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김영진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 “뉴노멀의 시대,영화정책도 변해야 한다”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20-12-03

코로나19는 생각보다 빨리 한국 영화산업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입시켰다. 하루가 멀다하고 재빠르게 변화하는 까닭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현재 산업 상황에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영화산업의 모든 공정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각 분야의 현안을 들었다. 지난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 동안 CGV압구정에서 비공개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영화정책추진단의 현안 인식 포럼’(주최 영진위)에서는 극장부터 IPTV, OTT 플랫폼까지, 독립영화부터 상업영화까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에 대한 극약 처방부터 스크린 독과점, 수직 계열화, 다양성 등 20년째 해결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까지 여러 현안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영진위원장이나 본부장이 주도한 게 아니라 영진위 직원들이 의견을 모아 위로 올려 성사시킨 정책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영화산업의 조타수 역할을 제대로 한 덕분인지 포럼이 끝난 뒤에도 참여한 영화인들은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올해 초 “떠밀리다시피 영진위원으로 합류해 부위원장까지 덜컥 맡은” 김영진 영진위부위원장은 김현수 정책사업본부장을 포함한 영진위 실무진과 함께 발로 뛰며 직접 영화인들을 섭외하고 이번 포럼을 준비했다고 한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연일 강행군을 펼친 탓인지 오랜만에 만난 그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

-영화계 각 구성원들로부터 현재 산업 상황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니 어땠나.

=참석자 대부분 만족스러워했다. 산업 현안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는 의견도 있었고, 열기가 뜨거운 피칭 행사 같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산업 구성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가 처음이고, 각 구성원들이 자신의 패를 내보인 채 솔직하게 얘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포럼에서 나온 내용들을 살펴보니,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상황을 알리고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한국 영화산업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구조적 문제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포스트 코로나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라고 해서 코로나19 피해에 대한 극약 처방을 논의할 줄 알았는데 뉴노멀에 대비한 시스템 얘기가 많아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뿌듯했다. 특정 단체들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얘기도 해주었고. 같은 이유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 또한 있었다.

-영진위가 그런 자리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기존의 영화진흥정책 수립 과정에 대한 비판들이 있었다. 예전에는 현장의 수요와 필요를 출발점으로 두지 않고, 정책 입안자의 가설을 특정한 소수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을 들어 검증하고, 이것을 정책으로 확정하지 않았나. 이것은 과정에 대한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정책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게 되는 영화계 구성원의 정책 인지도와 수용도 제고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정책을 성공적으로 집행하는 데 걸림돌이 된 게 사실이다.

-각 분야에서 종사하는 영화인들을 한데 모아 최근 ‘포스트 코로나 영화정책추진단’을 구성한 것도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인가.

=그렇다. ‘포스트 코로나 영화정책추진단’을 구성하고 운영하면서 소통 채널을 확대하고, 집단적 의사를 형성하며, 정보의 공유와 공개를 확대하는 등 세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 영화계의 모든 분야를 대변, 대표할 수 있는 인사 24명을 모아 기획위원회를 설치하고, 개인 자격으로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할 인사로 201명 규모의 영화정책 패널을 구성하며, 기획위원회와 영화정책 패널의 의견이 효과적으로 제시될 수 있도록 추진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한 것도 정책 결정이 현실을 균형 있게 반영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 점에서 현안 인식 포럼은 기획위원회가 현재 산업에서 인식되고 있는 문제와 현안을 잘 정리해 공식적으로 제시하는 자리다.

-이번 포럼을 영진위 직원들과 함께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준비 과정에서 영진위가 가장 신경 쓴 것은 무엇인가.

=영화인 섭외. 그들을 한 테이블에 모으는 게 쉽지 않았다. 이런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하니 반응이 각양각색이었다. 테이블을 환영하는 곳만큼 꺼리는 곳도 많았다. 김현수 정책사업본부장을 포함한 실무진이 엄청 고생했다. 실무진이 섭외를 못한 사람은 내가 전화하는 전략으로 진행했다.

-이지수 한국투자파트너스 팀장이 발제한 ‘한국 상업영화의 악순환’에 따르면, 극장이 침체기에 빠지면서 상업영화 수익률이 저하되고 이것이 투자 위축 상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심각하다. 영진위의 좀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해 보인다.

=제작과 투자 위축 최소화를 위해 현재 2021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투자조합 출자 예산을 올해 240억원보다 110억원 증액, 총 350억원을 신규 출자 할 계획이다. 현장의 의견을 검토해 내년에도 상황 개선에 적합한 방식으로 출자 사업을 진행해야 할 것 같다.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는 상황인데 투자를 늘린다고 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악순환이 반복되는 심각한 상황이라 혈액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사실, 전년 대비 70% 격감한 매출(극장 귀속 입장권 매출 감소액 총액은 5900억원에 달한다.-편집자)에 대해 매출 일부를 보전해주는 등의 직접적인 대책은 불가능하다. 영화발전기금 90% 면제, 추경예산 절반에 해당하는 180억원이 투입된 영화관 입장료 6천원 할인권 사업 등도 있었지만 추경예산의 상당액을 극장에 투입한다는 비판 또한 많았다. 정부가 재래시장 현대화 등에 지급하는 예산액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2019년 전국 4대 멀티플렉스 체인 극장 수는 총 405개인데 그중에서 멀티플렉스가 수탁받아 운영하는 극장, 그러니까 주인이 별도로 있는 극장은 145개에 달한다. 이러한 위탁관들은 독자 경영보다는 위탁 운영이 비용 대비 효과적이어서 멀티플렉스 브랜드를 단 채 본사의 서비스, 프로그래밍을 거의 그대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위탁관들이 멀티플렉스의 지점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운영된다면 대기업 독과점에서 기인한 불균형의 문제들, 스크린 독과점의 문제, 상영 다양성의 문제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극장이 문화상품 판매업소의 의미를 넘어선 문화적 공간이라면, 지역 극장들이 멀티플렉스 지점으로 운영되지 않아도 독자 경영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데 공공재원을 투여할 수 있지 않을까. 당장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는 것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

-극장과 배급사간 부율 논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가 아닌가.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볼 영화가 없기 때문인데 극장은 ‘배급사가 기대작들을 내놓길 바라’면서 ‘부율 조정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고, 배급사는 ‘부율 조정 없이 내놓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입장으로 팽팽하다. 당장 부율을 변경하기 힘들면 ‘미국식 슬라이딩 배급’(개봉 첫주 80:20(배급사:극장), 둘쨋주 70:30, 셋쨋주 60:40, 넷쨋주 50:50, 다섯쨋주 40:60식으로 영화를 오래 걸수록 극장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배급 시스템.-편집자) 같은 탄력적 배급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을 텐데.

=극장과 배급사는 현재 첨예한 이해관계라고 본다. 어느 쪽도 설득이 쉽지 않다. 영진위가 강제할 수 있는 권한도 없고, 그럴 기관도 아니고. 극장도, 배급사도 서로 양보하고 주고받는 모양새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아니면 속시원하게 싸우든가. 그저 쉬쉬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솔로몬의 해법이 필요한 때다. 극장뿐만 아니라 TVOD 서비스를 하고 있는 IPTV와 디지털케이블TV 업계에서도 전향적인 태도로 서로 양보해주길 바란다. 관객이 OTT 플랫폼으로 돌아서는 이유가 극장과 IPTV에는 없는 새로운 작품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극장의 위기가 가속화되는 반면, OTT 플랫폼은 급성장하고 있다. 영진위가 OTT 플랫폼에 대한 대응이 다소 소극적인 이유는 OTT 플랫폼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관할이기 때문인가.

=방통위와 과기부 관할이기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적극적일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영진위가 극장과는 달리, 조정과 조율의 자리에 OTT 플랫폼을 불러낼 수 없다. 극장도 지상파도 케이블도 IPTV도 그리고 OTT도, 모든 플랫폼 사업자는 거대한 자본과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는 과점사업자인 반면 콘텐츠 유통사, 제작사, 창작자는 작은 회사나 개인일뿐더러 숫자도 플랫폼 사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그래서 구조적으로 플랫폼 사업자 우위인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양자간의 구조적 불균형 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행정당국 또는 법령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정부는 콘텐츠를 플랫폼의 부속물로서 지원 또는 규제하는 방식으로 플랫폼별로 관할하고 있어서 플랫폼 관할 부서가 해당 플랫폼에 제공되는 콘텐츠도 관할하고 있다. 방송물은 방통위가, 영화물은 문체부가, 새롭게 등장한 OTT는 이 관할권을 가지고 정부 부처 사이에서 이견이 생기는 상황이다. 그런데 OTT에는 영화도, 방송물도, 심지어 오리지널 콘텐츠도 다 제공되고 있고, 게다가 영화 창작자나 제작사가 OTT오리지널을 만들기도 한다. 현장은 다 섞여 있는데, 정부의 관할 체계는 분절되어 있는 현실이다. 콘텐츠는 ‘문체부’가, 플랫폼은 관할 부처가 담당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영화발전기금을 기존의 극장에서 OTT로 확대 징수하는 등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영화 및 비디오물의 증진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 현실적으로 풀기가 쉽지 않은데. 지난 5, 6월 영화발전기금 징수를 면제해주기로 했다가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문체부는 지난 4월,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 올해 2월부터 12월까지 영화발전기금 입장권 부과금의 90%를 감면하기로 하고, 이의 시행을 위해 영비법 시행령 관련 조항을 개정했다. 한데 이 과정에서 시행령 관련 조항 개정 시행 이후분의 부과금에 대해서만 감면이 가능하며, 개정 이전분은 소급 적용할 수 없다는 법제처의 해석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올해 11월과 12월분은 직접 감면하고, 2월부터 10월분은 사후적으로 ‘실질적인’ 감면 조처를 취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례(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 그때마다 플랫폼 매출의 일부를 영화영상 진흥 재원으로 징수하여 이를 국립영화센터 CNC를 통해 영화영상물의 창작, 제작, 유통, 상영 지원에 사용하며 최근 연간 집행액은 9천억원에 달한다(극장→지상파→케이블→인터넷 VOD 대상). 이것이 프랑스가 자국영화를 보호하고 그 다양성을 지속 가능하게 하며 결국은 경제적으로도 영화영상산업이 많은 일자리와 생산을 만들어내는 산업으로 자리 잡게 한 방법이다.-편집자)처럼 역량이 검증된 영화사의 차기작에 대한 자동 지원을 늘려야 한다’거나 ‘극장 개봉작과 다른 플랫폼 공개 작품의 창작자에 대한 구분이 없어졌으니 영화발전기금 부과금의 징수 대상도 넓히고 지원 대상도 통합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이번 포럼에서 제시되었다. 고려할 만한 의견이라 본다.

-영화수입배급사협회나 디지털 유통쪽에서 홀드백(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를 스크린이 아닌 다른 플랫폼에서 볼 수 있기까지의 시간을 뜻한다.-편집자)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것도 이와 관련된 것인데.

=정부가 홀드백을 행정명령 또는 법률로서 강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또는 현실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지 이견이 있다. 설령 정부가 홀드백 기간을 강제한다고 해도 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간 협상력의 실질적인 불균형이 구조적이고 압도적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우선순위와 가치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영진위로선 선택과 집중이, 영화계로선 전체 산업을 위한 양보와 배려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영진위도, 영화계도 최선을 다해야 될 것 같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산업이 뉴노멀로 진입한 상황에서 영진위가 산업의 중요한 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코로나19 이후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떤 비전을 마련할지 고민해 산업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지난 1999년 영진위가 출범해 한국영화 창작, 제작 인력이 극장 대기업의 자본 유통력과 결합하여 지금의 한국 영화산업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하지 않았나. 지금이 그때와 유사하게 구조적인 정책 변화를 추구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관객이, 미디어가 변하고 현장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이 덩달아 변모하지 못하면 영진위는 위원회 구성원을 위한 일자리 공급처에 불과하고 정부의 역할 알리바이 제공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각을 하고 있다.

-현안을 인식했으니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

=12월 둘쨋주에 ‘포스트 코로나 영화정책추진단’ 기획위원회 회의를 개최해 이후 추진해야 할 정책 과제를 확정할 예정이다. 내년 3월 말까지 정책 과 제별 연구, 논의, 포럼의 과정을 거쳐 4월에 ‘포스트 코로나 영화정책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면 좋겠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