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씨네21 추천도서 <동행>
진영인 사진 오계옥 2020-12-22

최윤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아홉 가지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에는 뜻 모를 소리가 종종 등장한다. 제목이 <울음소리>인 단편에서는, 상권 좋은 대형 아파트 단지 어딘가에서 어느 여자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자꾸 들려온다. 너무 애통해서 듣는 이도 흐느끼게 할 읊조림을 곱씹던 ‘나’는 과거 학교에서 온갖 괴롭힘을 받았으나 한번도 받아치지 못하고 참기만 하던 유년 시절의 착한 친구를 떠올린다. <서울 퍼즐-잠수교의 포효하는 남자>에는 관광객으로 가득한 분수대에 불쑥 나타나 팔을 위로 뻗은 채 포효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나’는 그 괴상한 소리 덩어리를 들으며 오지로 떠나 소수민족의 언어를 채집하던 동생을 생각한다.

2020년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 단편 <소유의 문법>에도 자폐성 발달장애를 앓아 느닷없이 몇분이고 고함치기를 하다 쓰러지는 아이가 등장한다. 울음과 고함을 터트리는 일상의 이질적 존재를 우리는 곁에 두기도 하고, 혹은 우리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인생이 제 궤도대로 가는 것 같아 마음을 내려놓은 시점에, 울음과 고함 같은 이질적 소리가 신호탄이 되어 삶의 방향이 틀어진다. 느닷없이 과거의 비밀이, 마주하기 싫은 욕망이, 혹은 정말 간절히 알고 싶지만 결국 해답을 구하지 못한 의문이 다가온다. 걷기 좋은 산책로를 사이좋게 걷는 부부는 사실 가족의 자살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겪었고 이유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아 전망이 근사한 전원주택 마을은 알고 보니 “정열적이고도 체계적으로” 타인을 혐오하는 진저리나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달아나고 싶은 현실 속에서, 직장과 주소를 바꾸고 관계를 끊어내는 여성의 모습 혹은 작지만 근사한 차를 몰고 도시와 도시를 떠도는 여성의 모습은 살풍경한 느낌의 소설 속 세계와 무척 잘 어울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감추어뒀던 나만의 속내를 털어놓거나 울음을 터트리고, 한때 등진 과거를 용감하게 다시 찾아가고, 작지만 단단한 공동체를 꾸려 정착하는 모습도. 겨울의 핵으로 다가가는 요즘의 차가운 날씨와 잘 어울리는 고요한 책이다.

어떤 위로

“자신에게 닥쳐와 있을지도 모르는 불행한 소식이, 배반당한 이 남자를 위로하기를 기대하면서.”(130쪽)

예스24에서 책구매하기
씨네21 추천도서 <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