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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위로가 필요한 순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떤 순간이 선명하게 남으리라 예감한 적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강렬한 예감도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자신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예감의 바닥에 가라앉은 감정을 해명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새삼스러운 권태나 찰나의 충실감으로 인한 각성이 예감의 실체구나 싶을 때도 있고, 누군가의 뒷모습을 눈에 새겨넣는 그때, 상대를 훼손하고 관계를 망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곱씹기도 한다.

‘스물아홉 경계에 선 클래식 음악학도들’의 이야기.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면서 예감으로 동요하고 감정 안쪽을 살피는 인물들에 공명한다. 이들에게 음악은 말을 대신하는 언어가 되고 또 짝사랑의 대상이기도 하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4수 끝에 바이올린 전공으로 다시 입학해 졸업을 앞둔 채송아(박은빈)는 연주가로 살기엔 모자란 자신의 재능에 초라함을 느낀다. 송아가 무대 뒤편에서 지켜보던 피아니스트 박준영(김민재)에겐 ‘한국인 최초 쇼팽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2위 입상자’라는 복잡한 설명이 따라붙는다.

멜로드라마의 영토에서는 우연과 징조, 예감이 길잡이가 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역시 녹색 표지판처럼 흔한 우연을 따라간다. 그래도 뻔한 이야기라 외면하지 못하는 까닭은, 자신이 가늠할 수 있고, 또 열망하는 재능 앞에서 그늘이 지는 마음이 생생해서, 한곳만 보고 살다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애를 태우는 나날을 모르지 않아서다. “언젠가 내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릴 것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상처받고 또 상처받으면서도 계속 사랑할 것임을 그날 알았다.” 극중 송아의 예감은 마치 자신에게 거는 주문 같았다.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한 시기. 불길함에 사로잡히는 대신, 버팀목이 될 어떤 순간들을 각인하는 것도 심지 굳은 사람의 재능이 아닐까.

VIEWPOINT

택시

헤어질 때 스마트폰 앱으로 각자 택시를 호출해 도착한 순서대로 떠나는 것이 요즘 현실 세계의 풍경이라면, 늘 동행들을 보내고 맨 나중에 혼자 남는 것이 드라마 주인공들의 법칙이다. 남들 먼저 택시 태워 보내던 주인공끼리 남으면 어떻게될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채송아와 박준영은 극중 하우스 콘서트가 끝나고 일행을 배웅한 후, 둘만 남아 좀처럼 오지 않는 택시를 기다린다. 한참이 지나서야 송아는 준영의, 준영은 송아의 택시를 잡아주려 했던 것을 확인하고 웃음이 터진다. 둘은 대중교통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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