대체 역사물의 형식을 취한 청춘 추격 액션영화(<사냥의 시간>). 한국 상업영화의 자장 안에서 감독의 스타일과 개성을 발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이 시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탐험하며 장르의 가능성을 모색 중인 두 젊은 감독의 행보가 반가웠고, 이주현 기자가 진행한 대담에 동석해 제작 과정의 뒷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즐거웠다. 무엇보다 ‘영화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며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두 감독의 치열함으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음을 밝힌다. 정말로 중요한 건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부딪쳐보는 과정 그 자체에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데 일의 기쁨이 있으리라 믿으며, 2020년은 슬픈 일보다 기쁜 일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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