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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엽 편집장] 여성 서사, 경계를 넓히다
장영엽 2020-06-12

<결백>이 개봉하는 날 극장을 찾았다. 언론시사 일정이 <씨네21> 마감과 겹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6월부터 극장에 본격적으로 출사표를 던진 한국 상업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궁금했다.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멀티플렉스 극장 로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 6월 4일 시작된 영화 입장료 6천원 할인 행사의 영향 때문일까 짐작했으나, 앞서 개봉한 <침입자>의 경우 할인권을 적용한 좌석 판매율이 10% 남짓이었다는 이번호 기사를 보니(더 자세한 내용은 ‘김성훈의 뉴스타래’에 소개했다) 할인권 사업보다는 한국영화 신작에 대한 기대감이 관객의 발걸음을 극장으로 향하게 한 듯싶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6월 초 개봉작의 성적은 향후 개봉을 준비 중인 영화의 배급 타이밍을 결정할 지표로 작용하리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어렵게 여름 영화시장의 선봉대에 선 한국영화들이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6월 초 개봉작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여성’이라는 키워드와 마주하게 된다. 코로나19 이후 가장 먼저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인 <침입자>부터 배종옥, 신혜선 배우가 모녀지간을 연기하는 <결백>, 얼마 전 1만 관객을 돌파한 <프랑스여자>와 이주영 배우의 호연이 인상적인 <야구소녀>까지, 최근 화제가 된 한국영화에는 여성 캐릭터의 강력한 존재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해 <벌새> <82년생 김지영> <아워 바디> <우리집> 등 여성 서사 열풍을 이끌었던 일련의 영화들이 한때의 반짝 열풍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질 기조와 흐름을 형성했음을 알리는 의미 있는 지표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해 등장한 여성 중심 서사 영화들이 오랫동안 타자화되거나 간과되었던 여성의 사적인 삶을 조명하며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일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면, 올해의 여성 서사 영화들은 보다 공적인 무대와 복잡한 딜레마 속에 주인공을 놓아둔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고향을 떠나 있던 장녀가 유능한 변호사가 되어 돌아와 고향 유지들을 오로지 실력으로 상대한다는 <결백>의 서사는 그동안 여자배우들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던 방식의 이야기이며, 한국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야구소녀>의 주인공이 돌파해야 할 난관은 ‘최초’라는 단어의 무게감만큼이나 고되다. <프랑스여자>가 제기하는 세대와 정체성의 문제는 여성 서사의 경계를 확장하는 데 이바지하며, 집안의 가장인 오빠의 자리를 야심만만하게 점거하는 <침입자>의 주인공은 가부장제의 악몽과도 같은 역할로 스릴러 장르에 불안정한 균열을 낸다. 관심사와 장르는 제각각이지만,한국 사회가 여성에 기대하거나 바라는 바를 보기 좋게 배반하는 이들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 최근의 한국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다만 이러한 여성 중심 서사 영화들이 누구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가장 불안정한 시기에 극장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는 점은 씁쓸한 시사점을 남긴다. 한계를 시험하고 경계를 탈주하는 여성 캐릭터를 극성수기에 개봉하는 한국 블록버스터영화에서 보게 될 날이 요원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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