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리벤지' 강간당한 여성이 핏빛 복수를 벌이는 스릴러영화
배동미 2020-05-05

젊고 아름다운 미국 여성 제니퍼(마틸다 안나 잉그리드 루츠)는 사냥을 핑계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프랑스 남성 리처드(케빈 얀센스)와 불륜에 빠진다. 가족과 문명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헬기가 필요한 모로코의 사막 한가운데의 저택에서 두 사람은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서로의 외적인 매력만 탐닉한다. 그러던 중 리처드가 사냥에 나설 친구들을 모아놓고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리처드의 친구 스탠(빈센트 콜롬보)에게 제니퍼가 강간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제니퍼는 리처드의 또 다른 친구 드미트리(기욤 부셰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내지만 외면당하고, 돌아온 리처드에게도 싸늘한 대우를 받는다. 제니퍼만 없으면 강간을 없던 일로 할 수있다고 착각한 리처드는 급기야 그녀를 높은 벼랑에서 밀어버린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제니퍼는 악에 받쳐 리처드 무리에게 복수를 감행하고, 이들도 제니퍼를 죽이는 데 혈안이 된다. 종래에는 사건에 엮인 네 사람이 서로를 사냥하기 위해 총과 칼을 겨누는 형국으로 치닫는다.

<리벤지>는 강간당한 여성이 핏빛 복수를 벌이는 스릴러영화다. 제니퍼는 벼랑으로 떨어지면서 나뭇가지가 허리를 뚫고 나올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정신을 잃지 않고 가지를 부러뜨려 도망친다.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피를 동반한 복수는 한번 시작되자 멈추는 법이 없이 나아간다. 제니퍼는 배에 꽂힌 나뭇가지를 빼낸 다음 얇은 알루미늄 캔을 뜨겁게 달궈 상처 부위를 지지는데 의료용 실보다 매끈하게 상처가 아물기도 한다. 단번에 상처를 치료한 제니퍼는 세 사람을 차례로 죽여나간다. 영화의 개연성에 있어서 아쉬움이 남지만, 인물들이 처한 공간과 맥락은 괄호쳐진 반면 쫓고 쫓기는 과정에 흘러나오는 핏물의 존재감만은 확실하다. <리벤지>의 주인공은 어쩌면 강간당한 여성이라기보다 끈적끈적한 핏물일지도 모르겠다. <리벤지>에는 계속된 총질로 스크린 위에 일순간에 터지는 핏물도 있고, 상처를 헤집어 유리 조각을 빼내며 울컥 쏟아지는 핏물도 있다. 카메라는 여러 물성의 핏물을 성실하게 클로즈업하는데, 주인공 제니퍼의 내면을 담기 위한 얼굴 클로즈업만큼이나빈번하게 핏물이 터지고 흐르는 모습을 담아낸다. 피는 흙먼지가 이는 황색의 모로코 사막과 대비되면서 감각적으로 재현되며, 리처드의 대리석 저택을 붉게 물들이면서 그 끈적이는 질감이 느껴질 정도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에 따르면, 대량의 핏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촬영 당시 준비한 핏물을 다 써버리는 일이 왕왕 벌어지기도 하면서 미술팀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한다.

<리벤지>는 프랑스 영화감독 코랄리 파르자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동안 텔레비전 방송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그는 이번 영화에서 각본과 편집까지 직접 맡았다. 그는 대사를 최소화하고 액션만으로 서사를 추동시켜나가면서 평단으로부터 성공적인 여성감독의 데뷔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주인공 제니퍼는 초반 30분가량을 제외하고는 단 한마디의 대사도 없이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고 전투에 나서는 여전사로 변신한다. 어떤 면에서는 <언더 더 스킨>(2013)에서 강한 힘을 지녔지만 말이 없고 쉽게 웃는 법이 없는 로라(스칼렛 요한슨) 캐릭터와 같아 보인다. 파르자 감독은 <리벤지>를 만들면서 실제로 <언더 더 스킨>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외에 데이비드 린치의 <광란의 사랑>(1990)과 니콜라스 빈딩 레픈의 <드라이브>(2011)를 영화적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밝혔다. 또한 피와 폭력을 그리는 데 천부적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들도 많이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벤지>는 2017년 토론토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매드니스 섹션에 공개되었으며, 시체스국제영화제에서‘판타스틱 최우수감독상’과 ‘시민 케인 주목할 감독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돼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CHECK POINT

여성 복수극에 지극히 남성적인 시선?

영화 초반 제니퍼와 리처드가 서로를 탐닉할 때 제니퍼의 엉덩이를 집요하게 담아내던 카메라는 남성적 시선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황량한 모로코의 사막

영화의 배경이 된 황량한 모로코 사막은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각본을 쓸 때부터 이미 염두에 둔 곳이다. 저택도 사막의 비탈위에 세워져 제니퍼가 완벽하게 홀로되어 싸우는 느낌을 연출할 수 있었다.

총에 맞서는 유일한 무기는 라이터

사냥에 나선다며 총으로 무장한 남성 캐릭터들에 맞서는 제니퍼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라이터다. 편의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프랑스산 ‘더 빅 라이터’로 불을 놓아서 찔린 나무를 태워 위험에서 벗어나고 상처를 치료한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