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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얼굴들] 김성훈 기자의 PICK <언컷 젬스> 애덤 샌들러
김성훈 2020-12-11

<언컷 젬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순수한 웃음기가 얼굴에서 싹 사라졌다. 냉소와 피로가 겹겹이 쌓인 주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사프디 형제가 연출한 영화 <언컷 젬스>에서 애덤 샌들러가 연기한 보석상 하워드는 대책 없이 일을 벌여놓고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이리저리 치인다. 뉴욕 출신의 유대계 미국인인 애덤 샌들러가 보석 시장을 운영하는 중년 남성을 연기한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보석상은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많이 종사하는 업종이거니와 대출에 전전긍긍하는 그의 모습이 영락없이 ‘보석상 대출 완화’ 정책을 펼치며 거품 경제 논란을 빚었던 트럼프 시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얼굴 위로 드리워진 애덤 샌들러의 얼굴은 21세기 자본주의에 종속된 미국인을 표상하고 있다. 이것은 로맨틱 코미디 속 ‘사랑꾼’ (<웨딩 싱어> <첫키스만 50번째>) 또는 ‘짐 캐리의 라이벌’이라 불릴 만큼 20, 30대 미국 청년의 코믹한 모습(<워터 보이> <빅 대디> 등)으로 각인되어왔던 애덤 샌들러의 낯선 모습이다.

대학 시절 스탠드업 코미디로 무대 내공을 쌓고,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 작가이자 배우로 활동한 만큼 젊은 시절 그의 주 무대는 코미디였다. 그런 그에게서 새로운 면모를 끄집어낸 작품은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로맨스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였다. 둔감한 듯 보이면서도 신경질적인 면모는 그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켰다. 이후 출연한 <잭 앤 질>로 최악의 영화를 시상하는 골든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사상 최초로 전 부문을 석권하는 등 내리막길을 걷다가, 노아 바움백 감독의 <마이어로위츠 이야기>로 <펀치 드렁크 러브> 이후 두 번째 칸국제영화제에 초대받았다.

부침이 심했던 최근 이력은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가는 <언컷 젬스>의 하워드와 묘하게 겹친다. <언컷 젬스>의 샌들러를 두고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펀치 드렁크 러브> 이후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라는 평가가 일제히 나온 것도 그의 롤러코스터 같은 최근 경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나이 든 그가 <마이어로위츠 이야기>나 <언컷 젬스> 같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꽤 잘 어울리는 걸 지켜보면서 ‘뉴요커’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애덤 샌들러의 행보가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다.

울다가 웃다가

영화의 중반부, 하워드는 빚더미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보석 오팔이 경매에서 생각했던 값을 받지 못하고, 장인어른에게도 한소리를 들어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설상가상으로 아르노 일당에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되게 맞는다. 온 얼굴이 멍으로 가득한 그가 헤어진 내연녀를 찾아가 그의 가슴에 안겨 울먹이다가 미국 프로농구 스타 케빈 가넷으로부터 오팔을 사겠다는 전화를 받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은 애잔하면서도 한심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 순간 애덤 샌들러가 보여주는 눈빛, 눈물, 감정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마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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