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결백' 엄마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애쓰는 딸의 이야기
남선우 2020-06-09

서울 한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 정인(신혜선)은 맡은 일을 깔끔히 해 내면서도 대표에게 “사건 좀 가려 받으라”고 일침을 놓는 유능하고 당당한 여자다. 그런 그에게는 10년이 넘도록 돌아가지 않은 고향 집이 있다. 정인은 자신의 대학 원서를 찢어버릴 정도로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에 굴복해 딸을 달래는 어머니 화자(배종옥)를 견디지 못하고 오래전 홀로 집을 뛰쳐나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을 만큼 잊고 싶었던 고향과 어머니의 모습을, 그는 재판을 마치고 돌아온 사무실에 틀어져 있던 뉴스를 통해 다시 마주한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펼쳐진 집에서 농약이 든 막걸리를 마신 사람들이 쓰러졌고, 어머니 화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다. 하지만 황급히 고향 대천을 향한 정인이 만난 화자는 오랜만에 본 딸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 환자로, 누가 죽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 못하는 상태. 이런 화자가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리 없다고 확신한 정인은 자신이 직접 엄마의 변호인이 되기로 결심한 후 사건 당일 화자와 함께 조문객을 맞은 동생 정수(홍경), 어린 시절 친구이자 경찰이 된 왕용(태항호)의 도움을 받아 재판을 준비한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정인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증거를 모으는 모습을 탐탁지 않아 하며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 배후에 대천시장이자 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추인회(허준호)가 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계속해서 정인을 방해하며, 자기 주변 사람들을 이용해 재판을 쉽게 끝내고자 한다. 그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정인은 추인회의 과거를 파헤치며 점차 이 사건의 뿌리에 다가선다.

박상현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자 배우 신혜선의 첫 스크린 주연작인 <결백>은 농약 막걸리 살인 사건이라는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출발한 영화로, 엄마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애쓰는 딸의 이야기다. 박상현 감독이 제작보고회에서 밝혔듯, “대다수의 추적 장르가 남성 중심의 서사”인 데 반해 <결백>은 “엄마라는 여자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데 차별점”을 둔다. 고립된 시골 마을이라는 공간, 정인이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껏 이어진 부모와 추인회의 시간을 배경으로 영화가 진행될수록 정인은 무죄선고를 받아내기 위해 질주하는 변호인에서 엄마 화자의 진짜 속내를 배워가는 딸로 역할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때 정인에게 부여된 변호사라는 직업과 장녀라는 가족 내 위치는 단순히 한 인물에게 부여된 각각의 설정이라는 점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사건의 진실보다는 재판에 유리하게 작용할 사실을 가려내는 일에 더 관심을 둬야 하는 변호사로서의 임무는 엄마가 숨겨온 과거로부터 어떻게든 그의 알리바이를 발견해주고 보호해내려는 딸의 마음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결말에 다가갈수록 모녀 사이에서만 공유될 수 있는 저릿한 회한이 강조되고, 그로부터 관객을 자극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데, 감정을 고조시키고자 늘어지는 전개와 음악이 못내 아쉽지만 그러한 관계 설정과 서사가 겨냥한 대상은 분명 흥미롭다. <결백>의 인물 구도는 고향을 떠났던 여자가 엄마를 구하기 위해 돌아와 낡고 부패한 남성 사회를 심판하는 모습이다. 화자와 정인 모녀가 맞서는 대상은 주로 추인회를 필두로 한 마을 남성들, 즉 아버지의 고향 친구들이다. 죽은 아버지의 방 벽에 붙어 있는 속옷 바람의 친구들 사진이 대천시에 있는 이 좁은 마을의 남성 집단을 대표한다. 이 사진은 정인이 화자의 기억을 이끌어내고자 활용하는 물건으로, 영화에 몇 차례 등장하며 그들의 볼품없는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결백>은 정인의 조력자로 정수와 왕용이라는 젊은 남성들을 내세워 아버지 무리와 대비되는 성향의 남성들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데, 배우 홍경과 태항호가 제 몫을 해내는 것과 별개로 남성 인물들 틈에서 분투하는 정인을 연기한 신혜선의 존재감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CHECK POINT

다시 법정에 선 신혜선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아버지의 결백을 주장해야 했던 수습검사 영은수 역으로 법정에 섰던 배우 신혜선이 <결백>에서는 엄마의 변호를 맡게 된 에이스 변호사 안정인 역으로 다시 법정에서 연기를 펼친다. 박상현 감독도 전작을 참고해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치매 노인으로 분한 배종옥

배우 배종옥은 2시간이 넘는 특수분장을 거쳐 오래도록 시골에 산 치매 노인이 되었다. 모녀가 오랜만에 만난 상황인 만큼 딸 역의 신혜선 배우는 분장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 처음 분장이 완료된 모습을 본 신혜선 배우는 작고 나이든 엄마의 모습에 울컥했다고.

비밀의 공간, 고향 집

영화 초반 아버지의 장례식을 시작으로 막걸리 소동이 펼쳐지는 무대이자 사건의 비밀을 품은 고향 집은 박상현 감독이 로케이션 헌팅에 가장 공을 들인 장소다. “아버지의 흥망성쇠가 다 표현된” 공간을 보여주는 게 목표였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