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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의 인간성
오혜진(문학평론가) 일러스트레이션 다나(일러스트레이션) 2020-01-15

새해가 시작된 지 한주가 지났건만 2와 0이 규칙적으로 두번 반복되는 ‘2020’이라는 숫자가 여전히 생경하고 상서롭기만 하다. 조지 오웰에게는 1984년이, 노스트라다무스에게는 1999년이 인류에게 파멸을 선사할 적기(適期)로 여겨졌고, 스탠리 큐브릭이 1968년에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만들 때만 해도 인간이 진짜 달에 갈 줄 몰랐으며, 2004년의 왕가위에게 2046년 정도면 미래도시에서의 사랑 서사를 상상하는 데 꽤 적절한 시공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순식간에 2020년대에 접어든 지금, 2046년은 ‘충분히’ 미래적인가.

창작자들은 미래의 인류 혹은 미래에 인류가 만나게 될 ‘다른’ 존재들을 로봇, 동물, 좀비, 괴생명체 등의 형상으로 상상하곤 했다. 그럼에도 이 캐릭터들의 속성은 여전히 인간을 닮았고, 모종의 인간성을 경유해서만 이해될 수 있었다. ‘지나치게’ 인간을 닮아서 독자에게 ‘불쾌한 골짜기’(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이 인간과 닮은 정도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를 경험케 한 서사도 있다. 끝내 인간 범주와의 관계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SF 서사의 한계인지 미덕인지는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김금희의 소설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면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기보다 마치 밭에서 무 같은 것을 뽑아올리듯 무언가가 자신을 이불 속에서 끄집어낸다는 느낌이었다.” 매일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광역버스에서 빵, 사과, 계란 등으로 식사를 해결하며 출근하는 주인공 ‘선미’의 술회다. 무가 되어 뽑아올려지는 듯한 기분, 그것은 2020년대에도 여전히 ‘인간성’, ‘인간적인 감정’일까.

인간성에 대한 상상은 얼마나 변(하지 못)했을까. 2020년에 우리는 어떤 경험을 통해 ‘(비)인간됨’을 감각할까. 여자들이 스스로 고깃덩어리나 애 낳는 기계로 취급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 노동자의 신체가 마치 닳지도, 훼손되지도 않는 기계인 양 위험하고 더러운 작업환경에 내던져질 때, ‘미래’에 진입한 우리는 이 경험들을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주로 장애인과 트랜스젠더 신체의 ‘정상성’을 논할 때 운위되곤 하는) 모든 인공적·보철적인 장치들을 ‘비인간’의 속성으로 환원시키는 사고에 대해, 애초에 모든 인간은 “사이보그”라며 ‘인간성’ 자체를 새롭게 상상해보자는 제안이 들려온다. 인간을 동물 아닌 존재, 짐승에 비해 특권화된 존재로 전제하는 사고를 성찰하기 위한 ‘비인간동물권’과 ‘종차별 근절’ 운동의 전개도 거세다. 과연 이 만화방창하는 성·노동·동물, 그리고 장애와 기술에 대한 해방의 담론들은 2020년, 도래한 미래의 ‘인간성/정상성’에 대한 상상을 어떻게 바꿀까. 오직 그것만이 기대가 된다. 이 디스토피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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