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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사랑의 이중주, '썸머 85' 리뷰
김소미 2020-12-24

사진제공 찬란

바다 한가운데 빠진 알렉스(펠릭스 르페브르) 앞에 다비드(벤자민 부아쟁)가 나타나 그를 건져올린다. 느닷없는 폭풍처럼 다가온 상대에게 알렉스는 다시 한번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16살 여름에 돌연히 들이닥친 사랑은 그렇게 불가항력의 연속으로 묘사된다. 다비드를 사랑한다고 믿게 되기까지, 진의를 헤아리기 힘든 그의 저돌성에 알렉스는 제법 순순히 자신을 내맡긴다. 어린아이를 씻기듯 젖은 옷을 벗겨내 욕조로 들이미는 다비드의 엄마 고르망 부인(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도 당혹스러울지언정 언짢지 않다. 하지만 쾌활한 모자와의 조우는 이내 회고조의 내레이션과 함께 침울한 냉기를 띤다. “욕조를 보면 늘 관이 떠올랐다. 그 집 욕조는 거대한 석관 같았다.” 트라우마보다는 파라노이아에 가까운 알렉스의 목소리는 자꾸만 다비드의 죽음을 알린다. 충만한 에너지와 성적 매력으로 가득한 소년 다비드를 시체라는 단어와 포개야 하는 관객의 고역스러움은 그러나 알렉스의 충격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사진제공 찬란

<썸머 85>의 화창한 여름은 구치소의 어둠 속에서 촉발한다. 다비드는 바이크 사고로 죽었고 알렉스는 의심받는 중이며, 둘 사이엔 세상이 삼각관계라 성마른 딱지를 붙인 영국 소녀 케이트(필리핀 벨주)도 놓여 있다. 죽음과 법. 16살이 상대하기엔 너무 압도적인 두 구속으로부터 알렉스는 입을 닫는다. 대신 그의 문학성을 알아본 소설 선생님의 권유로 진술서를 쓰기 시작한 알렉스는 “죽기 전 나와 친했던 그 시체”에 대한 이야기라고 플래시백을 냉정히 수식한다.

하지만 <썸머 85>의 액자 내부는 그 사정을 다 알고 보아도 여전히 낭만적인 틴에이지 로맨스 드라마다. 의도적으로 코미디를 가라앉힌 <썸머 85>에 유일한 익살이 있다면, 통속적인 장르의 표면 아래 죽음에 대한 기이한 충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일 테다. 내레이션으로 현재의 죽음을 인정하고, 이미지로 과거의 찬란한 낭만을 되살리는 이중주는 얼마 동안 그럴듯한 평행선을 유지하지만, 회상 장면의 타임라인 또한 예고된 죽음쪽으로 끊임없이 다가간다는 점에서 불안의 그림자는 점점 더 짙게 드라운다.

소년은 정말 사랑했을까

사진제공 찬란

단편영화 <어떤 죽음>부터 시작해, <바다를 보라> <뜨거운 돌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프란츠> <썸머 85>에 이르기까지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에서 죽음보다 중요한 사건은 없었다. 관계의 비대칭성이 불러일으킨 심리적 억압 역시 오종이 천착하는 테마 중 하나로, 언제나 한쪽이 더 사랑하고 다른 한쪽이 덜 사랑한다는 관계의 불편부당한 명제는 16살의 서툰 사랑에도 영락없이 적용된다.

알렉스쪽에 시선의 무게를 둔 드라마로서 상처받는 쪽은 알렉스여야 마땅하리라는 주장에 영화는 안이하게 기대지 않는다. 원작 소설에서부터 세심히 묘사된 바 있는 두 인물의 판이한 성격이 배우들의 생기로 재현되면서 파국의 예감은 원치 않게 미더워진다. 알렉스가 환상에 취약한 순진한 청년이라면, 다비드는 일찍이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하고 아직도 그 부재의 여파 속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삶의 연약함에 훨씬 민감하다. “내가 죽으면 내 무덤에서 춤을 춰”라는 때이른 부탁은 감정과잉의 치기일 수도, 일찍이 죽음에 굴복한 자의 마지막 반항일 수도 있다.

사진제공 찬란

상실에 근거한 새로운 정체성의 도모는 <썸머 85>에서 연인의 권력 구도가 전복되는 형태로 일어난다. 조숙한 상대 앞에 기꺼이 취약해지곤했던 알렉스는 그가 죽고 난 뒤에야 관계의 우위를 점한다. 언쟁 끝에 자신을 쫓아 바이크의 속도계를 높인 다비드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 복장도착을 해서라도 영안실에 잠입해 시체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자. 구원과 사랑의 대상이었던 알렉스는 끝내 다비드를 죽게 하고, 나아가 제멋대로 탐닉하는 장본인이 된다. 그제야 제삼자인 케이트가 알렉스에게 얄궂은 한마디를 던진다. “네가 사랑한 다비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시체와의 사랑에 주인이 된 소년은 정작 나는 정말로 ‘너’를 사랑했을까, 하는 물음 앞에서 무력해지고 만다.

목적지가 장례식이라도 중간에 디스코 클럽을 향하는 것이 프랑수아 오종의 나침반이다. 죽음의 그림자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썸머 85>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이 아닌 생동의 기운으로 춤을 추려 한다. 더 큐어, 스티비 원더, 아하의 80년대 히트송은 이런 유희적 스텝을 유도하는 엄선된 주제곡들이다. 사랑의 시절을 그리는 데 있어 프랑수아 오종은 대중적인 선곡만큼이나 장르의 통속에도 거리낌 없이 접근했다. 일찍이 영화 애호가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며 패러디와 오마주, 각색에 능한 모습을 보였던 그답게, 시끄러운 클럽에서 다비드가 알렉스에게 헤드폰을 씌워주며 둘만의 교감을 갖는 재치 있는 시퀀스도 이어진다. 프랑스 멜로드라마 혹은 틴에이지 로맨스의 스테레오타입을 펼쳐놓는 대담함은 ‘퀴어영화적인’ 무언가를 예상했던 객석의 나태함까지 꼬집는다.

사진제공 찬란

하지만 일련의 익숙함 속에서 비단 로이 오비슨의 <In Dreams>에 휘감겼던 소피 마르소의 환영(<라 붐>(1980))만 재생되는 것은 아니다. <썸머 85>의 클리셰엔 이중의 복선이 있다. 프랑수아 오종은 장르의 스테레오타입을 재생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전통을 계승하는 일에도 충실하다. 부조리의 한복판에서도 춤을 추는 댄스 신의 영화들, 석양이 드리운 아름다운 해변에서 상실을 말하는 영화들, 낮에는 영안실을 오가고 밤에는 섹슈얼리티를 탐닉하는 사람의 영화들, 그게 오종의 영화라고 문득 자각시킨다.

자신의 처음으로 돌아가 미래의 전통을 쌓아올리는 행위는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를 10대를 위해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고백과도 이어진다. 평생의 자산을 들고 돌아온 어른은 그렇게 영화라는 확실한 아름다움을 수혈하는 것으로 상처받은 소년들을 위로하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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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