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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천천히 안녕' 나카노 료타 감독 - 기억은 잃어도, 마음은 잃지 않는다
남선우 2020-06-04

데뷔작 <캡처링 대디>(2013)로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차기작 <행복 목욕탕>(2016)으로 제40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한 나카노 료타 감독이 또다시 가족 이야기로 돌아왔다. 나카지마 교코의 소설 <긴 이별>을 각색한 <조금씩, 천천히 안녕>은 아버지가 치매를 앓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그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그 배경에는 대지진이 일어 모두가 숨죽여야 했고, 도쿄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며 다시금 열띤 기대감이 차올랐던 일본의 시간도 함께 흐른다. 세상과 호흡하며 가족의 역사는 씌어지고, 인물들은 가족 안에서 연결되다가도 홀로 싸워야 하는 순간들을 맞닥뜨린다. 나카노 료타 감독은 이번에도 인간이라는 존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넉넉한 마음을 한껏 발휘해 가족의 크고 작은 분투를 사려 깊게 기록했다. 그와 서면으로 나눈 대화를 전한다.

-<조금씩, 천천히 안녕>은 나카지마 교코의 소설 <긴 이별>이 원작이다. 소설의 어떤 점이 마음을 사로잡았나.

=지금까지는 오리지널 각본으로, 가족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의 사랑스럽고 익살스러운 모습을 그려왔다. <긴 이별>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하는 가족을 그린 소설이지만, 이야기를 읽으며 웃을 수 있었고, 등장인물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영화화하면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할머니가 치매를 앓았기 때문에 이 주제에 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나 싶다.

-마리(다케우치 유코)와 후미(아오이 유우) 자매가 어머니 요코(마쓰바라 지에코)로부터 아버지 쇼헤이(야마자키 쓰토무)의 치매 진단 사실을 전해 들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크게 놀라거나 심각하게 대응하지 않는 가족의 모습에서 이 영화의 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고 하면 놀라기보다는 ‘못 믿겠다’, ‘믿기 싫다’는 반응이 먼저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특히 둘째 후미는 절대 믿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으로 그렸다.

-소소한 웃음을 주는 장면들에서 영화의 태도가 드러난다. 쇼헤이가 바지에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요코가 무심히 털어버리고, 쇼헤이의 생일에 가족 모두가 귀여운 고깔모자를 쓰고, 타카시는 할아버지 쇼헤이를 ‘한자 마스터’라 부른다. 관객이 이런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랐나.

=인물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익살스럽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소소하게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은 모두 인물이 진지하게 무언가에 열중하는 장면인데, 인물이 그 상황에서 스스로 웃는 법은 없다. 관객을 의도적으로 웃기려 하기보다 관객이 자신도 모르게 웃을 수 있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장면들로부터 ‘사람이 사랑스럽구나’ 하고 느꼈으면 한다.

-쇼헤이가 병을 앓는 7년간, 가족 구성원은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한명 한명이 어떻게 자신의 문제를 맞닥뜨리고 해결하며 살아가는지 볼 수 있다. 마리와 후미 자매를 비롯해 마리의 아들 타카시, 후미의 옛 연인과 동료의 소식도 놓치지 않고 들려준다. 영화가 끝날 때쯤 이들 모두와 오랜 시간 함께한 느낌이 든다.

=관객이 등장인물 한명 한명을 가까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그리고자 했다. 그래야 관객이 영화 속 세계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배경을 섬세하게 담아내야 관객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여러 인물의 7년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투병 중인 쇼헤이의 마음을 제일 모르겠다는 인상도 받았다. 병을 앓으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쇼헤이를 그리기 위해 야마자키 쓰토무 배우와 어떤 의견을 나눴나.

=애초에 치매에 걸린 사람의 기분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야마자키 쓰토무와는 7년간 병이 진행되는 과정을 리얼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담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과도한 감정을 담는 것은 피하려고 했다. 대신 영화 속 가족이 진짜 가족처럼 보였으면 해서 배우들끼리 미리 대화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영화에는 없는 장면이지만 쇼헤이가 병에 걸리기 3년 전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며 쇼헤이의 67살 생일 파티를 열었다. 그렇게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한 노력을 했다.

-쇼헤이의 대학 동창 장례식 신과 쇼헤이가 우산 세개를 들고 놀이공원에 가는 신이 인상적이다. 어쩌면 쇼헤이는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 잊고 있던 기억들 틈으로 돌아가는 중이 아닐까 싶었다.

=치매에 걸려도 뇌의 일부만 망가질 뿐 많은 것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기억은 잃어도, 결코 마음을 잃지는 않는 것이다. 그걸 그리기 위해 쇼헤이의 머리가 아닌 마음이 기억하는 장면들을 넣었다.

-실연한 후미를 위로하고, 눈 수술을 마친 요코가 기댈 수 있게 무릎을 내어주는 모습에서 쇼헤이가 여전히 가족들에게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치매 환자로 인해 가족들이 일방적으로 고통만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치매 환자를 간호하는 것은 힘든 일이기에 간병인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이미지가 있다. 이 영화에선 오히려 환자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위로받을 수 있음을 그리고 싶었다. 쇼헤이는 가족을 잊어버리지만 가족의 소중함, 가족을 도우려는 마음은 잊지 않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이 영화에 몇 차례 등장한다. 쇼헤이와 라스트신에서 타카시를 만난 선생님이 이 책을 읽는다. 영화에 이 소설을 등장시킨 이유가 궁금하다.

=독서를 쇼헤이의 상징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쇼헤이가 어떤 책을 읽는 게 좋을지 야마자키 쓰토무와 의논했는데, 나쓰메 소세키가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선생님이 같은 책을 읽는 것은 쇼헤이와 이미지를 겹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손자인 타카시가 더이상 이 세상에 없는 쇼헤이의 모습을 선생님에게서 조금이라도 느꼈으면 했다.

-<캡처링 대디> <행복 목욕탕>에 이어 <조금씩, 천천히 안녕> 또한 가족이 중심이 되는 영화다. 계속해서 가족 이야기로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편모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의미를 많이 고민했다. 내게 가족은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살아 있음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이다. 아버지는 안 계셨지만 행복하게 자랐기 때문에 내 영화가 결국 행복한 가족을 그리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내 창작의 근원인 것 같다.

-가족이 중심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 생각도 있나. 우리가 아는 나카노 료타 감독의 영화와 다른 질감의 시나리오를 구상한 적이 있다면 살짝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

=10월 개봉예정인 신작에서도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가족을 그린다. 앞으로도 기본적으로 가족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 것 같은데 시대적인 사회문제를 포함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전세계가 힘든 상황이라 이것을 주제로 삼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지금’을 반영한 주제를 그리면서, 언어의 벽을 넘어 세계인에게 전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언젠가 다른 나라 영화인들과 합작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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