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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김미례 감독 - 평온한 현재에도 균열은 필요하다
조현나 사진 최성열 2020-08-27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1970년대, 전쟁에 대한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하고 대가를 치를 것을 경고하며 등장한 무장투쟁그룹이다. 이들은 1974년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빌딩을 시작으로 미쓰이물산, 대성건설 본사 등을 차례로 공격하며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전작 <노가다>(2005)를 촬영하며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존재를 알게 된 김미례 감독은 이들의 40여년 역사를 세심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테러리스트 집단으로만 규정하는 일본과 달리, 김미례 감독은 연쇄 폭발 사건과 전쟁의 과오에 관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단원들을 더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국, 일본 관객과의 만남을 앞둔 김미례 감독은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 “해당 단체의 역사를 알리고, 나아가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지적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존재를 알게 된 후 2014년 촬영에 돌입하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가 궁금한데.

=처음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내가 그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민감한 주제인만큼 일본에서 다뤄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 후 2014년에 큰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가 다시 70, 80년대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국가의 폭력성에 관한 질문을 갖게 됐고 이 작품이 그 질문의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시작하게 됐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단원들의 섭외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고.

=처음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제안한 이들도 내게 의구심을 가졌던 것 같다. 첫 제안을 내가 거절했던 셈이니까. 하지만 이 작품을 하겠다고 몇달 버티니 차츰 도와주기 시작하더라. 하지만 곧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일부 단원들이 복역 중이라는 문제에 부딪혔다. 에키타 유키코는 2017년 출소해 만날 수 있었지만 다이도지 마사시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해 끝내 만나지 못했다.

-다이도지 마사시는 영화에 등장하진 않지만, 내레이션으로 삽입된 그의 옥중서간집 <새벽 별을 바라보며>를 통해 그의 심정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가해자의 입장에서 자기 스스로를 겸손히 되돌아보는 그의 성찰, 그 속의 고통과 아픔이 굉장히 와닿더라. 그의 옥중에서의 생각들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고 그렇게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는 의지를 더욱 다질 수 있었다.

-미쓰비시중공업 빌딩 폭발 사건에 관해 이야기할 때 안개 속의 한 다리를 조명하고 이후에도 안개에 싸인 도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와 같은 연출의 의도에 관해 말해준다면.

=그 다리는 홋카이도 지방의 도시 구시로에 있는 폐광의 일부다. 여기에 조선인, 중국인 등이 강제 연행돼서 노동을 한 역사가 있고, 또다이도지 마사시의 고향으로 그의 문제의식이 시작된 지점이기에 여러 차례 영화에 등장시켰다. 구시로는 실제로 안개가 자주 끼는 도시인데 그 모습이 마치 뭔가를 선명하게 밝히고 싶어 하는 우리의 상황과도 유사하게 느껴지더라.

-홋카이도 지방 촬영에 관해선 박홍열 촬영감독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사실 나는 <구시로의 영혼>이라는 그림 한장만 보여줬다. 인력거 시장의 한 떠돌이 화가에게서 구입한 것인데, 이 그림을 보여주며 “안개 때문에 마치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듯한 풍경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다이도지 마사시를 면회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대신 그의 고향에 가서 그의 시작점을 가늠해보려 한다는 점도 강조했고. 박홍열 촬영감독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여길 왔고 무엇을 찾고 있는지,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시로를 돌아다니며 우연히 마주한 것들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촬영했다. 틀을 벗어난 박홍열 촬영감독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단원들에 대한 일본의 태도에 무척 놀랐다. 소속 단원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낙인과 다름없더라.

=70년대는 일본이 엄청난 부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우익 집단이 권력을 쥔 상황에서 전쟁의 과오를 책임지라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외침이 달갑게 들릴 리 없었다. 악마화되고 배척당하는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뭔가를 시도하는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알면 알수록 더 깊이 감정이입됐다.

-그런 상황에서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힘들었겠다.

=그게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다. 사실 더 적극적으로 이들 편에 서기 어려웠던 이유는 연쇄 폭발 사건들의 사상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희생자의 유족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최대한 건조한 태도로 경계 지점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려 노력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미화하지도 무조건 비판하지도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역할이 꽤 중요해 보인다.

=<NHK>에서 <테러리스트 40년, 그 후>란 제목으로 국가가 이들의 테러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스릴러 형식으로 편집해 보여주더라. 일본 사회에서 이들을 얼마나 흉악한 테러리스트로만 기억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대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해당 단체의 역사를 알리는 데 집중한다. 나아가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 역시 함께 지적하고. 일본 관객에게는 이들이 어떤 의도에서 출발한 단체인지 알리고, 또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한국 관객에게는 이들을 소개하는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학자 오타 마사쿠니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후로 평온함에 젖어 과거를 보지 않으려는 태도”를 전면적으로 지적하는 역할도 담당하는 작품일 테다.

=2014년의 한국 사회를 보면서 과거 민주화를 위해 힘들게 싸우고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는데 왜 다시 그때로 회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만들면서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을 들추고, 직면한 문제에 관해 깊이 들여다보는 태도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현재의 평온에 균열을 내는 게 사실 말처럼 쉽지 않다. 원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 테고. 하지만 그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현재도 다각도로 고민하고있다.

-<노동자다 아니다> <노가다> <외박> 등 주로 노동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다뤄왔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역시 일본 노동운동의 전신이고. 이처럼 ‘노동하는 인간’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버지가 일용직 노동자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여러 현장들을 경험하며 내가 보지 못한 지점들이 눈에 들어왔고, 또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점차 관심이 이어졌다. 지금 사회가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아카이빙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차기작도 지금까지 그래왔듯 전작들과 맥락이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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