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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⑦] '테넷'이 겨냥한 영화적 시간의 새 영역

하나의 장(場) 두개의 화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비 갠 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북극성이 환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면 의심할 것이다. 저 별은 ‘지금’ 떠 있는 별일까? 북극성은 지구로부터 약 800광년 떨어져 있다. 미래의 누군가가 토성 근처에 웜홀이라도 열어주면 모를까, 빛의 속도로 800년을 날아가야 그곳에 닿을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본 북극성의 빛은 칭기즈칸이 대륙을 호령하며 고려를 침략했을 즈음 반짝였던 그것이다. 현재의 북극성은 8세기 후 미래에나 볼 수 있다. 다시 질문. 저 별은 지금 떠 있는 별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우리는 과거의 빛을 보고 있으며, 북극성은 현재 찬란히 빛나고 있으니까. <테넷>에서 ‘미래의 그’이기도 하고 ‘현재의 주도자’이기도 한 동일 인물이 한 화면 안에서 격투를 벌이는 것처럼.

<테넷>을 논하기 위해서는 현대물리학이 밝힌 우주의 법칙을 조금 길게 말해야만 한다. 좀더 원론으로 들어가 미분해보자. 지금 내 눈앞에 앉아 있는 동료 K는 현재의 K인가? 내 눈에서 K까지 빛이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는데? 내가 본 K는 10의 수십승 분의 1초 전에 존재한 과거의 K다. 사이가 존재하는 한 동일한 현재란 없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교집합 비중이 큰 현재가 중첩돼 있을 뿐이다.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아인슈타인 이후 현대물리학이 정리한 바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놀란 감독이 지난 20여년 간 파고든 테마이기도 하다. 중첩된 현재를 갖는 세상 만물에는 모두 사이가 있다. 심지어 물질의 최소 입자인 원자 안에도 사이가 있다. “서울시만 한 원자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부산에서부터 원자를 향해 접근한다면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전자다. 농구공 크기의 원자핵은 사대문 안까지 들어가야만 볼 수 있다.”(김상욱, <김상욱의 양자 공부>) 농구공만 한 원자핵이 용산에 있다면 전자는 서울외곽순환도로쯤을 달리고 있고, 그 사이는 텅 비어 있다는 뜻이다(이 사이를 열심히 좁히면 사람을 개미 크기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앤트맨>의 그럴싸한 착안이다). 우주는 아주 적은 물질과 지극히 많은 사이들로 구성돼있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이렇게 썼다.

사막 - 이문재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사이의 차이

산술적으로만 봐도, 모래알이 100개 있을 경우 1번 모래알은 다른 99개 모래알들과 각각 사이를 가질 것이다. 2번 모래알, 3번 모래알… 100번 모래알까지 모두 각자의 사이를 99개씩 지닐 것이다. 그러므로 모래알의 존재만을 파악하는 일은 덧셈만으로 가능하지만, 그들의 관계를 보는 것은 곱셈의 영역이 될 것이다. 한발 나아가 수많은 사이들이 맺고 있는 사이를 떠올려보자. 사이들의 사이, 그 사이들의 사이들의 사이…. 꿈속의 꿈속의 꿈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영화 <인셉션>(2010)이 들여다보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영화에 편집이 도입된 이래 우리는 수많은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각자의 상상을 품어오지 않았던가. 놀란 감독은 데뷔작 <미행>(1998)과 출세작 <메멘토>(2000)에서 시간 순서를 뒤섞으며 전에 없이 새로운 ‘영화적 사이’를 만들어냈다. 관객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흥미진진한 방황을 해야 했다. <인썸니아>(2002)의 인물들은 낮과 밤 사이에서 대칭과 비대칭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갔으며, 이는 <다크 나이트> 3부작에서 선과 악의 데칼코마니로 이어졌다. 시간들의 상대적 차이는 <인셉션>에서 “현실에서 5분이 꿈속에선 1시간”이 되었고 설원에서의 총격전을 더없이 애타게 만들었다. <인터스텔라>(2014)에선 “(밀러 행성의) 1시간이 지구에선 7년”이 되어 장성한 자녀의 영상편지를 눈물 없이는 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테넷>에서는 기어이 시간의 화살을 서로 반대쪽으로 쏘아올린 다음 이를 한 과녁에 모아 시간의 상대성을 동기화한다. 마치 사막을 걷는 낙타가 모래알들을 밟아 그 사이를 모조리 재편했는데, 10의 수십승 분의 1의 확률로 완벽하게 균형잡힌 새 질서를 구축한 것처럼 말이다.

<테넷>에서 가장 압도적인 요소는 두말할 필요 없이 시간을 역행하는 움직임과 순행하는 운동이 하나의 장(場, field)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이다. 빅뱅 이후 우주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무질서한 정도가 커지는) 방향으로 나아감에 따라, 인간은 엔트로피가 적은 쪽(과거)에서 많아지는 쪽(미래)을 향해 시간 흐름을 느낀다(인간 따위가 제아무리 거대한 토목공사를 벌여 ‘질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축물을 짓는다 해도 거기에 투입된 원료와 에너지는 이전 상태의 균형을 잃었으므로 우주적 관점에서 무질서한 정도가 티끌만큼 커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이, 아인슈타인 이후에도, ‘시간은 실재한다기보다 인간의 심리를 반영하는 상태’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은 인간 지성의 자유로운 창작물”이라고도 했다. 따라서 엔트로피의 방향을 바꾸면, 즉 우주가 팽창하는 대신 빅뱅의 순간을 향해 수축해간다면 인간도 과거를 향할 것이며, 미래를 ‘기억’할 것이라는 가설이 가능해진다.

이를 설명하는 교재로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가 적절해 보인다(SF적 상상에 스스로 묻고 답한 내용이 많은 저서다). “물이 담긴 찻잔이 탁자 위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만약 당신이 그 장면을 촬영해 필름을 거꾸로 돌리게 되면 부서진 찻잔 조각들이 갑자기 한데 모여 완벽한 찻잔 모양을 이루며 바닥에서 솟아올라 탁자 위로 올라앉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이 사람들이 거꾸로 된 심리적 시간의 화살을 가진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즉 그들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미래의 사건들을 기억할 것이다. 찻잔이 깨지면, 그들은 그 찻잔이 탁자 위에 놓여질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찻잔이 탁자 위에 있을 때, 그들은 그 찻잔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라는 은하계에 새로 열린 웜홀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스티븐 호킹이 ‘시간의 화살’을 설명한 이 대목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2016)를 떠오르게 하는 동시에 <테넷>의 ‘인버전’ 기술에 대한 해설로도 유용하다(물론 호킹은 “우주는 앞으로 최소한 100억년 동안은 수축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블랙홀 근처에 가면 우주의 수축 단계와 비슷한 환경에 놓여 엔트로피가 거꾸로 향하고, 따라서 미래를 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블랙홀 주변에서 사라질 것이라고한다. 영화에선 엔트로피를 역행하는 기술이 개발돼 이를 활용한 미래 세력과 중간 브로커 사토르(케네스 브래너)가 현재를 공격한다. 여기까지는 현대물리학에 바탕한 교양서적 몇권쯤 읽은 SF작가라면 쉽게 내놓을 수 있는 상상이다. 캣(Kat, 엘리자베스 데비키)과 맥스(Max, 로리 셰퍼드) 모자의 작명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cat)와 맥스웰(Maxwell) 방정식을 연상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테넷>의 돋보이는 영화사적 의의는, 누가 뭐래도 각기 다른 방향의 시간 흐름을 하나의 숏 안에 담아 관객을 설득한 성취에 있다. 이제는 현대영화에서 흔해진 ‘합성 롱테이크’들이 편집을 대신해 운동 사이의 충돌을 단일 숏 안에서 포착한다면, <테넷>은 영화예술의 영원한 화두인 시간의 충돌을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만나도록 깍지 끼운 다음 한 화면에 담아냈다. 닿을 수 없던 머나먼 사이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휘어지며 통로가 생긴 것처럼, 나는 놀란 감독의 이번 시도를 영화라는 은하계에 새로 열린 웜홀이라 감히 부르고 싶다.

시간은 기억을 만들고 기억은 시간을 규정한다. 기억이 없다면 절대 시간도 무의미함을 우리는 <메멘토>에서 배운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은“기억은 시간의 기원”이라고도 했다. 극 전반부에 시간 순방향으로 움직이는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가 역방향으로 운동하는 인버전 요원과 격투를 벌일 때, 한 사람은 과거를 기억하고 다른 한 사람은 미래를 기억한다. 이전에 인류가 보지 못했던 이 장면의 운동성은, 순방향과 역방향 재생의 단순한 합성이 아니다. 태양이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발딛고 있는 땅이 움직이고 있음을 자각해야 하는 것처럼, 시간 방향이 다른 데서 기인한 ‘운동의 상대성’을 몸이 기억해야 가능한 싸움이다. 또한 사람이 새로운 것을 접하고 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기억이 생기며, 이 기억의 흐름 자체가 곧 시간의 방향이라는 점에서 이들 둘(사실은 한 사람)의 몸싸움은 시간의 충돌을 영화적으로 바꾼 것이기도 하다. 극중 인버전된 상태에서 곧바로 운전대를 잡는 등 주인공이 초인적인 운동신경의 소유자라는 설정이겠으나(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데 자전거를 탄다고 상상해보라), 코페르니쿠스적 안무 디자인이 아니고서는 이처럼 설득력 있는 ‘실시간 인버터 격투’ 장면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첩보 장르로서 이 영화에서 인물들이 확보해야 할 물건을 찾을 때 ‘어디에’가 아닌 ‘언제’가 관건이 되는 지점 또한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 취급하던 기존 영화들의 관습에 현대물리학의 세례를 새로이 전하는 대목이다. 종반부 대규모 침투 작전 장면에서는 순방향팀과 역방향팀이 ‘협공’을 펼치는데, 이 또한 양방향 움직임을 덧셈한 합성이 아니라 곱셈을 동원한 액션 디자인이어서 시시각각 흥미롭다. 시간 방향이 다른 대원들의 사이, 10분이라는 작전 시간 사이, 건물이 폭파되었다 되살아나는 찰나의 차이, 캣이 시간을 끌며 남편을 죽일 순간을 노리는 사이, 이때 현재-미래 사이의 브로커 위치와 작전 현장의 공간적 차이가, 한 시퀀스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숨가쁘게 교차한다. 사막에 모래보다 사이가 더 많다는 진리를 가장 복잡하고도 박진감 넘치게 담는 영화적 방식이 아니었나 싶다.

관계론적 유니버스

놀란 감독은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아는 작가다. 비가역적 시간에 대한 그의 천착은 과거에 영향 주는 미래를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인셉션>에서는 꿈을 파고들어 이를 실현시킨다. 마치 에셔의 그림 <그리는 손>처럼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순환하며 기억을 심는다. 이 방식은 <인터스텔라>에서 미래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설정으로 이어졌다. <테넷>에서는 인버전 장치인 회전문을 통해 순환을 형상화하는 한편 역시나 미래의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과 만나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한다. 이 글의 전반부에 장황하게 이야기한 ‘사이’에 대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연기(緣起)는 이론물리학과 함께 ‘놀란 유니버스’를 구성하는 정신적 지주다. 존재는 다른 존재와의 관계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며 현재 또한 과거와 미래 사이에 놓인 찰나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인셉션>에선 일본이, <테넷>에선 인도가 주요 배경 중 하나로 등장하는데, <인터스텔라>와 함께 이 세 영화들은 윤회(輪廻)의 각기 다른 형태를 결말부에 담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인터스텔라>의 윤회적 구도를 언급하면서 “인도 사상에 오랜 관심을 보여온 놀란 감독이 우파니샤드의 핵심 개념을 가져왔다”고 쓰기도 했다. 쿠퍼(매튜 매커너헤이)가 블랙홀에 들어갔을 때 등장하는 ‘무한 도서관’ 디자인은 불교에서 연기에 의한 상호작용을 뜻하는 ‘인드라의 그물’을 형상화한 것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그 아득한 시간을 느끼고 있자면 불교에서 말하는 겁(劫)의 세월을 떠올리는 일 또한 자연스럽다(‘겁’은 100년에 한번씩 비단으로 바위를 쓰다듬어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기까지의 시간이다). 장자의 ‘호접몽’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인셉션>의 구조를 보고 있자면, 이 세계를 독자적인 존재가 아닌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동양적 기운이 <테넷>에도 흐르고 있음을 떠올릴 수 있다. 일종의 테스트 격인 프롤로그 작전에서부터 케이퍼 무비 형식이 돋보이는 전반부, 신비로운 장치를 통해 극중 핵심 작전을 수행하는 중반부, 자꾸만 틈입하는 기억(미래), 정해진 시간 안에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막판 대규모 전투 장면에 이르기까지 <테넷>은 <인셉션>과 형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정보의 양이 <인셉션> 이후 10년이라는 기간만큼이나 압도적으로 늘어 몇배는 더 어려워졌다는 점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리학자를 괴롭히고 싶다면 시간이란 무엇인지 물어보라’는 말이 있다. 이제 영화 전문가를 고통의 나락에 빠뜨리고 싶다면 <테넷>을 해설해보라고 하면 될 것이다. 모든 예술에 그런 경향이 있지만, <테넷>은 정답 맞히기 입시교육에서 서사예술을 대하는 방식과는 가장 거리가 먼 태도로 봐야 할 영화다. 하지만 “이해하려 들지 마. 느껴”라는 말은 이 영화에 관한 한 무책임한 주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셉션>의 대사 “기억에 의존하지 말고 상상을 동원”하라는 말이 조금은 더 책임감 있어 보인다. 가능하다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물리학자와, 이론물리학의 기초지식이 있는 동양사상가가 이들을 코디네이팅할 수 있는 영화 전문가의 진행으로 토론을 벌인다면, <테넷>은 한결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P.S. 54일이라는 역대 최장기간의 장마 뒤 편법 주말 개봉한 이 영화를, 코로나19 2차 대유행의 문턱에서 KF94 마스크를 쓰고 관람했다. 주인공의 인버전 상황에 조금이나마 이입됐다면 긍정적일까. 극중 인버전 기술을 지닌 미래 세력이 현재의 인간을 말살하려는 까닭은 <인터스텔라>에서 인류가 지구를 떠나려는 이유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설정돼 있다. 인간이 야생을 훼손하는 과정에서 얻은 신종 바이러스와, 대책 없이 더워진 시베리아기단이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붙들어둔 한반도 장마전선은 미래 세대의 생태 재난이 발등의 불로 다가왔음을 알렸다. 이 영화의 비범한 관람 기억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외연의 항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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