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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엽 편집장] 영화의 모험
장영엽 2020-02-14

“And the Oscar goes to…”라는 말에 이토록 가슴 졸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주요 제작진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한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기생충>의 후반부를 처음 보던 순간만큼이나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줬다. <기생충>의 수상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까닭은, 비단 한국영화 최초로 오스카상을 수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봉준호 감독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이야기한 “1인치도 안되는 자막의 장벽”을 가진 비영어권 영화들이, 가장 영향력 있는 북미 시상식에서 할리우드영화와 동등하게 경쟁해 합당한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이 일깨웠다는 점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오랫동안 높은 적중률로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를 예측해온 <씨네21>도 작품상, 감독상 결과를 기존의 관습에 따라 예상했음을 이 자리를 빌려 반성한다. 가능성의 마지노선을 허물어준 <기생충>팀에 다시 한번 축하와 응원을 보낸다.

사실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은 오랫동안 ‘<기생충> 스페셜 에디션’을 준비해온 <씨네21>엔 계획에 없던 쾌거였다. 거의 책 한권을 <기생충>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보자는 기획은 지난해 12월 내가 편집장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추진한 첫 번째 대형 특집이었다. 연말부터 다음해 초까지 이어지는 영미권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2019년 칸국제영화제 이후 영화에 쏟아지는 전세계 평단과 매체의 관심을 지켜보건대 <기생충>이 지금껏 한국영화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였고, 누구도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는 영화의 모험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호에 소개한 다채로운 기사들은 지면마다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각각의 퍼즐 조각과도 같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면 지난 9개월간 <기생충>이라는 한편의 영화가 거쳤던 흥미진진한 여정의 밑그림이 독자의 머릿속에 그려질 수 있길 소망한다.

합본호에 달하는 분량의 스페셜 에디션을 준비하며 악독 편집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해외 체류 기간이 길고 변화무쌍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인터뷰이가 많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두달간 기자들에게 섭외 상황을 끊임없이 독촉해 미안하다. <기생충> 스페셜 에디션에 수록된 수많은 독점 기사들은 오랫동안 섭외에 매달린 기자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쁜 일정 중에도 잠을 줄이고, 식사 시간을 늦추는 등 어렵게 시간을 내어 취재에 응해준 봉준호 감독 및 <기생충> 제작진에도 감사를 표한다. 수많은 우연과 적절한 타이밍과 많은 이들의 노고가 결합해 완성한 이 스페셜 에디션을, 부디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p.s. ‘<기생충> 스페셜 에디션’을 싣는 호의 표지가 <사냥의 시간>이라는 점도 기쁘게 생각한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씨네21>이 주목하는 신진 상업영화 감독 윤성현의 신작 소식과 오래전부터 <씨네21>과 함께 호흡해왔던, 이제는 어떤 정점에 이른 봉준호 감독의 영화 이야기가 같은 호에 실렸다는 점이, 먼 훗날 돌아보았을 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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