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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임현주 아나운서의 인생 영화 <스타 이즈 본>
임현주(아나운서) 2020-04-01

감독 브래들리 쿠퍼 / 출연 브래들리 쿠퍼, 레이디 가가 / 제작연도 2018년

‘내가 더 예쁘지 않아서일까?’ 아나운서 시험에서 탈락할 때마다, 아나운서가 된 후에도 이러한 생각을 마음 한쪽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내 안의 열정, 응집된 이야기,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한 가득인데 노력하고 꿈꾸어도 그 기회들은 내 옆구리를 숭숭 지나가는 듯 보였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더 완벽하게 예쁘지 않아서. 아나운서 지망생 시절이었다. 최종 단계에서 늘 탈락의 고배를 마시던 나는 내 옆의 실력이 한참 부족해 보이는 수려한 외모의 지원자가 합격하는 것을 보며 지긋지긋한 외모지상주의를 원망하고 있었다. 한데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외모도 경쟁력이고 한눈에 매력적인 것도 그 사람의 장점이라는 것을. 어쩌면 뛰어난 외모 때문에 그가 갖고 있을 잠재력을 깎아내리는 또 다른 편견이었다는 것을.

여하튼 아나운서가 된 후에도 한동안 나는 더 예뻐지기 위해 나를 미워했다. 온갖 다이어트에 시달렸고, 소위 아나운서다운 외양과 옷차림을 따라가며 언뜻 보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도 안될 비슷한 틀에 스스로를 끼워맞췄다. 그럼에도 불안함은 좀체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자기다움.’ 불안함이 지긋지긋해졌을 때, 자신만의 색깔로 매력을 발산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 또한 왜 꼭 그래야만 할까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을 때,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조금씩 나다움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작은 사이즈의 옷에 나를 맞추는 대신 “편안한 사이즈를 가져다주세요”라고 말한다. 지루하기만 했던 피부관리와 네일숍을 다니는 대신 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 나의 본질과 자기다움은 완벽한 외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 불필요한 소모를 줄이고 나니 그때부터 나의 생각, 나의 재미, 나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얼마나 자유로운지! 이제는 안다. 자기다움이 가장 멋진 것이라는 사실을.

자기다움을 이야기할 때 이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지만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영화 <스타 이즈 본>. “내 코가 너무 커서 난 안될 거래요.” 음악적 재능은 뛰어나지만 코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는 앨리(레이디 가가). “비밀 하나 말해줄까요? 당신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예요.” 이미 성공한 가수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와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는 톱스타 잭슨(브래들리 쿠퍼). 그는 외모에 자신 없어 하는 앨리의 재능을 극찬하며 자신감을 주고 자신의 콘서트 무대에서 그녀의 실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서로의 불완전함을 채워주던 어느 날, 앨리 앞에 캐스팅 매니저가 나타나 ‘당신은 이미 다 갖추었다’며 더 큰 무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그녀의 큰 코는 실력 앞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기회가 왔으니 실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씁쓸함은 변하지않는 현실 같지만. 스타를 만드는 시스템 속에서 나다움을 잃게 되진 않을까 내심 불안한 앨리에게 잭슨은 말한다. “진심을 노래하지 않으면 끝이야. 사람들이 언제까지 당신 노래를 들어줄지 겁내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얘기를 해.”

서로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을 쓰다듬듯 함께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자면 왠지 위로가 된다. 당신이 아니라면 더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레이디 가가의 절절한 노래는 영화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자기다움을 지켜주고 격려하는 내 곁의 누군가는 누구일까.

임현주 MBC 아나운서. KNN, JTBC 아나운서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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