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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송재호 배우를 추모하며②] 영화인들이 기억하는 배우 송재호
김소미 2020-11-13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

그저께 밤에 선생님 빈소에 다녀왔다. 선생님을 뵌지가 몇년 되었고, 근래는 전보다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한 상황이었는데 영정 사진 속 송 선생님 특유의 미소를 보고 마음이 더 아렸다. 따님께서 큰 고통 없이 평화롭게 눈을 감으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어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대중에겐 TV드라마로 더 친숙할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은 영화에 대한 애착이 아주 강했다. <살인의 추억>을 찍을 때, 쉬는 시간이 되면 내 옆에서 직접 쓴 시나리오를 설명해주시며 “봉 감독이 연출해보면 어떨까요” 하고 의견을 물으시곤 했다. 영화 제작에 대한 꿈이 여전히 강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젊은 두 형사 사이에서 술에 취해 오바이트하는 술집 신도 기억난다. 워낙에 긴 롱테이크 장면인데 송재호 선생님을 비롯해 송강호, 김상경, 김뢰하, 단역배우들까지 총 7명의 배우가 크고 작은 디테일을 맞추느라 테이크만 20번이 넘어갔다. 결국 내가 숏을 나눠서 가면 어떨까 제안하기에 이르렀는데, 선생님이 먼저 “봉 감독, 이거 롱테이크를 해야 제 맛 아니오. 우리 원래 목표대로 갑시다” 하고 나를 붙잡았다. 연기 욕심과 열정이 대단한 분이었다. 갓 두 번째 영화를 찍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감독에게 선생님은 언제나 존댓말로 대하며 많은 격려를 해주셨다. 점잖고 마음이 여리시면서도, 연기에 대한 의지만큼은 단호하고 강단이 넘쳤던 분이다. 아마도 내게 송재호 선생님은, 신문을 반으로 딱 접어 기차 건널목을 건너가는 수사반장의 첫 등장 모습으로, 그 멋지면서도 담백한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될 듯하다.

<그때 그사람들> 임상수 감독

<그때 그사람들>

<그때 그사람들>의 ‘각하’는 실존 인물(박정희 전대통령)을 모사하는 것이 아닌, 어느새 늙어가는 철권 통치자가 피곤하고 외롭게 밤을 보내는 모습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고, 송재호 선생님은 아마 그 지점을 배우로서 즐겼던 게 아닌가 싶다. 어떤 배우라도 그 역할에 대해 정치적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을 터,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개의치 않고 작품에 몰두한 선생님의 프로 정신에 다시 한번 존경을 표한다. 특히 내게는 “돈들 좀 아껴 써”라는 대사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강아지를 안은 채 비자금 금고에서 현금을 내가는 비서에게 하는 말이다. 다소 날카롭다고 알려진 실제 인물의 성격과 달리, 송 선생님과 나는 조금 더 부드럽고 여유 있는 캐릭터로 만들기로 합의했고 그 결과에 더없이 만족한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

참 부드럽고 다정다감하셨던 분인데 연기만큼은 정확했다. 본인은 보수적인 정치 성향의 소유자였지만 <그때 그사람들>의 주제나 표현에 거리낌이 없으셨다. 개인적으로는 <영자의 전성시대> 속 창수와 <살인의 추억> 속 신 반장의 모습을 특히 좋아한다. 마냥 세고 강하기보다는, 그 시대 배우 중에서도 유독 세련되고 스마트한 느낌이 돋보이는 분이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추창민 감독

<그대를 사랑합니다>

예산이 적어 말도 안되는 개런티로 부탁드렸는데도 선생님은 흔쾌히 응해주셨다. 2010년 무렵에 작품 준비하며 처음 뵀을 땐, 사실 컨디션이 조금 쇠약해지신 듯한 인상을 받았고, 감독 입장에서는 겨울 촬영이라 속으로 걱정이 많았다. 막상 촬영 현장에서는 선생님이 그런 신체적 변화까지도 베테랑 배우답게 연기의 기술과 캐릭터 해석력으로 능숙하게 커버하시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받았다.

현장에서 선생님이 보여주신 모습에 오로지 감사할 뿐이다. 매니저도 없이 혼자 운전하고 다니시면서 소품, 의상 같은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직접 꼼꼼히 챙기셨다. 옛날 현장에선 배우들이 스스로 분장을 하고 의상도 직접 챙겼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그 시절부터 생긴 관록이 아닐까 싶다. 가까이서 뵌 선생님은 아주 섬세한 분이셨다. 연기는 물론, 인격적으로도 존경한다.

영화 <몽중인> 촬영현장의 배우 송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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