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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 현지화? 오마주?

시작부터 비슷한 영화를 지목당하는 드라마를 좋은 시선으로 보긴 어렵다. MBC 8부작 <십시일반> 이야기다. 저택에서 일어난 부유한 노인의 미심쩍은 죽음, 유언장과 상속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해관계를 서술하는 방식이 반년 전 개봉한 <나이브스 아웃>(2019)을 떠올리게한다는 지적이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개봉한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 원작의 <비뚤어진 집>(2017)과도 닮았다. 하지만 미스터리 장르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고 변주된 설정을 두고 표절을 언급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위 두 영화 사이에서도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사망한 노인이 매일 쓰는 약물이 바뀌어 사고를 당하는 설정이 그렇고, 대가족이 식탁에서 우아한 언어로 서로를 헐뜯는 <비뚤어진 집>의 영국식 독설은 미국 배경 <나이브스 아웃>에서는 ‘똥이나 먹으라’라는 식의 난장판 대화로 다시 쓰인다. 계보를 그리고 인용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면서도 새롭게 놀라길 원하는 이들이 미스터리 애호가들이다.

한 사람에게 모든 재산을 넘기는 유언장이 효력을 갖는 영미권 추리물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해봤자 현실에선 민법이 걸림돌이 된다. 상속에서 배제된 법정상속인이 제 몫을 요구하는 유류분청구소송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십시일반>은 걸림돌을 지형지물로 삼는 현지화를 시도한다. 평소 혈연 구분 없이 누구든 자신의 마음에 들어야 상속을 하겠다며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던 노 화백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재산을 분배하는 유언장은 사라진 상황. 드라마 인물관계도를 법에서 정한 상속순위로 다시 보면 새로운 풍경이 드러난다. 1순위 상속인이 없어야 상속을 받을 수 있거나 유류분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보이고, 화백이 생전에 자주 유언장 언급을 하던 것도 1순위 상속인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의 목숨을 지키려 한 게 아닐까 추측도 해본다. <십시일반>은 위 두 영화와 달리 사립탐정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식 유산 분쟁의 전모를 밝히는 데는 변호사가 훨씬 유능할 테니까

VIEWPOINT

익명 편지

<십시일반> 오프닝에는 잡지 등에서 오린 글씨를 핀셋으로 정성스럽게 붙여 익명 편지를 만드는 장면이 있다. 극중 인물들에게 이 편지가 배달된다. 오려붙인 익명 편지는 코넌 도일의 소설 <바스커빌가의 개>가 원조. 홈스는 단어를 오린 신문과 오린 도구까지 낱낱이 추리해냈다. 한편 SBS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는 72포인트 엽서체로 불륜을 협박하는 메시지를 프린트해보내기도 했다. ransomizer.com을 이용하면 손수 오려붙이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 익명 편지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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