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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CGV아트하우스상 수상한 '홈리스' 임승현 감독
조현나 사진 백종헌 2020-06-04

시선 밖의 인물들에게 관심을

임승현 감독

“어차피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고운의 대사는 영화 <홈리스>를 날카롭게 관통하는 메시지다. 사기를 당한 한결과 고운 부부는 갓난아기인 우림을 데리고 찜질방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두 사람은 배달 대행 서비스를 하고 전단지를 붙이며 성실하게 살지만, 우림의 병원비를 내기도 막막하다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이들의 삶은 조금씩 일그러져간다. <홈리스>를 연출한 임승현 감독은 한결과 고운이 처한 상황을 두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 지적한다.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누구도 관심주지 않은 문제들, 사각지대로 몰린 채 주저앉은 이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임승현 감독의 시선에 관해 물었다.

임승현 감독

-어떻게 영화 <홈리스>를 기획하게 되었나?

=<홈리스>는 단국대 영화콘텐츠 대학원을 졸업하며 제작한 작품이다. 그동안 나는 공포 영화 위주의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작품을 준비할 때에는 우리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김승현 작가와 뜻을 모았다. 그래서 장르적 분위기는 가져가되 드라마적으로 인물을 따라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했다.

-평소에도 청년들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그렇진 않았다. 원래 영화는 관객들이 체험해보지 못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또 이번 장편 작업을 하면서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홈리스>는 ‘내 집 한 채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만약 내가 결혼을 한다면, 과연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최근의 고민이 담겼다. 어린 시절에 주거 문제로 고생한 경험도 녹아있고. 여기에 독거 노인이셨던 김승현 작가의 이모할머니에 관한 기억을 융합시켰다. 때문에 한결, 고운뿐만 아니라 극중 고독사한 할머니의 이야기도 나와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이야기라 느낀다.

-인물들의 죄책감을 가시화한 요소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할머니의 상황을 알기 전, 후로 김치에 대한 고운의 맛 평가가 달라지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할머니가 직접 담근 김치를 일종의 메타포로 사용하고 싶었다. 할머니의 죽음을 알기 전의 고운에게 김치는 너무나 맛있는 음식인데, 영화 말미에 모든 것을 알게 된 후 김치는 너무 쉬어서 버리고 싶은 음식이 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참고 식사를 이어간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각자의 죄의식, 그리고 그것을 외면하고자 애쓰는 모습을 첫 번째와 마지막 식사 장면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밖에 환청으로 들리는 초인종 소리도 한결이 가진 불안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인물들은 다들 위태롭고 무엇인가 결핍된 상태로 존재한다. 할머니는 주거 관련 문제는 없지만 자신이 가족과 만난 지 오래됐음을 언급한다.

=말씀하신대로 생활적으로는 안정이 됐다 해도 다른 면에 부족함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독거노인의 가장 큰 문제는 무관심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을 영화에 극대화시켜 표현하고 싶었다. 현재 나의 아버지도 혼자 지내시는데, 일전에 아버지를 찾아뵈었더니 집주인이 내 연락처를 물어보더라. 사람 일은 어찌될지 모르니 받아놓겠다는 거다. 그 때 독거노인 문제가 마냥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처럼 내가 겪은, 혹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작품에 최대한 담으려 했다.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특히 사회 복지사의 경우 집까지 찾아왔음에도 한결의 말만 듣고 돌아서버리는데.

=학부 전공이 심리학이라 봉사 활동을 여러 번 다녀왔다. 정말 열심히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존재한다.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단 수요에 비해 일손이 부족하다는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러한 시스템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희생자들이다.

임승현 감독

-연출을 하면서 특별히 염두에 둔 것이 있는가.

=제한을 최소화하는 것에 중점에 뒀다. 배우들에게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대사 외에는 좀 달라져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들이 내가 쓴 텍스트 안에만 머무르지 않길 바랐다. 텍스트는 가이드 역할 정도만 하고, 그 외에는 배우들이 잘 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려 노력했다. 그림이 좀 더 역동적으로 표현됐으면 해서 따로 그림 콘티도 작성하지 않았다. 현장에 가서 배우들과 리허설을 하는 과정을 거쳐 세부적인 디테일들을 바꾸거나 추가했다. 이러한 제작 과정을 거치니 영화의 운동성이 더 살아난 듯해서 만족스럽다.

-배우들의 역할이 중요했겠다.

=맞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여러모로 감사하다. 캐스팅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박정연 배우의 경우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이었던 영화 <유리의 여름>에서 이미 만나본 배우였다. 그가 가진 아우라와 힘이 좋아서 고운이의 단단함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여겼고, 오디션을 본 후 바로 캐스팅을 결정했다. 전봉석 배우는 정말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첫 오디션에서는 빈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였는데, 두 번째 만남에서 머리도 밀고 실제 배달원들의 의상을 다 구해서 입고 왔다. 그렇게 보니 한결과 잘 어울리더다. 우림이는 낯을 가리지 않는 아기를 캐스팅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현서는 만나자마자 내게 먹을 것을 내밀더라. (웃음) 셋이 앉혀놓고 보니 외적으로도 많이 닮았고 진짜 가족 같았다. 더운 여름, 여러모로 힘든 촬영이었는데 애써준 배우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공간이 매우 중요한 영화다. 할머니의 집은 세 가족의 유일한 안식처이지만 한편으론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할머니의 집에서 생활하기 전까지 세 사람은 소음에 둘러 쌓여 살지 않았나. 때문에 침묵에 대한 갈구가 항상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집만큼은 소음이 전혀 없는 공간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사운드 디자인을 할 때도 그 부분에 중점을 뒀다. 요새 같으면서도 감옥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마지막 장면의 커튼 때문일 거다. 거실의 큰 창문에 커튼을 쳐서 누구도 자신들을 보지 못하게끔 가리고픈 한결과 고운의 심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두 사람의 선택에 관해 관객의 의견들이 많이 갈릴 것 같다.

=한결과 고운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시나리오를 쓰며 스스로 고민하던 지점도 두 사람이 도덕적으로 해선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싶었다. 죄책감으로 인해 초인종 환청을 듣거나, 잘못된 액수를 받았을 때 다시 돌려주는 신을 넣은 것도 이들이 본래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행한 일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보이지 않은 어딘가에 분명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비슷한 경험을 했고. 나는 한결과 고운을 안아주고 싶을 만큼 그들이 안쓰럽다. 하지만 이들의 미래는 불투명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도 세 가족의 결말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이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무관심에 대한 공포를 전달하고 싶었다. 빈곤, 주거 문제, 고독사 등의 문제는 도처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다. 어떤 공익적인 효과를 바란다기보다는 관객들이 무관심한 태도에 관해 좀 더 경각심을 가지고, 타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시야가 넓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