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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45관왕 <벌새> 김보라 감독의 해외영화제 순방기 연재 ➋
김보라(감독) 2020-01-14

<벌새>를 통해 만난 당신들의 이야기

트라이베카영화제가 열리는 뉴욕 풍경. 사진 캐서린 맥이네스

지난 <씨네21> 1237호에 <벌새> 김보라 감독의 해외영화제 탐방기 그 첫 번째 이야기가 실렸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이스탄불국제영화제, 키프로스국제영화제에서 벌어진 일들에 이어 이번에는 뉴욕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 홍콩아시안영화제까지, 대륙을 횡단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보라 감독이 <벌새>로 경험한 지난 1년의 시간, 그 마지막 이야기다.

트라이베카영화제

화려한 뉴욕의 영화제 (2019년 4월 22일~5월 6일 체류)

트라이베카영화제 공식 협찬사 게티에서 사진 촬영 중인 조수아 PD, 김보라 감독, 마티아 스턴이샤 음악감독(왼쪽부터). 사진 캐서린 맥이네스.

트라이베카영화제는 <벌새>로 다녔던 영화제 중 가장 상업적인 영화제였다. 다른 해외영화제와 달리 경쟁 섹션의 영화뿐 아니라 비경쟁 섹션에 있는 <아폴로> <원 차일드 네이션> <미팅 고르바초프> 같은 대형 다큐멘터리들이 화제작이었다.

파티가 정말 많았다. 이스탄불국제영화제처럼 소규모의 파티가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익명적 파티였다. 트라이베카영화제에는 나, 조수아 PD, 작곡가 마티아 스턴이샤가 참석을 했는데, 마티아는 사비를 들여 뉴욕까지 날아왔다. 마티아와 나는 오프닝 영화인 <아폴로>를 보러 갔다. <아폴로>는 할렘의 유서 깊은 극장인 아폴로 극장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영화 상영과 공연이 끝난 뒤 센트럴파크의 레스토랑 태번 온 더 그린으로 갔다. 파티의 음식들은 말도 안되게 맛있었다. 나와 마티아는 “이 영화제는 돈이 진짜 많은 것 같아. 센트럴파크 안의 파티라니. 우리, 영화 속 주인공 같다” 이런 말을 유치하게 하며 신나서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누구에게 다가갈까를 고민했고 무리 속에서 흥미로워 보이는 사람들과 섞였다. 하지만 대부분은 영화제와 크게 관련 없는 사람들이었다.

영화제는 큰 건물 전체를 빌려서 게스트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뉴욕 시내가 보이는 루프톱과 한층 전체를 꾸며 만든 간이 네스프레소 카페와 라운지 등이 대단했다. 저녁마다 루프톱과 라운지에서 파티가 열렸고, 공짜 술이 무한 제공되었다. 어느 날은 영화제쪽에서 여성 영화인들만을 초대한 파티가 열렸는데, 샤넬이 공식 후원을 했다. 입구에서 있는 검은 정장의 남성 모델은 파티에 초대된 영화인들에게 샤넬 립스틱이 10개씩 담긴 쇼핑백을 나눠줬다.

<벌새>의 트라이베카 상영은 거의 다 매진이었다. 국제경쟁 작품의 상영횟수는 영화제측의 주관적 결정에 따라 2회에서 4회 정도로 정해지는데, <벌새>는 4회 상영과 함께 주말 황금시간대로 배치되었다. 영화제측에서 <벌새>를 응원하는 것이 느껴졌다. <버라이어티> <플레이 리스트> 등의 영미권 매체에서도 <벌새>에 대한 기사를 잘 써주었다. 첫 상영날엔 대학원 교수님들이 왔다. 페미니즘영화 <버라이어티>의 감독이자 대학원 첫 수업의 교수였던 베트 골든과 시나리오 수업을 했던 댄 클라인맨이었다. 베트는 10년이 넘어 첫 장편을 만든 제자의 영화에 몹시 감격스러워했다. 편집본을 여러 번 봤던 댄은 “오프닝 신을 빼라고 한 것은 나의 실수였다. 끝까지 네 목소리를 지킨 것을 축하한다”고 했다. 댄은 언젠가 내게 “보라, 네 목소리는 꼭 세상에 들려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벌새>의 여정을 누구보다 기뻐했고, 영화의 소식을 꾸준히 학교에 알렸다.

트라이베카에서 <벌새>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상영이 끝난 뒤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우는 관객이 있었다. 해외에서 <벌새>를 상영하며 감사했던 것은 대부분의 관객이 자신의 유년과 가족 경험에 대해 공감하며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한국을 대상화하는 질문은 거의 없었고, 영화 내내 은희가 되어 경험했다는 평들이 가장 좋았다. 그 점은 창작자로서 가장 안도되는 지점이었다.

프리미어 며칠 후, 컬럼비아대학에서 <벌새>를 상영하고 재학생들과 대화를 나눴다. 재학 시절 지도교수이자 줄리언 무어 주연의 <세비지 그레이스>의 감독 톰 칼린의 ‘첫 번째 장편 만들기’ 수업에서였다. 오랜만에 온 학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대담에서 첫 영화를 하며 느낀 시행착오와 감상들을 나눴다. 특히 <벌새>를 하며 가장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이 유리 캐릭터를 삭제하고 시대를 현재로 바꾸라는 조언을 듣지 않은 점이라고 말했다. 톰 역시 합리적으로 들리는 조언이 반드시 그 작품에 맞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사실 톰은 <벌새>의 전신인 <리코더 시험>의 은희를 외동딸로 바꾸고, 30분 가까이 되는 영화를 16분 이하로 줄이라고 조언했었다. 나는 그 조언만큼은 도저히 들을 수 없어 학기 중에 촬영 일정을 핑계로 대며 한국으로 떠났다. 지도교수의 지도를 거부한 나의 일화는 스캔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톰이 <벌새>를 초대하고 작품에 대한 조언을 따를지 아닐지를 창작자가 잘 결정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그 순간이 너무 따뜻했다. 아프기도 했던 대학원 시절이, 삶의 한 챕터가 이렇게 마무리된다.

트라이베카 시상식날 <벌새>는 세개의 상을 탔다. 최우수연기상, 최우수촬영상 그리고 마지막 국제경쟁대상까지 세번이나 호명되었다. 국제경쟁에 상이 다섯개 있는데, <벌새>가 세개를 타고 나머지 두개는 지난호(1237호)에 언급했던 <노아랜드>의 젱크가 탔다. <블랙팬서>의 배우 안젤라 바셋이 시상을 했는데, 소감을 말할 때 머릿속이 하얘졌다. 시상식 며칠 전, 아티스틱 디렉터 프레드릭 보이어가 <벌새>가 트라이베카 국제장편경쟁에서 처음으로 트는 한국 여성감독의 영화라고 말한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수상소감으로 앞으로 한국 여성감독들의 영화가, 나아가 여성감독들의 영화가 트라이베카에 더 많이 상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박지후 배우와 강국현 촬영감독도 수상을 했는데, 함께해준 사람들이 상을 타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느꼈다.

식이 끝나자 굉장한 피로가 몰려왔다. 모두가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지만 결국 시상식 축하 파티에 갈 수 없었다. 갑작스레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벌새>를 하는 몇년간, 잘 처리되지 못한 감정들이 우수수 찾아오고 있었다.

타이베이영화제

대만의 젊은 영화제 (2019년 6월 29일~7월 5일 체류)

타이베이영화제에서 진행된 모던 시네마 견학 모습. 사진 타이베이영화제.

금마장영화제보다는 작은, 대만의 대표 영화제 중 하나다. 타이베이영화제는 정부의 지원으로 이뤄지고 대만영화들에 좀더 초점을 맞춘다. 주변에서 금마장영화제까지 기다리라는 조언도 했지만, 타이베이영화제 측에서 부산국제영화제 후 바로 연락해왔고, <벌새> 개봉 전에 영화제에 더 많이 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타이베이영화제를 가기로 결정했다. 트라이베카영화제 때 느낀 것이지만 작품에 애정을 보여주는 영화제에 가는 게 가장 맞는 것 같다.

모던 시네마 내부의 필름 작업. 사진 김보라.

대만 뉴웨이브영화들에 큰 영감을 받았던 나로서는 타이베이에서 나의 첫 장편 <벌새>가 상영된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영화제에서는 세심한 선물을 주며 환영해주었다. 영화제 기간 동안 두번의 공식 관광이 있었는데, 그중 한 코스인 ‘모던 시네마’가 기억에 남는다. 지아장커의 <애쉬> 등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들의 현상 및 후반 공정을 담당하는 영화업체였다. 필름 세대의 향수를 갖고 있는 나로서는 장인정신으로 필름 작업을 이어가는 그곳의 존재가 감동적이었다.

시상식에서 <벌새>는 심사위원대상을 탔다. 여성 심사위원 한명은 남성 심사위원들이 <벌새>를 이해하지 못해 설득하느라 애썼다고 했고, 남성 심사위원 한명은 <벌새>의 남성들이 다 악마가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러한 반응은 대만이 처음이었다. 유럽과 북미에서 받지 않았던 반응을 오히려 아시아 영화제의 남성 심사위원으로부터 받는 것이 흥미로웠다. 익숙할 법할 풍경을 이상하다는 듯 반응하는 것, 그것은 어떤 식의 거리두기였을까. 대만에서 만나는 분들마다 대만의 동성결혼 법제화를 기뻐하는 것을 본 나로서는 의외의 반응이었다.

캐나다 판타지아영화제

‘덕후’를 위한 영화제 (2019년 7월 22~26일 체류)

판타지아영화제에서의 관객과의 대화. 사진 판타지아영화제.

캐나다 프리미어는 해외 배급사 콘텐츠 판다와 잘 알고 있는 판타지아영화제로 정했다. 판타지아에서 <벌새>가 상영되는 것은 모두 의외라고 했는데, 이 영화제가 스페인 시체스영화제처럼 장르영화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시아, 유럽, 북미 프리미어까지 결정하고 난 뒤부터는 사실 어떤 국가에서 프리미어 시사를 하는지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고, 판타지아영화제측에서 <벌새>를 강력히 지지했기에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 니콜라스가 공항에 픽업을 나왔다. 저녁이라 마땅히 밥 먹을 곳이 없을까봐 사왔다며 샌드위치와 맥주를 건넸다. 다음날 니콜라스는 요즘이 베리 시즌이라며 유기농 시장으로 안내했다. 그는 시장에서 파는 베리를 선물하며, 이렇게 다양한 베리를 한 바구니에 담아주는 곳은 이 집밖에 없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삶에서 만났던 캐나다인들이 대체로 평화롭고 순한 느낌이었는데, 짧게 만난 판타지아의 인연들이 그 스테레오 타입을 한층 강화시켰다.

몬트리올 거리는 큼직큼직한 거리에 잘 구획된 분당 같은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히피처럼 보이는 젊은 마약 중독자들이 거리에 많았다. 니콜라스는 캐나다의 자살률이 엄청 높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들의 나라가 유니콘처럼 보이는 것에 대한 경계를 놓지 않았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캐나다 젊은 남성들의 자살률 이야기가 다소 충격적이었다. 중년의 백인 남성들이 자기반성에 실패한 것과 달리, 캐나다의 젊은 남성들은 오히려 남성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을 하고 그것이 자살로 이어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벌새>의 아버지가 중년 백인 남성들과 많이 닮아 있다고 했다. 정확한 감상이었다.

판타지아영화제는 장르영화제라 그런지, 관객이 강한 ‘덕후’의 기운을 풍겼다. 관객은 영화제 관습으로 매 영화 상영 전 ‘야옹’ 하고 고양이 소리를 냈고, 오랜 후원사인 신라면 광고가 나오면 다들 환호했다. 한국 영화광인 니콜라스는 관객에게 <벌새>가 <택시운전사> <1987>과 함께 한국 현대사를 다룬 영화라고 소개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캐나다 관객이 조심스럽고 진보적이라 느꼈다. 특히 <벌새>의 가부장제를 타자화하느냐, 아니면 어디에나 있는 폭력의 보편적 모습으로 이해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인데, 관객은 후자의 관점으로 영화를 받아들였다.

BFI런던영화제

이제는 많이 상업화된 영국의 대표 영화제 (2019년 10월 7~11일 체류)

BFI런던영화제에 함께 간 배우 김새벽(가운데), 조감독 홍지수(오른쪽)와 함께. 사진 김보라.

BFI런던영화제에는 조감독 지수와 김새벽 배우가 함께했다. 우리는 매일 꾸준히 호텔 조식을 먹고 가끔 근처 공원에 나가 걸었다. BFI런던영화제는 대형 영화의 레드카펫 행사가 주가 되는 느낌이었고, 아쉽게도 영화제의 특색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제에서 연결해준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중 <사이트 앤드 사운드>에서 <벌새>를 비롯한 한국의 여성감독들에 대한 기사를 잘 써주었다. 후에 <할리우드 리포터>도 한국의 여성영화들에 대해 다뤘는데 해외에서 한국 여성영화의 새로운 물결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이 좋았다.

비는 시간에 대학원 동창이자 다른 섹션에서 상영되는 <투 리브 투 싱>의 감독 조니 마를 만났다. 칸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를 했던 영화인데, 전주국제영화제에 초대되었던 <오래된 돌> 이후 그가 만든 두 번째 영화다. 노천 식당에서 오랜만에 만난 그가 다짜고짜 물었다. “첫 번째 영화의 트라우마는 잘 극복했니?” 그 물음이 참 고마웠다. 그건 그 모든 사투를 경험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니까.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어떻게 필연적으로 인간을 성찰하게 하는지 이야기했다. 조니가 문득 말했다. “몇년 전에 한국에서 널 봤을 때와 지금의 너는 기운이 달라.” 그때의 내가 어땠냐고 물어보자 그는 어딘가 초조해 보였다고 답했다. 몇년 전의 내가 세상에 내뿜은 에너지를 누군가가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어때 보여?”라고 묻자 “마음이 편해 보여. 그런데 아직 완전히 만족한 것 같지는 않아”라며 씩 웃었다.

파리한국영화제

한국영화를 알리는 파리의 플랫폼 (2019년 11월 1~4일 체류)

런던에서 함께했던 조감독 지수와 한달 만에 파리한국영화제에서 조우했다. 우리는 조식을 먹고 호텔 근처의 불로뉴숲으로 갔다. 지수와 나는 <벌새>가 끝나고 많이 지쳤다. 너무 사랑했기에 아프기도 했던 그 작업에 대해 우리는 비로소 과거형으로 이야기했다. 지수는 BFI런던영화제 후에 갔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했다. 너무 아름다워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던 불로뉴숲에서 지수와 팔짱을 끼고 오래 걸었다. 말하지 않는 순간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파리한국영화제는 스탭부터 프로그래머까지 모두가 자원봉사인 영화제였다. 한국영화를 프랑스에 알리기 위해 시작한 작은 영화제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영화제에서 <벌새>를 보러온 프랑스 교민들, 다른 유럽 국가에서 몇 시간씩 기차를 타고 온 한국 분들을 만났다. 프랑스 매체 인터뷰 때는 모든 매체가 마치 입을 모은 듯이 한국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물어봤다. <벌새>에 대한 질문이 아닌 한국 여성/영화인으로서 얼마나 힘든지 묻는 질문이 반복되자 피로가 왔다. 언젠가 린 램지 감독이 하도 자신에게 여성감독으로서의 소감을 물어봐서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바꾸려 했다는 농담이 떠올랐다.

홍콩아시안영화제

아시아영화들을 소개하는 홍콩의 독립영화제 (2019년 11월 15~17일 체류)

홍콩아시안영화제에서 참여한 관객과의 대화. 사진 홍콩아시안영화제.

<벌새>로 간 2019년 마지막 해외영화제였다. <벌새>는 홍콩 브로드웨이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되었는데, 한국을 잘 아는 영화제 위원장 클라렌스 추이는 그 극장이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극장이라고 설명했다. 관객과의 대화 때 한 관객이 영지 캐릭터에 대해 물었다. 나는 영지의 학생운동 배경과 <잘린 손가락>이라는 노래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 관객은 “당신은 이러한 시민운동으로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가”라고 물었다. 시위가 장기화된 홍콩에서 받은 질문에 참으로 힘겹게 “그럼에도, 삶은 좋은 쪽으로 변화하려고 더디지만 나아간다고 믿는다”라고 답했다. 사실 시위 와중에 영화제를 하는 것 자체가 선언이다. 홍콩아시안영화제가 <벌새>를 상영해준 것에, 영화제를 취소하지 않은 사실에 감사하다.

행사가 끝나고, 클라렌스가 주윤발도 종종 간다는 미도카페로 인도했다. 오색의 장식적인 창이 인상적인 카페에서 밀크티를 마셨다. 미도카페에서 나와 공원에 앉아 있는데,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기억나는 것은 이런 것이다. 고기 반찬을 먹으려는 어린 나에게 오빠가 먹어야 하니 먹지 말라며 탁 하고 내 손등을 때리던 할머니의 맵싸한 손. 혈연관계보다 친밀함을 나눴느냐 여부가 중요한 나로서는 어른이 되어 그녀와 왕래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년, 엄마와 함께 종종 외할머니가 있는 요양원에 갔다. 외할머니는 내게 밥을 먹었는지 열번쯤 묻고 나는 똑같은 답을 하고, 외할머니와 포옹을 하고 집에 왔다. 수아 PD에게 “외할머니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어”라고 담담히 말했지만 눈물이 터져나왔다. 관객과의 대화와 시상식이 남아 있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영화제측에서는 전적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다만 <벌새>가 뉴 탤런트 대상을 타게 되었으니 수상소감을 문자로 달라고 했다. 저녁에 호텔로 왔다. 함께 홍콩에 온 윤가은 감독님이 문자로 홍콩 시위 지도를 보내주었다. 알고 보니 우리 호텔은 시위 지역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시위대의 이동 소리, 고함 소리,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호텔 방에서 밤을 보내고 새벽에 공항으로 향했다.

홍콩아시안영화제에 초대된 게스트들과 함께한 저녁 식사. 사진 홍콩아시안영화제.

일을 다 마치고 오라고 말렸던 엄마는 막상 내가 오자 굉장히 기뻐했다. 가족 모두 청도로 내려갔다. 문중에서 해준 비석에는 사위인 아빠의 이름은 있었지만 엄마 이름이 없었다. 집 바로 옆 요양원에 할머니를 모시고 매일같이 간호했던 엄마의 이름이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여전히 영화 <벌새>의 연장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할머니를 위해 했던 일과 할머니가 가부장제 속에서 자식들을 키워낸 것을, 모든 여성들의 역사를 존엄을 갖고 기억하고 싶다.

<벌새>는 2019년 12월 말까지 45개의 상을 탔다. 사람들이 물었다. 부담되지 않냐고. 이 상들이 내게 준 의미가 무엇인지 다 정리하지 못했다. 다만 <벌새>를 통해 듣게 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게 준 의미는 명료하다. 트라이베카영화제 후, <아메리칸 사이코>의 메리 해론 감독이 긴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녀는 <벌새>를 보고 떠올랐던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이메일을 통해 도둑질을 하고, 학교를 가지않고, 하루 종일 거리를 걸었던 메리 해론의 기억을 본다. 메리 해론은 2011년 <리코더 시험>이 미국감독협회의 학생단편영화상을 수상할 때 시상을 해준 바로 그 감독이었다.

영화를 통해 누군가와 만나는 것, 누군가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것, 그것은 내가 <벌새>를 쓰던 긴긴 밤 간절히 바라던 소망이었다. 당신들과 만날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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