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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정지혜·황미요조 프로그래머 - 여성영화, 급진적 질문과 격렬한 논쟁이 필요한 때
남선우 사진 백종헌 2020-09-14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황미요조, 정지혜 프로그래머(왼쪽부터).

여성 인물과 서사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한 지금.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관심과 담론이 모일 장을 꾸리는 한편 코로나19라는 복병과도 맞서야 했다. 이에 온오프라인 개최를 병행하게 된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9월 10일(목)부터 16일(수)까지 인디스페이스,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해 OTT 플랫폼 웨이브, 유튜브, 네이버TV, 줌으로 관객을 만난다. 극장과 웨이브에서는 영화를 감상하고, 라이브 방송이 가능한 플랫폼에서는 창작자들과 관객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영화제를 준비한 정지혜, 황미요조 프로그래머에게 그 과정과 의의를 물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초유의 상황에서 영화제를 준비했다. 어떤 마음가짐이었나.

정지혜 극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안전하게 영화제를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극장에서 작품을 상영하고 온라인에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준비해나갔는데, 고민을 이르게 시작해 발 빠르게 프로그램을 채울 수 있었다.

황미요조 영화를 볼 수 있는 창구가 다양해지면서 많은 돈과 인력이 들어가는 영화제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 잠복해 있었다. 올해야말로 영화제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해인 것 같다.

-인디스페이스,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상영을 이어가는 한편 웨이브, 유튜브, 네이버TV, 줌 등을 모두 활용하는 영화제가 되었다.

정지혜 개막작과 아시아 단편 섹션 일부를 상영할 웨이브의 경우 영화제가 지향하는 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뜻을 모아줬다. 토크 프로그램을 업로드할 유튜브와 네이버TV는 관객의 접근성을 고려한 결과다.

황미요조 영화제가 온라인 플랫폼 활용에 있어서 가진 원칙은 감독과 배급사가 원하는 바를 모두 듣고 반영하는 것이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혼란 외에도 상영관으로 발표한 서울아트시네마의 대관을 취소하고, 지난해 영화제 자원활동가 피해 사건에 대한 <한국일보> 보도에 반박하는 등 이슈가 있었다.

황미요조 두 사건 모두 하나의 견해만이 도덕적이고 원칙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일이라 느낀다. 그럼에도 긍정할 수 있는 부분은, 영화제가 관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떠한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정지혜 영화제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입장문도 참고해주었으면 한다. 페미니즘 리부트를 통과하며 영화제 차원에서 고민이 끊이질 않는데, 영화제가 앞으로도 가장 근본적이면서 급진적인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논쟁과 격론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놀랍고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작품 공모로 만들어진 개막작 <여성 영화인 지원 프로젝트: 코로나 시대, 서로를 보다> 이야기다. 1분 내외의 영상 50편을 모집했는데, 지원 폭주로 공모 2일 만에 조기 마감되었다. 폭발적인 반응을 예상했나.

정지혜 예상은 했는데, 이에 대해 양면적으로 느끼고 있다. (웃음) 여성 창작자들의 불안과 걱정, 난처함이 와닿는 한편 이들이 영화제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주목하고 있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됐다.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그럼에도 영화를 만들어낸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

-경쟁부문인 발견, 아시아 단편부문 출품작의 경향은 어떤가. 80년대 후반에서부터 90년대생의 젊은 여성감독이 많아졌다는 게 눈에 띄더라.

황미요조 여성감독의 수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무언가가 계속 나온다는 점을 확실히 느꼈다. 정형화된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나오는 그들만의 미학과 방법론이 생겨나고 있다.

정지혜 감독의 사적 영역을 극화하는 방식에 대한 논쟁이 계속해서 있어왔는데, 여성감독의 사적인 이야기가 ‘작은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여러 주제를 포괄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이 꽤 있었다. 한편으로는 시급한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영화가 먼저 주목받으면서 상대적으로 여성의 사랑과 성적 욕망을 다룬 이야기들은 덜 주목받곤 했다. 발견 섹션의 <어 피쉬 스위밍 업사이드 다운>이나 <은미> 같은 작품이 도발적이고도 집요하게 그 문제를 파고들어 반가웠다.

-허안화 감독 회고전 ‘흐르는 도시 홍콩의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황미요조 허안화 감독은 여성영화제가 오랫동안 특별전을 진행하고 싶었던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런데 70, 80년대 아시아영화의 수급이 참 어렵다. 디지털 라이징이 안돼 있는 것은 물론 저작권도 명료하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상영작을 모을 수 있었다. (웃음) 현재 한국에서 홍콩 상황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사실 우리가 보는 홍콩의 이미지는 여행이나 영화를 통해 주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지금이야말로 관객에게 여성감독의 시선으로 만든 영화로 홍콩을 보여줄 적기라고 느꼈다.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여성 창작자, 여성 서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는 요즘이다. 어렵고도 식상한 질문이지만 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생각하는 ‘여성영화’의 정의, 여성영화제의 지향점이 궁금하다.

황미요조 10년간 이 문제를 생각해온 내겐 그리 어렵지 않은 질문이다. (웃음) 여성이 만들거나, 여성이 내용의 중심이거나, 여성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가 여성영화라고 생각한다. 이중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것은 타깃 관객이 여성인가 하는 지점인데, 페미니즘 안에서도 논쟁적인 로맨스 장르를 어떻게 다시 이론화하고 동의해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많다. 여성영화제에서 좀더 예민한 테마, 동시대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이제 그럴 수 있는 역량도 있다.

정지혜 여성과 영화 각각이 무엇이냐를 두고도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 ‘규정할 수 없음’ 자체가 중요하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우리의 세계가 불안정하고 매끄럽지 않다는 걸 인정하면서 거기서부터 긴급하고 급진적인 질문을 끄집어내는 영화, 논의의 장을 만들어주는 방편과 태도로서 여성영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이슈에 대해 덜 고민했던 사람일지라도 이 영화제를 통해서 여성의 현실을 다르게 감각하고 반응할 수 있게 다른 접점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길 바란다.

-이번 영화제를 찾은 관객이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추천작이 있다면.

정지혜 파나마의 공간과 역사, 원주민 사회를 그리는 실험성 강한 다큐멘터리 <판키아코>, 감독이 거식증을 앓았던 경험을 토대로 차근차근 자기 상태를 살펴보며 90년대 브라질 사회의 격변까지 담아낸 다큐멘터리 <엑스터시>를 추천한다.

황미요조 유쾌하면서도 예상에 딱 떨어지지만은 않는 영화를 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인도네시아에서 흥행한 작품 <다라의 선택>을 봤으면 한다. 10대의 임신을 다루면서도 종교와 계급 갈등까지 포괄한다. 지적 자극을 주면서도 재밌는 다큐멘터리인 <여성, 영화사>도 교양에 대한 압박감 없이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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