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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유다인 - 배우의 쓰임
남선우 사진 최성열 2021-01-21

박정은 대신 박 대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 정은(유다인)은 해고 통보에 가까운 발령으로 원청에서 하청 업체로 떠밀린 상황에서조차 이름보다 직함으로 더 자주 불린다. 정은 자신 또한 본연의 ‘나’를 잊고, 그 명칭을 지키는 일에 더 몰두한다. 이제 그를 그 자신으로 기억해주는 사람들은 곁에 없다. 하지만 그의 절실함을 알아본 동료 막내(오정세)의 도움으로, 정은은 또다시 자신을 밀어낼지 모르는 송전탑의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디뎌본다.

한명의 인간으로서 거절당하지 않고 내 자리를 만들기 위해. 큰 눈으로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가도 서늘한 목소리로 자신의 비밀을 말해줄 것 같은 배우 유다인은 “관객이 정은의 감정을, 정은을 연기하며 내가 느낀 감정을 다 이해할 것만 같다”라며 영화가 위로가 되길 원한다고 전했다.

-개인 유튜브 채널에 일상 브이로그와 책 추천 영상을 올리고 있다. 직접 촬영하고 편집해서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았다.

=혼자 채널을 운영하는 게 재밌어 보였는데 신경 써야 할 게 많더라. 나를 좋아해주는 분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영상 퀄리티는 점점 나아지리라 믿는다. (웃음)

-브이로그에 연기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발성 연습하는 모습도 나오더라. 지금도 종종 레슨을 받나.

=작품을 앞두고 필요할 때만. 지난해 드라마 <출사표> 촬영 전에 레슨을 받았다. 이때 맡은 윤희수라는 인물이 굉장히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캐릭터인데, 내 목소리가 그렇게 크지도 않고, 안으로 먹는 소리인 것 같아 개선하고 싶었다. 예전에는 나에게 없는 점이 부각되는 역할에 겁을 많이 냈다. 이제는 ‘그런 역할도 나에게 어울리는구나’ 하고 느끼는 중이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땠나.

=그즈음에 KTX 해고 승무원들이 12년 만에 복직한다는 뉴스가 났다. 그분들이 10년 넘는 시간 동안 어떤 힘들고 어려운 싸움을 했는지 다큐멘터리로 방영되기도 했다. 그래서 시나리오가 영화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꼭 해야겠다 싶었다. 이 작품은 만듦새와 상관없이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될 거라는, 내가 이 영화에 잘 쓰이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가 잘 표현할 줄 아는 캐릭터로 영화에 도움이 될 거라 여겼다.

-관객에겐 정은의 전사가 자세히 전달되진 않는다.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고 연기했나.

=발령받은 곳에서 어떻게든 버텨 살아남겠다는, 붙잡아야 할 하나의 실만이 남아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 절박함, 절망감 하나만 생각하고 연기한 것 같다.

-그 감정이 송전탑을 오르는 등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직접 높은 곳까지 올랐나.

=실제로 오르기도 했는데, 아주 높이 오르는 신 같은 경우 훈련소에서 따로 찍었다. 영화 속 정은처럼 고소공포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조금만 올라가도 굉장히 무섭더라. 장비를 다 메고 몸에 힘을 준 채 탑을 오르다보니 한번 촬영하고 나면 온몸이 다 아팠다.

-오정세 배우와는 드라마 <아홉수 소년> 이후 6년여 만에 전혀 다른 장르와 캐릭터로 재회했다.

=<아홉수 소년> 때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같이 진지하고 무거운 영화에서는 전작에서처럼 즐거운 분위기로 촬영하면 안될 것 같아 걱정을 잠깐 했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영화에 몰입해서 장난치고 웃는 일이 거의 없었다. 특히 정세 선배는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굉장히 많이 낸다. 지금 떠오르는 건 정은이 송전탑에 올라가려고 애쓰다 결국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신이다. 정은이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막내가 “끝났어요~” 하면서 지나간다. 그런 대사나 영화적으로 재밌는 상황을 조성하는 게 정세 오빠 아이디어였다.

-최근 영화 <속물들>, 드라마 <출사표>, 단막극 <드라마 스테이지-이의 있습니다>까지, 자신만의 절실함이 있지만 그걸 남에게 표내지 않으려는 인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여줬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을 딛고 나름의 성과를 일군, 그래서 손에 쥔 것을 쉽게 놓지 못하는 여성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런 작품들만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닌데 그런 캐릭터들에 끌린 건 맞다. 그렇게 깊게 들어가는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 추세기도 하고. 그런 인물이 내 성향과 비슷하고, 표현하는 재미가 더 큰 것 같다. 좋아하는 작품 스타일도 뭔가를 많이 보여주려고 크게 표현하는 작품보다는 잔잔하게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최근에는 <윤희에게> <미안해요, 리키> 같은 작품이 좋았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혜화, 동>으로 독립스타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앞으로 배우로서 어떤 도전을 해보고 싶나.

=15년 정도 활동해왔는데, 나는 참 느린 사람, 느린 배우인 것 같다. 조금 더 자신 있고 용감하게 다양한 작품을 만나고 싶다. 요즘에는 제대로 된 스릴러 장르에서 이상하고 기괴한 캐릭터를 한번 연기해보고 싶다. 호러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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