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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 소피 데라스페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어린 시절 알제리를 탈출하며 부모를 잃은 안티고네(나에마 리치)는 현재 퀘벡에 정착해서 할머니와 언니, 오빠들과 살고 있다. 이민자 가족이라고 해서 남다를 것은 없다. 간혹 가족들과 투닥대고, 학교에서 새로 사귄 남자 친구 때문에 설레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며 그녀의 운명이 흔들린다. 경찰의 오인 사격으로 큰오빠 에테오클레스(하킴 브라히미)가 사망하고, 같은 장소에 있던 작은오빠 폴리네이케스(라와드 엘 제인)가 투옥된 것이다. 작은오빠가 캐나다에서 추방될 위기에 처하자, 안티고네는 오빠를 대신해서 스스로 감옥에 갇히겠다고 마음먹는다. 물론 이 시도가 순조로울 리는 없다. 이내 발각돼 재판에 오르면서 세간의 관심은 온통 16살의 작은 소녀에게 집중된다. 게다가 SNS를 통해 번지는 사건의 진상은 그녀가 겪었던 것과 상관없는 내용들이다. 의도하지 않은 의견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간다.

소피 데라스페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안티고네>는 2008년 퀘벡에서 벌어진 ‘경찰 오인 사격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전체 내러티브는 실제 사건과 고전 희곡의 인물들이 더해져 완성됐다. 20대 시절 소포클레스의 원작과 장 아누이의 희곡을 읽고 강한 인상을 받았던 소피 데라스페는, 안티고네 이야기를 캐나다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에 대입했다. 법과 정의가 빚어낸 역설 사이에서 한 젊은 여성이 택한 윤리적 비극을 완성시킨 것이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을 비롯한 나머지 캐릭터들 모두 원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사 등과 구체적인 세부 내용도 원작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영화에서 안티고네는 ‘남성보다 우월한 여성의 지혜와 솔직함’의 상징이다. 기존 질서에 비극적으로 부딪쳐 세상을 바꾸려고 애쓰고, 아이러니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유죄를 인정한다. 무엇보다 널리 알려진 고전극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가장 참신하게 바뀐 것은 ‘사건의 현대화’다.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법에 저항하던 고대 그리스의 여성을, 영화는 ‘오빠를 감옥에서 빼내기 위해 대신 감옥에 갇히는 어린 소녀’로 표현한다. 간혹 지나가는 버스에 ‘오이디푸스 왕’이란 문구가 새겨지거나 캐릭터 이름이 불필요할 정도로 원작과 똑같아서 피로감이 들지만, 전반적인 극의 진행은 사실적이고 진솔하다.

고대극의 코러스를 ‘SNS 플랫폼’의 목소리로 변화시키거나, 예언자 티레시아스를 ‘시각장애인 정신과 의사’로 묘사하는 등 디테일도 흥미롭다. 원작의 강렬한 대사, “너는 산 채로 갇히게 될 것이다”가 여의사의 거친 목소리를 통해 뿜어져 나올 때, 마치 절대 다수가 소외 계층에 내뱉는 언어적인 폭력처럼 느껴진다.

비록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지만, 영화의 주제는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법의 원칙적 집행이 정의구현의 유일한 수단이 아님을, 현대사회의 SNS 사용 방식이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거나 확대해 드러낼 우려가 있다는 것을 영화는 간곡하게 말한다. 기존의 아카데믹한 신화를 피부에 와닿게 만들어서 현대의 계층 문제를 건드리는 방식도 설득력 있다. 난민 문제가 온정을 쏟아야 할 개별적인 사안이 아니라 일종의 ‘계층 갈등’이라고 이 작품은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마음의 법과 인간의 법 사이에 생기는,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작은 틈새를 관객에게 인지하라 이른다.

2019년 토론토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으로, 수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주연을 맡은 나에마 리치의 연기가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좋은 배우란 기술적인 연기가 아니라 작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서 ‘영화의 이미지’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무 꽉 짜인 패스티시(기존 이야기 활용)에 갑갑함이 들지만,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다큐멘터리 연출자 특유의 관찰자적 시선이 돋보이며,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잡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CHECK POINT

현실의 사건

2008년 몬트리올 노스 공원에서 도박을 하던 중 체포되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온두라스 출신의 18살 난민 사건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감독은 TV에서 우연히 희생자의 여자 형제가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고 안티고네를 떠올렸다고 한다.

감독의 성향

캐나다의 영화산업 전체를 보아도 사회적인 주제를 꾸준히 드러내는 감독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2006년 페이크 다큐멘터리 <빅토르 펠레린을 찾아서>로 데뷔한 후 소피 데라스페는 꾸준히 사회적인 주제에 몰두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세트 디자인

영화 초반, 안티고네의 집 안은 복잡하지만 따뜻하고 밝게 표현된다. 반면 법 집행자들의 공간은 모두 차갑다. 재미있는 것은 ‘하이몬의 아버지’ 집이 미니멀하고 인공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었다는 데 있다. 이 공간은 아이들이 노는 ‘잔디밭’과 대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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