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people
<네버 엔딩 펠리니> 에우제니오 카푸초 감독, "펠리니, 그는 내게 부처 같았다”
김소미 사진 백종헌 2020-02-06

예술가가 바라본 예술가의 모습은 언제나 한층 더 내밀하고 세심하다. 거기엔 존경과 두려움, 동경과 콤플렉스, 예찬과 좌절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후기작 <진저와 프레드>(1986)에 조감독으로 함께했던 에우제니오 카푸초 감독이 이 어려운 작업에 뛰어들었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길>(1957), <카비리아의 밤>(1957), <달콤한 인생>(1960), <8과 1/2>(1963), <영혼의 줄리에타>(1965) 등을 만들며 1950~60년대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영화의 미학적, 정신적 차원을 확장한 기념비적 인물이다. 펠리니의 작품 중 비교적 덜 알려진 <진저와 프레드>는 펠리니의 오랜 동반자인 배우 줄리에타 마시나와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의 조우를 볼 수 있는 귀중한 영화로, 당시 조감독으로 활동하며 펠리니로부터 영화 만들기의 무수한 비밀을 엿봤던 카푸초 감독은 <네버 엔딩 펠리니>를 통해 펠리니와의 추억은 물론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를 풀어놓는다. 서울아트시네마와 이탈리아문화원의 ‘2020 베니스 인 서울’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을 찾은 에우제니오 카푸초 감독을 만났다.

-페데리코 펠리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이탈리아 국영방송인 <라이>(RAI)에서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굉장히 방대한 아카이브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그의 조감독으로 일한 이력을 알고 소장 자료들을 마음껏 내줄 테니 다큐멘터리를 제작해보라는 제안을 먼저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행복한 동시에 걱정스러운 프로젝트였다. 펠리니처럼 세계 영화사에서 중요한 감독을 나 또한 감독인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적으로 가까운 관계였던 만큼, 그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싶은 고민도 있었다.

-대상과 거리두기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방법론을 취했나.

=영화의 방향성을 순수 다큐멘터리보다는 다큐멘터리 푸티지가 삽입된 내러티브영화에 가깝게 꾸렸다. 자료 자체도 너무나 방대해서, 내 주관과 오리지널리티를 살려 취합하고 또 새로운 분량을 촬영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의 기억과 아카이빙된 자료들, 그리고 현재 추가로 촬영할 자료들을 묶어나가면서 펠리니를 향한 나의 주관적 의식과 역사적인 객관성 모두를 찾아낼 수 있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유년 시절에서 시작해 그의 영화 인생을 말하면서 자연스레 이 영화를 만드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가 섞여 들어가는 구성이다. 작품 주제나 정서에 있어 자기반영성을 밝혀온 펠리니의 방식을 다시 한번 재현하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그렇다. 자전성은 펠리니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고, 젊은 시절부터 그와 함께 일했기 때문에 영화와 우리의 삶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종의 교육을 받았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펠리니에 관한 진실한 증언을 도출하려 했다. 펠리니는 삶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아티스트가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곁에서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만들기를 도우면서 특별히 받았던 조언이나 격려가 있나.

=예술가는 항상 겸손해야 하고, 항상 자각을 갖고 자기비판을 해야한다는 점. 펠리니는 언제나 너무 자신감을 갖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번 영화로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조금 부담스럽다. 내가 충분히 잘한 건지 아직도 자신이 없다. (웃음)

-지금은 자주 쓰이지 않지만 ‘펠리니스크’라고 불릴 정도로 페데리코 펠리니만의 독특한 영화적 색채가 있다. 유랑의 정서, 꿈과 환상을 넘나드는 마술적이고 초현실적인 면모, 영혼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태도다. 관객으로서 당신이 매혹된 지점은 무엇인가.

=재미있으면서 깊이 있고, 슬픈 장면에서도 웃음이 난다. 그런 복합성과 역설을 통해 인간의 본성 속으로 정직한 여행이 가능해진다. 펠리니의 영화는 영화가 우리의 정신과 영혼 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보여주었다. 관객으로 하여금 자기 지각의 가장 깊은 곳에서 질문을 던지게 만들면서, 사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영역으로 나아간다. 그와 작업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건 매우 자유롭고 독립적인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지성적이고 솔직하게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고, 나에게 그는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철학가였다. 마지막 작품 즈음에 이르러서는 관객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영화가 관념적이고 난해한데, 작품 후기로 갈수록 펠리니 감독이 탐구자를 넘어 예지자에 가까울 정도로 정신적으로 깊이 나아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기 자신으로서 온전히 살기 위해 노력한 분이다. 그는 내게 부처 같은 존재다.

-펠리니는 아직까지도 이탈리아 시네마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네오리얼리즘에서 탈피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계속 재정의했던 감독이고, 그의 영화가 가진 마술적이고 초월적인 스타일이 후배들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미켈란젤로도, 다빈치도 상속자를 남기지 않았다. (웃음) 펠리니의 작품은 훌륭한 선례를 남기면서도 동시에 쉽게 모방되지 않았다. 아마도 나를 비롯해 많은 이탈리아 감독들의 숙제일 텐데 로베르토 로셀리니, 페데리코 펠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같은 거장들의 성벽을 넘기 쉽지 않다. 에너지인 동시에 큰 압박과 좌절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는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언급되는 기념비적인 인물들에게 바통을 넘겨받아 일하는 우리 세대의 문제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들 영화의 뛰어난 미학이 오늘날엔 영화 작가들 사이에서도 결코 자주 말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작자로서 이런 가치들을 기억하고, 다시 복원하고,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의의를 느낀다.

-펠리니 역시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조감독이었다. 작가주의의 의미와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시대의 영화감독으로서 어떤 감정을 느끼나.

=다행히도 나는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낭만과 향수 어린 시야에 멈추지 말자고 생각한다. 영화는 산업예술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살아남는 방식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최근 10년간 산업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예산, 현장 운용 방식, 플랫폼, 배급 방법 모두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좋은 이야기에 반응하는 관객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플랫폼의 대두로 창작자에겐 과거보다 더 큰 자유가 생겼다고 본다. 다만 예술과 문화를 존중하고, 이를 깊이 있게 소비하는 관객층을 넓히기 위해선 사회의 교육도 중요할 것이다. 한국영화 <기생충>이 지금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사회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대중의 눈높이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구상하고 있는 차기작은.

=이제 5년 동안 준비하고 촬영한 작품의 편집에 들어간다. 로마에 살고 있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이고, 아픈 엄마와 함께 가족이 점점 어떻게 변해가는지 5년의 시간 동안 살펴보는 이야기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