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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8 스페셜] 민규동 '간호중' X 김의석 '인간증명' X 한가람 '블링크' - 안드로이드를 영화적인 존재로 해석했다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20-08-25

김의석, 민규동, 한가람(왼쪽부터).

<간호중> <인간증명> <블링크>는 모두 AI(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를 소재로 한다. 민규동 감독의 <간호중>은 10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환자와 돌봄노동에 지친 보호자(이유영) 중 누구를 살려야 할지 고민에 빠지는 간병로봇 이야기이고, <죄많은 소녀>의 김의석 감독이 만든 <인간증명>은 엄마 혜라(문소리)가 아들의 뇌 일부를 이식해 소생시킨 인공지능이 결국 아들의 영혼을 소멸시켰다는 의심을 하고 소송을 벌이는 이야기이며, <아워 바디>의 한가람 감독이 만든 <블링크>는 형사 지우(이시영)가 자신의 뇌 속에 인공지능 파트너 서낭(하준)을 들이면서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의 대표이자 <SF8>의 총괄 기획자인 민규동 감독은 이제 막 두 번째 작품을 내놓는 김의석, 한가람 감독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며 <인간증명>과 <블링크>의 매력까지 꼼꼼히 짚어주었다.

-어떤 기대와 목표를 가지고 <SF8>에 합류했나.

민규동 많은 감독들이 SF에 대한 기본적 욕망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의 대표로서 어떻게 하면 그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차에 MBC 전 사장이자 <자백> <공범자들>을 만든 최승호 감독과 감독조합의 큰 자산인 감독들과 무언가 함께해보자고 했던 게 프로젝트의 작은 맹아가 됐다.

김의석 상업적인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플랫폼에서도 내가 통하는지 시험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았다.

한가람 나 역시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 한편을 갓 만든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런 제안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런데 장르영화를 만든 경험이 없기 때문에 <SF8>은 내게 꽤나 도전적인 일이었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제대로 작품을 완성하는게 목표였다. 장르영화 속성 코스를 밟는 기분이었다. (웃음)

-모두 SF는 처음이다.

한가람 어릴 때부터 거대한 상상력이 동원된 할리우드 SF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고, 무엇보다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블랙 미러>를 열심히 챙겨보면서 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창작의 재미, 즉 SF영화를 만들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김의석 SF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SF8>은 방송과 OTT를 통해 공개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 게다가 쉽게 도전하기 힘든 SF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였다. 기본적으로 SF는 사색적 질문을 던지는 장르라 생각한다. 그런 장르적 속성에 내 아이덴티티를 녹여내고 싶었다.

민규동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로 데뷔하기 전에 쓴 시나리오가 SF였다. 어릴 때부터 <스타워즈> 시리즈를 좋아했다. 문과의삶을 살았지만 원래 과학도였고, SF를 막연히 꿈꿨다. 하지만 한국에서 SF는 거대 자본을 가진 할리우드가 독점해온 장르라는 인식, 한국적 인물과 공간이 SF랑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굳건해 창작자로선 답답함과 갈증이 늘 있었다.

-<인간증명>은 <독립의 오단계>, <간호중>은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블링크>는 소설집 <우리가 추방된 세계>에 수록된 <백중>이 원작소설이다.

김의석 원작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지만 설정은 꽤 바뀌었다. 사람들이 원작 소설이나 SF 장르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겠지만,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옛날 SF 같은, 비주얼로 압도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접근법을 고민했다. 안드로이드의 존재를 발전된 미래 사회의 모습으로 구현하는 대신, 영화적인 존재로 요리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민규동 김의석 감독이 각색한 <인간증명>의 시나리오를 읽고 김의석 감독만의 깊은 사유가 느껴지는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발 하라리의 두꺼운 책보다 더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나리오였다. 비주얼의 신세계가 주는 매력도 있지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처럼 많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였다.

한가람 원작에서 인공지능의 존재를 한국적으로 잘 풀었지만, 10년쯤 전에 쓰인 소설이라 인공지능이 지나치게 낯선 존재로 그려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시대엔 인공지능이 낯설기만 한 존재가 아니기도 하고, 형사와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희망적 결론을 도출하고 싶었다.

민규동 <블링크>는 8편 중 제일 상업적인 작품인데, 원작과 감독이 가장 매칭이 안되는 조합이기도 했다. (웃음) 한가람 감독이 <아워 바디>로 ‘나의 길은 이 길이야’ 하고 자기 확신을 가지던 때 ‘아니야, 그 길이 아니야’라며 장르적 재미가 분명한 상업영화 문법의 콘텐츠를 제안한 거다. 버디무비로서의 재미에 시각적 쾌감과 액션 스릴러물로서 의 대중적 재미를 두루 갖춘 작품이라, 곧 (한가람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이 가시화되지 않을까 싶다. (웃음)

-<간호중>은 어떻게 선택한 작품인가.

민규동 <간호중>은 드라마적 성격이 강하다. 돌봄노동과 존엄사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배우들의 평균 연령대도 60대로 높은 편이다. 원작은 신부와 남자 보호자의 이야기인데, 각색하면서 수녀와 여자 보호자 이야기로 바꿨다. 돌봄노동의 짐을 대부분 여성이 짊어지고 남자들은 간병 일에서 도망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현실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

-세편 모두 인간을 닮은, 인간과 교감하는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 로봇과 인간 사이 교감이 가능하다고 보나.

민규동 우선 세편 모두 AI 카테고리로 묶이지만 저마다 안드로이드의 형태나 던지는 질문은 다르다. <인간증명>에는 인간의 뇌와 기계가 결합된 안드로이드가 등장하고, <블링크>는 인간의 뇌에 AI가 들어온다. <간호중>은 AI가 인간의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고통 경감을 위해 일하는 간병 로봇이 인간의 고통을 알게 되는 순간을 말하는 작품이다. AI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할 수 있고 다양하게 인간의 삶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세 작품이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한가람 AI 관련 기술이 이미 우리 삶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고 앞으로 더 많이 들어올 거라 생각한다. 기술이 발전하면 AI는 더 사람 같아질 테고, 그러면 정말 감정적 교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그녀>처럼. <블링크>에선 인공지능과 형사가 짝을 이뤄 사건을 해결하는데, 인공지능 파트너와 헤어지고 싶을지 계속 같이하고 싶을지 고민했을 때 인간과 AI의 긍정적 협업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김의석 <인간증명>은 ‘교감할 수 있나?’ 그 질문을 질문하는 작품이다. 아들의 뇌 일부를 이식해서 만든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데, 그것 자체가 애도나 추모의 과정을 회피하려는 엄마의 이기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안드로이드와의 교감은 굉장히 SF적인 질문이고, 그 질문의 답을 관객이 찾아주셨으면 좋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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