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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패 아니면 대박
2002-05-08

심재명/ 명필름 대표 shim@mungfilm.com

17억, 14억, 10억원…. 순제작비가 아니다. 요즘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의 마케팅 비용이다. 현재, 온 국민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는 영화 <집으로…>는 순제작비 약 15억원, 마케팅비 약 17억원을 썼다. 아직도 상영중이라 최종 마케팅 비용은 상회할 것이 틀림없다.

<집으로…>는 1억7천만원이 아닌 17억원을 쏟아붓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어쩌면, 2만명도 채 볼까 말까 했을지도 모를 이 영화의 운명을 전국 200만명 이상의 큰 영화로 바꿔놓았다. 이 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정확히 보고, 현재 한국영화 시장을 예리하게 꿰뚫어본 결과이다. 결국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아니 돈을 얻은 셈이다. 더욱 다행인 것은 그 용기가 만용이 아닌, 이 영화가 어떤 면에서 대중과 조응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읽어낸 의미있는 용기라서 현재 영화계가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행운아의 이야기 말고 불운한 쪽을 들춰보면 코피 쏟고 항복한 이들의 숫자는, 올해에도 부지기수이다. 올해만 해도 서울 20개관 이상을 확보하지 못한 영화 중에 단 한편도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가 없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와이드 릴리스 방식에 목숨을 걸고 자연히 첫주 흥행 성적을 위한 ‘과격한’ 마케팅비를 쏟아붓고,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흥행 성공과 실패에 영화의 운명을 맡기게 된다.

다행히도, 첫주의 흥행 성적이 괜찮다 하더라도, 완성도에 문제가 있어서 입소문이 안 좋게 날 경우는 낙차폭이 커서 요즘 영화계엔 1주 버티면 다행, 2주 버티면 롱런, 3주 버티면 대박이라고 입을 모은다.

참패: 참혹하게 패배하다.

실패: (목적으로 삼은 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거나, 능력이 부족하거나, 조건이 불리하거나 하여 뜻을 이루게 되지 못하는 것. (이상 국어사전에서 발췌)

요즘은, 흥행 참패, 실패의 말을 수없이 미디어 매체에서 접하게 된다. 웬만하면 참패요, 실패한 영화로 낙인찍힌다. 워낙 총제작비용이 늘어나 참패, 실패의 딱지를 이마에 달게 된 영화들의 손해 액수는 웬만하면 -10억원, -15억원이다. 쏟아붓는 만큼의 안전장치나 대책 마련은 거의 제로 상태다.

극장과 영화사가 5:5의 비율로 수익을 분배하는데, 50%의 수익률을 놓고, 제작사와 투자사는 20억∼30억원의 도박을 건다. 우리의 시장도 점차 할리우드화돼가는 추세여서 대중영화, 장르영화일수록 대규모 개봉, 과감한 마케팅비 투입의 형국으로 옮아가고 있으나 유통·배급 시스템은 과거와 똑같은 모습이다.

미국처럼 슬라이딩 시스템(Sliding scale system)을 적용, 초반의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안전판을 마련하거나, 영화의 힘으로 버티면서 개봉관 수는 대폭 줄더라도, 롱런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방식 등을 적극적으로 고민해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현재 우리는, 제작·투자사는 대박 아니면 쪽박의 성적표를 받는다. 또한, 극장쪽도 극장 수 증가, 요금 및 서비스 경쟁, 좋은 영화 유치 경쟁으로 남는 거 없다고 울상이다.

‘대박’ 아니면 ‘참패’의 극단적 양상이 아니라, ‘석패’ 혹은 ‘선전’ 또는 ‘분투’라는 용어가 많이 회자되는, 건강한 시장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아니, 큰 소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