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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국 영화산업 긴급진단 토론회 - 팬데믹이 만들어낸 영화계 피해 상황, 무엇이 얼마나 심각한가
남선우 사진 오계옥 2020-10-30

현재 없이 미래 없다

김현수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산업본부장(맨 왼쪽)이 전년 대비 70% 이상 급감한 관객수와 매출액, 이에 따른 2020년 추정치를 발표하고 있다.

“위기라기보다 붕괴다.”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 어렵다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초유의 사태. 흔들리다 못해 무너져버린 극장가에 다시 숨을 불어넣기 위해 영화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0월28일 수요일,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아트나인에서 영화수입배급사협회와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2020 한국 영화산업 긴급진단 토론회’가 열렸다. 코로나19를 맞닥뜨린 영화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제작·배급·수입·상영·정책 등 각 분야 플레이어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날 행사는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됐으며, 팬데믹 여파로 촉발된 피해를 짚는 것으로 시작해 변화 속에서 영화인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토의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디지털 유통에 대한 현황 점검-수익 산출의 문제

1부는 극장보다 OTT와 IPTV를 택하는 관객이 늘어나는 국면에서 영화계가 당면한 그늘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디지털 유통에 대한 현황 점검-함께 갑시다 OTT’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1부의 화두는 홀드백(한편의 영화가 다른 수익 과정으로 중심을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수익 배분 이슈였다. 최광래 J&C미디어그룹 대표가 발제를 맡았고, 강문경 홈초이스 차장, 김정석 한국영화디지털유통협회 대표, 조영각 인디그라운드 센터장이 패널로 참여해 토론을 이어갔다.

최광래 대표는 먼저 월정액을 내고 구독하는 방식인 SVOD(Subscription Video On Demand)의 수익 산출 방식을 문제 삼았다. 작품별로 결제가 이뤄지는 TVOD(Transactional Video On Demand)와 달리 국내 OTT의 경우 관람 시간으로 수익을 산출하기 때문에 OTT 업체가 수익의 50%를 확보한 후 남은 수익을 판권사에 배분하는 식이다. 이때 판권사가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영화당 평균 100원 정도에 그친다. 가입자가 증가해도 판권사의 수익은 미비하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를 “콘텐츠가 정당한 대가를 못 받는 구조로 TVOD 중심의 정상적 매출 발생을 차단한다”고 지적하며 TVOD 수익만으로 제작비를 회수한 성공 사례로 UPI의 <트롤: 월드투어>(이하 <트롤>)와 디즈니의 <뮬란>을 꼽았다. 두 작품은 각각 19.99달러, 29.99달러라는 가격으로 457만건, 857만건의 스트리밍을 성사시켰고, 자사 OTT 플랫폼을 통해 추가 수익도 창출했다. 최 대표는 극장, OTT, TVOD가 상생하기 위해 극장 동시 및 최초 개봉 TVOD의 가격이 극장 입장권보다 비싸야 하며, SVOD로 진입하기까지 최소 1년의 홀드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발제를 마쳤다.

이에 강문경 차장은 유통사와 플랫폼간의 효율성을 고려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6~8주 선의 홀드백 기준을 정한 것이라며 “무작정 가격을 올리거나 홀드백 기간을 늘린다고 개선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어서 김정석 대표는 “콘텐츠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통신으로 돈을 버는 구조가 한국 플랫폼의 태생적 한계”라며 “국내 IPTV, OTT 등의 플랫폼은 완전히 상품화된 콘텐츠를 받아서 파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 실질적으로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는 과정에 개입해본 사례가 없다”며 TV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영화가 구분되지 않고 거래되는 현실도 꼬집었다. “한국은 <트롤> <뮬란>처럼 자체 플랫폼에서 임의로 공급할 수 있는 시장 규모가 되지 못한다. 우리 스스로 공급원칙을 가져야 한다.” 한편 조영각 센터장은 독립영화인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독립영화인들이 작품을 SVOD로 서비스했다가 정산을 받고 놀라곤 한다. 단편의 경우 35원이 수익으로 찍히기도 한다. 차라리 개인 유튜브에 올리는 것이 더 낫지 않나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창작자 권리 보호 차원에서도 가격 정책 문제는 공론화되어야 한다.” 1부 토론은 온라인 유통을 둘러싼 주체들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쟁점을 공고히 하는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극장 개봉 후 6개월이 지나야 온라인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법제화한 프랑스, 영화사가 플랫폼을 운영하는 식의 유통 활로를 뚫은 미국의 예처럼 한국의 실정에 맞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방법론을 택할 수 있을지는 물음표로 남았다.

영화관 입장권 매출 급감, 영화 제작·개봉 비용 추가, 영화관 피해

한층 긴급하고 첨예한 영화계 이슈들이 2부에서 터져나왔다. 사회를 맡은 장영엽 <씨네21> 편집장은 “시스템의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한국 영화산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분들과 구조적, 제도적 해법을 모색”하겠다며 문을 열었고, 김현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정책산업본부장이 코로나19로 인한 영화산업의 피해 현황을 보고했다. 이는 크게 영화관 입장권 매출 급감, 영화 제작·개봉 비용 추가, 영화관 피해 세 가지로 정리되었다. 영진위의 코로나19 전담 대응 태스크포스가 기획한 ‘코로나19 영화 제작 개봉 피해실태 조사’(어지연 책임연구, 권선국·임지영·김순모 공동연구)에 따르면, 한국영화 배급사 28개 업체, 해외영화 배급사 31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국영화 119편, 해외영화 16편 등 총 135편의 실정을 설문한 결과, 10월15일까지 이들 영화가 코로나19로 기인한 상황으로 추가 집행한 피해금액이 총 32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금액이 발생한 피해 유형으로는 확진자 혹은 밀접 접촉자 발생에 따른 검사 및 방역, 로케이션 촬영 취소로 인한 추가 세트 제작·스튜디오 임대·CG 작업 추가, 일정 지연에 따른 인건비 증액, 개봉 연기 취소에 따른 P&A 비용 매몰, 후반작업 기간 연장 등이 있다. 수익이 발생되지 않아 생기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투자사의 신규 투자 및 제작이 위축되어 제작사의 차기작 개발에 난관이 생긴다는 점이다. 악순환으로 인한 극장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전국 383여개 극장을 조사한 결과, 9월까지 입장권, 매점, 광고 매출액을 모두 합친 금액이 전년 대비 69.4% 감소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상영회차 감소와 그에 따른 고용인력 감소, 휴관일 증가로 이어졌다.

한편 영진위가 위 설문 결과와 별도로 공개한 영화산업 피해 현황 및 파급 리스크 세부내용에 의하면 2020년 9월까지의 전년 대비 총매출 손실 추정치는 상영 부문에서 4515억원, 투자·배급 부문에서 2888억원, 제작 부문에서 1624억원, 영화발전기금과 부가세를 비롯한 기타 부문에서 1212억원을 기록해 1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권지원 리틀빅픽처스 대표, 이정세 메가박스 영화사업본부장,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 조성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각 사가 처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2월19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6월4일 <침입자>, 6월18일 <사라진 시간>을 차례로 개봉시키며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야 했던 장원석 대표는 “제작을 하는 입장에서 새로 영화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투자·배급사들의 돈이 묶여 있고 순환이 안되는 시점에서, 살기 위해 드라마를 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BA엔터테인먼트는 <범죄도시2> 베트남 촬영이 어려워지면서 예산이 10억원 정도 증액된 것은 물론 코로나19 여파로 워너브러더스코리아가 철수하면서 <인턴> 리메이크 프로젝트도 중단했다.

투자·배급사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메가박스에서 영화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정세 본부장은 배급작 중 “당장 내일 개봉해도 되는 영화가 다섯편, 해외 촬영을 남겨둔 영화가 네편, 새로 들어가야 하는 영화가 한편으로 총 열편 정도가 이미 라인업에 세팅되어 있다”며 “오늘부터 1년 반에서 2년 정도의 라인업이 확보된 셈이지만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해도 개봉 시기를 잡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전년 성적에 따라 자금의 유동성이 생기는데, 코로나19가 1년 가까이 지속되는 동안 생긴 것으로 예상되는 피해액만 750억원에 가깝기 때문이다. “3년 정도의 영업이익이 올해로 없어진 것이라 지난해처럼 좋은 성적을 3년 연속으로 올려야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수준이다.” 경쟁은 잠시 미뤄두고 모두가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권지원 대표도 말문을 열었다. 4월23일 넷플릭스로 <사냥의 시간>을 공개해 대작 OTT행의 선례를 남긴 그는 “개봉을 앞두고 극장 개봉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넷플릭스에 제안을 하면서 위기를 살짝 모면했는데 허탈감이 컸다”고 고백했다. 해외에 영화를 빠르게 선보일 수 있고, 제작비를 보전할 수 있다는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콘텐츠에 대한 모든 권리가 넷플릭스에 넘어가게 되어 추가적인 수익을 기대하기도, 창작자가 권리를 주장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제작사와 배급사 입장에서는 개봉을 해도 제작비 회수가 어려우니 개봉을 미루고, 불리한 조건을 수용하면서까지 넷플릭스에 가는 거다. 그러다보면 자금 순환이 안되니 재투자가 없어지는 건데, 이 고리를 끊어서 극장에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영화가 개봉하고 관객이 몰려 자금이 선순환되게 도와줘야 한다.” 권 대표는 그 방법으로 부율(극장과 배급사가 수익에서 나누어 가지는 비율) 조정을 통한 손익분기점 낮추기를 들었다. 이정세 본부장 또한 다급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부율 또는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매입액)를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거들었다. “관객이 예년 대비 30%밖에 들지 않으니 손익분기점이 300만, 400만명 이상인 작품은 개봉을 안 한다. 내년 설 연휴까지 그럴 것이다. 내가 만약 극장에서 객단가를 4천원까지 받을 수 있다면 1, 2월에 개봉시킬 것 같다. 회사의 처지에 맞게 개봉 편수를 늘려갈 수 있는 것이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물론 “순제작비 190억원을 들여 강제규 감독과 <보스턴 1947>을 만들었는데, 코로나19 백신 또는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 개봉 못한다”는 장원석 대표의 말에 공감한 청중도 적지 않았다. 이에 이정세 본부장은 “<보스턴 1947> 같은 대작은 상황이 온전히 정상화됐을 때 상영해야겠지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같은 경우 반응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결과가 아주 소극적이다. 엔딩 스코어를 아직 모르지만 객단가를 조정해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면 용기가 생길 수 있지 않겠느냐”며 시도를 제안했다. 객석에 있던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또한 앞서 나온 부율 조정 문제에 동의를 표했다. “여유가 있다면 기다릴 수 있지만 여력이 없는 제작사가 대부분인데, 그들에게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극장을 살리기 위해 극장에 영화를 걸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넷플릭스로 가는 영화들의 경우 극장 체인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영화들이다. 제작사 입장에서 지금 극장으로 간다는 건 상당한 용기로, 수익이 없을 수도 있음을 감내하는 거다. 극장업은 숙박업과 똑같다. 오늘 방을 팔지 않으면 오늘 방에 따른 수익은 없어진다. 비용을 분담해 많은 영화들이 유입되어야 한다.” 이에 조성진 전략지원담당은 “제작사, 배급사, 극장이 개별적으로 이야기해서 결론을 내기에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며 “극장과 배급사가 꾸준한 라인업을 가져갈 수 있기 위한 전제 조건이 무엇인지, 이를 위해 정부가 무엇을 도와야 하는지 논의할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 그는 "관객이 극장에 오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극장이 배급사에 영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체부에서 극장과 배급사들 간의 협의체를 마련해 영화를 개봉하기 위한 시스템을 논의할 수도 있지 않나. 영화가 꾸준히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선적이다. 극장이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짜는 것과 생존을 위한 기본적 구호로 긴급 지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현수 영진위 정책산업본부장은 9월부터 기획된 포스트코로나영화정책추진단의 위원 22명이 관련한 어젠다들을 합리적으로 풀어가기 위한 논의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뒤이어 객석에 있던 한정환 콘텐츠게이트 대표가 질문한 영화발전기금 규모와 전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김현수 본부장의 답변이 이어졌다. 김현수 본부장은 현재 7천억원 규모의 기금이 있으며, 21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기금 용처에 대한 법 개정을 추진하자는 의견을 발의한 상태라고 알렸다. 객석의 정윤철 감독은 “극장 파산의 시나리오를 갖고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는 직설과 함께 “한국 영화인들이 이 유례없는 상황을 극복한다면 미래의 글로벌 영화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영화인들의 기운을 북돋웠다.

정윤철 감독

네 시간에 걸쳐서 진행된 토론회는 오늘 행사를 공동 주최한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최정화 대표의 마무리 발언으로 종료되었다. “영화계 다양한 파트의 동료들이 서로를 보듬으면서 위기를 극복나길 바란다”는 인사말에 마스크를 쓴 영화인 120여명이 박수를 보냈다. 서로의 처지를 돌아보고 돌파구를 찾아나간 대화가 영화산업 정상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코로나19로 인한 영화계 붕괴가 도리어 각 부문 영화인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산업의 고질적 문제들을 이야기하게 했다는 것이다. 말이 공중에 흩뿌려지지 않고 토양에 싹을 틔우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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