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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얼굴들] 송경원 기자의 PICK <도망친 여자> 김민희
송경원 2020-12-11

<도망친 여자>

<도망친 여자>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서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배우 25인’에 김민희송강호 두명의 한국 배우가 포함됐다. 김민희를 꼽은 근거로 두편의 영화가 언급되었는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속 그의 연기를 두고 “남녀가 만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생기는 변화에 대해 절묘한 뉘앙스를 살린 김민희의 연기가 영화의 중심에 있다”라고 평했다. <아가씨>(2016)에 대해선 “감정을 숨겼다가 분출하고, 그녀의 연기는 복잡하지만 섬세한 연기도 가능하다”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축하할 만한 일이지만 이런 몇 마디 설명으로는 배우 김민희의 옷자락 하나 잡지 못한다.

애초에 그의 연기는 언어로 포착하거나 설명으로 해체하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을 거닐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것도 아니고, 어느 한순간도 같지 않으며, 이야기를 초과하는 순간들을 여과 없이 발산하는 과정. 한마디로 개별 영화 안에 배우 김민희라는 또 다른 자아가 싹트고 숨 쉰다는 것. 그것이 김민희가 유일무이한 배우로 기억되는 유일한 근거다. 씨앗은 진즉에 감지됐다. <화차>(2012)에서 김민희의 얼굴은 존재하는 동시에 비어 있다. 상황과 감정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음에도 그걸로 특정하거나 단정 짓기엔 망설여지는 잉여의 정보들이 그의 표정 위로 느리지만 찬찬히 배어나온다. 그리하여 영화가 전달하는 정보를 초과한 얼굴이 우리 앞에 도달하는 신비. 거기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시간’이라고 답하고 싶다.

적지 않은 배우들이 상황과 사건, 감정을 전달하는 데 반해 김민희는 상황이 지속되는 시간을 통째로 잘라내 몸 안으로 빨아들이는 종류의 배우다. 가령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영희가 고독을 버티고 꼿꼿이 선 존재라면 <도망친 여자>에서의 감희는 시간을 가로지르는 거울이 되어 유유히 영화 속을 휘적이며 상대를 비추고 다독인다. 사진적인 복제를 벗어난 ‘지금’의 창조. 침묵과 망설임 속에 깃드는 리듬들. 이런 종류의 재능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꽃피는 건 당연한 일이다. 홍상수의 영화를 만나 김민희가 바뀐 게 아니다. 김민희라는 배우를 통해 홍상수의 세계가 변했다. 사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말했다시피 그(그들)는 한순간도 같았던 적이 없고, 영화마다 새롭게 존재해왔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도망친 여자> 속 감희는 불투명하다. 알 수 없고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영희는 영화 속에서 매 장면 투명하게 피어난다. 영순(서영화), 수영(송선미), 우진(김새벽)을 만날 때마다 새롭게 열리는 각각의 시간.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조차 감희는 영화가 된다. 완전히 비어 있어서 완전히 자유로운 순간들. 그 모든 시간들이 김민희라는 육체를 거쳐 ‘관객이 화면을 마주하는 지금 이 순간’으로 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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