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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여자' 20년 전 프랑스로 떠났던 한 여자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20년 전 프랑스로 떠났던 미라(김호정)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멋진 배우가 되길 꿈꾸며 파리로 떠나 그곳에서 사랑하는 남자도 만나고 결혼도 했지만, 결국 배우의 꿈은 포기해야 했고, 결혼 생활마저 불행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녀의 귀국을 축하해주는 술자리, 함께 예술을 꿈꾸며 공부하던 영은(김지영)은 영화감독이, 성우(김영민)는 연극연출가가 되어 있다. 하지만 몇년 전 세상을 떠난 후배, 해란(류아벨)의 빈자리는 이들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문제는 이 ‘또렷’하다고 믿어왔던 기억이 사실은 균열이 난 것임을 확인하면서 시작된다.

정확하게 아귀를 맞추어내지는 못하더라도 과거의 망령이 일부는 소환된 기억의 방식으로, 또 일부는 판타지와 뒤섞인 꿈의 방식으로 현재의 주인공을 찾아오는 영화들에 어느 정도 훈련이 된 관객이라면, <프랑스여자>의 진행이 그리 낯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여자>는 과거의 기억이 현재로 찾아오는 대신, 현재의 미라를 과거 속으로 밀어넣는 방식을 택한다. 현재의 친구들과 마시던 술자리가 어느 순간 20년 전 과거의 친구들, 과거의 배경으로 바뀌는데 과거의 친구들은 현재의 미라를 위화감 없이 예사롭게 대한다. 마치 <식스 센스>의 주인공처럼 미라만, 자신이 과거를 찾아온 (현재의) 망령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길을 잃은 사람처럼 미라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축과 파리와 서울이라는 공간의 축을 이리저리 헤맨다.

김희정 감독의 능숙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순간은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뒤틀고 이야기를 중첩시켜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혼란도 불러일으키지 않고 차분하게 서사를 진행시키는 데 있다. 장편 <열세살, 수아>(2007)로 데뷔한 김희정 감독은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2012), <설행_눈길을 걷다>(2015)를 거치면서 죽음의 문제와 죽은 자의 빈자리를 직면해야 하는,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해왔다. 그녀의 네 번째 장편인 <프랑스여자>는 이제 타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나 자신’을 어떻게 (새롭게) 인식할 것인가의 고민으로 그 초점을 옮겨간다. 미라 앞에는 여러 층위의 죽음이 어른거린다. 직접적으로 해란의 자살과 아버지의 죽음이 등장한다면, 파국을 맞이한 결혼과 배우라는 좌절된 꿈은 은유적인 의미에서 미라가 대면해야 할 또 다른 죽음이다. 하지만 미라가 이러한 여러 죽음의 의미를 찾아 다시 과거를 떠돌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김희정 감독은 영화의 가장 마지막까지 미루었다가 우리 앞에 슬며시 내놓는다. (스포일러일지도 모를) 이 사건을 통해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미라는 비로소 타인의 죽음(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을 다시 찾을 힘을 얻는다. 말하자면 이전까지의 영화가 일종의‘애도’의 영화였다면, <프랑스여자>는 ‘각성’의 영화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20년의 시간 차를 오가며 유령처럼 기억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을 펼치는 미라 역의 배우 김호정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임권택 감독의 <화장>에서 죽음 앞에서 서서히 스러져가는 인물을 연기했던 그녀는 이 영화에서도 여리지만 강인한 인물을 인상적으로 연기해냈다.

배우 류아벨의 존재감도 단연 눈에 띈다. 미라의 자살한 후배 해란과 성우가 자신의 연극에 캐스팅한 신인배우 현아를 동시에 소화하면서 산 자와 죽은 자의 모호한 경계 역시 넘나들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설정을 흔들림 없이 일정한 호흡을 유지하며 훌륭하게 보여준다. <프랑스여자>는 전주국제영화제, 샌디에이고아시안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다.

CHECK POINT

<쥴 앤 짐>

극중 미라는 영은에게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의 <쥴 앤 짐>의 한 장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보트를 즐기는 이 행복한 장면은 사실 뒤늦게 밝혀진 미라-성우-해란의 삼각관계에 대한 미라의 왜곡된 기억이자 예정된 파국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김영민

이쯤 되면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불륜의 중심에 서 있던 그가 <프랑스여자>에서도 또다시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한다.

파리와 서울의 밤거리

<프랑스여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늦은 밤, 서울의 좁은 골목을 걸어가는 미라의 뒷모습이다. 이 골목은 이내 파리의 밤거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이때 미라의 모습은 두 도시를 끝없이 떠도는 유령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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